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야의 삶은 축복이다 (신 08:1-10)

첨부 1



광야의 삶은 축복이다(신명기 8:1-10)

이 세상은 광야입니다. 폭풍, 비바람, 전쟁, 싸움, 투쟁을 해야 살 수 있고 서로 속이고 속는 험악한 삶의 터전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같은 세상에 기가 막힌 축복의 비밀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광야에서의 첫번째 기적은 물이 없을 때 쓴물을 단물로 바꾼 것입니다. 또한 6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과 골짜기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매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은 또 하나의 어려움은 자기를 괴롭히는 적인 아말렉을 만났는데 피할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말렉과 싸울때 '중보기도'라는 비밀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이고 영적인데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율법이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다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완전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절망한 인간, 죄를 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성막'이라는 제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출애굽의 절정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였을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그 험악한 광야생활을 기가 막힌 축복의 장소로 바꾸셨습니다.
소풍가서 보물찾기를 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보물을 숨겨놓았습니다. 광야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저주스럽지만 그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흥분이고 축복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이 광야라는 곳에 숨겨놓은 보물들로 인하여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백성 만드시는 하나님

오늘의 주제는 '광야의 삶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삶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먼저 신명기 8장 1,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모든 사람들이 '저주'나 '고통'이라고 말하는 광야가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까? 광야라는 곳은 끝없는 사막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축복'이라니요? 2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광야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분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고 우리에게 축복과 사랑을 한없이 쏟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심판이나 멸망이 아니고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광야는 우리에게 고통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울 지라도 축복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깊고 깊은 사랑과 은혜를 잘 몰랐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원망과 불평과 시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그들의 삶의 전체는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만 생겨도, 배만 고파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두신 것은 겸손하게, 원망과 불평하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인데 이 백성들은 무려 40년동안이나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모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이 내리는 열가지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마지막에는 장자가 죽는 것까지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통과한 것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 길을 걸어서 건넜으며 애굽의 군대들이 그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원망하고 불평하고 시비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로 끝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1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은 사람들은 2세대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불평하는 사람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실수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 자신의 잘못이 보입니다. 학교에 가기를 좋아하는 학생을 보셨습니까?

아비가 매를 들듯이

학교는 꼭 가야 되는데도 학생들은 방학을 제일 좋아합니다. 공휴일은 그들에게 제일 좋은 날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왜 그렇게 학교에 보내려고 애를 쓸까요? 그것은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는 힘들지만 교육을 시키고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광야'라는 학교에 집어넣고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그렇게 훈련시키십니다. 세상적인 생각, 습관, 철학, 문화를 깨끗이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의 백성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만 힘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힘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시시하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여러분이 소중한지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금 이 수준으로 팽개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격려하고 자극하고 도전하고 훈련해서 아버지가 매를 들듯이 하나님이 원하는 성품과 인격과 삶을 만들때까지 여러분을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학교입니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광야가 축복이라는 것을 인정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낮추어지길 원하심

