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만나의 축복 (출 16:1-12)

첨부 1


지난주에 우리들은 단물에 관한 축복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광야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저주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에게 광야는 축복이요, 기쁨과 흥분의 연속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 도착해서 만난 첫번째 경험이 갈증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축복과 고통이 항상 공존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실때는 축복도 주시고 고통도 주심으로 말미암아 축복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고통을 통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합니다. 그들이 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삼일째 고생하던 날 한 물을 발견하고 가보았더니 먹지 못할 쓴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 어서 가끔 이런 일을 겪게 됩니다. 기적인줄 알았는데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때 우리는 또 한번 절망합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제일 쉽게 반응하는 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고통이 오고 절망이 올때 그 뒤에 있는 세계를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보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쓴물을 기적같이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한 나무를 보게 하시고 그 나무를 꺾어서 쓴물에 던지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단물이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광야에서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쓴물이 단물이 되었던 장소를 가리켜 엘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엘림에 머물러 있을수 없었기 때문에 살만한 곳을 찾아 산악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엘림과 시내산 중간쯤에 신광야가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할쯤 되어서 또 한번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것이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양식은 떨어지고…

이월 십오일이라면 애굽에서 나온지 한달 가량 된 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떠날때 음식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준비한다 하여도 한달이 지나면 다 없어집니다.
사막을 계속 걷고 있는데 음식은 떨어지고 갈 길이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음식이 떨어지게 되면 불안해집니다. 쌀독에 쌀이 없고, 잘 다니던 직장을 잃어버리고, 사업이 망하고 지금 먹고 있는 밥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될때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불안해지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것이 떨어지고 몇끼 남지 않게 되자 불안해지고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에서 40년동안 미리 연습을 한 사람입니다. 여기가 어디쯤 되고 얼마만큼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처음이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더욱 불안합니다.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하는가? 혹시 우리는 여기서 굶어 죽는 것은 아닌가? 그들은 하나님앞에는 대들지 못하고 모세에게 대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대드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사람은 고생하면 과거를 생각하고,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픈 고통앞에서 약해집니다.
우리 민족도

6.25때 그런 고통을 겪었읍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모세는 조금만 더가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애굽에 있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원망을 합니다.
사실 인간은 속물입니다. 겉보기에는 멋있고 이상을 꿈꾸는 것 같지만 실제는 언제나 현실의 벽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배고픈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배부른 돼지를 더 원합니다. 우리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문제는 위대한 주제가 아닙니다. 시시한 것을 가지고 너무나 심각하게 자기를 자학하고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작은일 앞에 우리는 인생을 걸고 고민합니다.

이상을 잃지 말아야

여러분,왜 광야가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지 아십니까? 고통스러워서도 돈이 없어서도 건강이 없어서도 환경이 나쁘기 때문도 아닙니다. 광야에 제일 힘든 상황은 꿈과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비전이 없고 이상이 없고 꿈을 잃어버렸을때 비참해 집니다. 우리는 어렸을때는 꿈을 많이 꿉니다. 그런데 현실에 부딪혀서 결혼하고 직장가지고 애기낳고 살다보면 점점 이상이 작아집니다. 그러다 보면 살아가는 존재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따르는지 아십니까? 뻔한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말하는 것도 가는 곳도 생각하는 것도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고통스럽고 어려울지라도 꿈과 이상을 가지고 미래를 보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배고픈 현실앞에 하나님이 주셨던 기막힌 축복과 약속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홍해의 기적도 잊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대한 환상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살기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삶의 비전을 가지고 나갈때 어떤 고통과 역경도 이겨낼수 있을 줄 믿습니다.
꿈이 있고 비전이 있는 교회는성장합니다.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4절에 나와 있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보고 다루십니다.만일 하나님이 현재의 나를 보고 다루신다면 여기 존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형편없는 존재들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다루시지 않습니다. 지금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형편없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변하고 새로워질 그들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인간은 현재 밖에 볼수 없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여러분,미래를 보시고 소망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조금 배가 고프고 학교에 떨어지고 결혼에 실패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수 있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양식에 관심이 있다.

4절의 말씀에서 배울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너희를 위하여 양식을 하늘에서 비같이 내린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양식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 세상살이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병든자가 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기 자식을 축복하듯이 우리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의 필요인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이미 공급해 주었다는 것입니다.'내가 공급해 주었는데 왜 안받은 것처럼 고민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음식을 다 차려놓고 정말 따뜻하고 맛있는 만나를 준비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먹는 문제로 괴로와 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입니다. 북한의 정치는 '쌀정치'였는데 쌀로 그 사람들을 다 통제했다가 지금은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쌀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양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착각은 내가 노력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양식을 하늘에서 비같이

두번째 메시지는 하나님의 관심은 '양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양식에 대한 관점은 '내가 노력해서 먹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서 쌀 사다가 밥을 먹고 직업이 좋은 사람은 좋은 쌀먹고 직업이 나쁜 사람은 나쁜쌀 먹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라는 부자나 가난한 자가 먹는 것이 비슷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나라는 부자는 너무나 잘 먹고 가난한 사람은 못먹는 나라입니다. 음식과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음식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식의 본질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음식은 내가 노력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처럼 양식도 하늘에서 비같이 주셨습니다.
입이 있는 것은 먹을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식구라는 말을 쓰