왜 광야의 길이 축복이고 광야의 삶이 아름답습니까? 두번째로 하나님의 위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 두시며 두 가지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는 겸손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자기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백성은 겸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일을 하기보다 변하기를 원하십니다.
'낮추신다'는 말은 '겸손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대명사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주먹을 내미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높아진 사람은 다 낮추어지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게 주제 파악하고 사십시오.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광야훈련의 목적입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시험하사'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했다고 모두에게 졸업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 통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라는 학교에 넣고 순종하는지, 성경말씀대로 사는지를 하나님이 시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광야라는 곳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겸손해 질 수 있습니까? 고통을 주면 겸손해 집니다. 먹을 것 안주고 마실 것 안주면 사람은 자기 한계에 부딪힙니다.
편안하게 해주고 잘해주면 하나님 찾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열가지 재앙이 내리는 것이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기적을 본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믿음이 생깁니다.
모세는 왕의 특권을 가진 오만하던 사람입니다. 애굽의 수학, 지리학, 철학, 문학교육을 다 왕가에서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도 있던 사람입니다. 그 애국심이 지나쳐서 사람을 살인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40년동안 광야에서 삽니다. 말 못하는 짐승과 풀 한포기없이 소망이 없는 그곳에서 배운 것은 겸손과 온유였습니다.
순종보다 더 완벽한 신앙은 없습니다. 순종은 신앙의 절정입니다. 말할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고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하면서 순종하는 것, 이것처럼 위대한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불평하지 않으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전에 중국에서 선교사님들을 만났습니다. 한사람씩 간증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선교사로 가신 70세 넘으신 장로님 차례가 되자 그분이 일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올해 나이가 70이 넘었습니다. 선교사로 주님의 일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저의 못난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화를 잘냅니다.'라며 우셨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 성격 하나 조정할 수 없고 이 나이가 되어서도 화를 잘 내고 소리를 지르는 제가 무슨 선교사입니까?'
우리는 모두 다 침묵했습니다. 다 부끄러워졌습니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나이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데도 그는 '이것이 나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성격 좀 고쳐지게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여러분이 변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면의 삶, 인격이 변했는가'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있습니까?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말하는 정의는 사사기에 나오는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행하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의를 말하다 보면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십니다. 만일 정의의 칼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면 아무도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찬양을 부르며 그 앞에 나아와 구원받고 은혜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세번째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있고 밤에는 혹한 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도 그중의 하나인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부족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병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떡으로만 산다'는 것은 자기 방법으로,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간단합니다. 세상 음식을 먹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요, 하나님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 방법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양육위해 예비된 곳

네번째로 요한계시록 12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광야는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된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고통이요 부족함이요 제한받는 것이요 기다리는 것이요 안타까움입니다.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광야 는 우리가 변하는 곳입니다. 성장하는 곳입니다. 새로와지는 곳입니다.
여러분,돈 많은 사람이 좋은 집에서 음식을 잔뜩 먹은 표정을 떠올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 표정하고 고통과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서 기뻐하고 기적을 보고 죽음에서 살아나서 흥분하는 모습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어떤 얼굴이 진짜 얼굴입니까? 여러분이 모두 다 그런 얼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보석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축복입니다.
광야는 우리를 양육하는 곳입니다. 저는 40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시간은 인생의 황금기의 전부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자녀를 낳아서 기르면 대학을 가서 졸업을 하고 직장에 다닙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남자는 스물 일곱, 여덟 정도에 결혼을 합니다. 거기에다 40을 더하면 몇살입니까? 70살이 다 됩니다. 광야에서 보낸 40년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 광야의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단을 받고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다 보면 모순도 있고 갈등도 있고 이율배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온전히 새롭게 만들어주시며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기막힌 소리입니다. 40년 동안 광야길을 걸었는데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릍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고난이 오면 내 몸에 있는 시시한 것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복잡하고 바쁜줄 아십니까? 불필요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보고 성경공부 하자고 그랬더니 바쁘다고 거절을 합니다. 정말 바쁘십니까? 무엇때문에 바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 때문에 바쁜 것이 아니라 안해도 될 것때문에 바쁘게 삽니다.
불필요한 것을 다 내려놓고 중요한 것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천국까지, 영원까지 가져 갈 수 있는 것을 붙들고 사십시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만들것이며 복된 사람으로 축복해 주실것이라는 내용이 7절부터 있습니다.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고난과 훈련의 때가 끝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결코 먹을 것에 궁핍함이 없습니다.
15, 16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고난이 아니고 고난을 뚫고 나간 이후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과 더불어 성실하게 산 사람은 하나님이 천국의 면류관을 그에게 씌워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모든 현실을 보면서 참 기뻐합니다. 우리는 지금 대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온 민족 전체가 난도질을 당한것처럼 피투성이입니다.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술받아야 합니다. 곪은 것은 수술을 받아야 회복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달라질 것입니다. 기업체는 사업을 다른 방법으로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쓰실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좋은 지도자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다 알았습니다. 우리의 과거역사와 우리의 실력을 다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왜 한국에 4만개의 교회와 천만 성도를 주셨을까요? 저는 이 분들을 통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이 있다고 믿습니다.
광야에서 이 비밀들을 발견하면 흥분합니다. 광야가 갑자기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국을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 고치기 위해 수술하고 계십니다. 이때 우리는 겸손하게 수술을 받아야 됩니다. 다시 거듭나야 됩니다. 세계를 향해 우리 민족은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광야의 축복입니다. 현실의 고통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변하여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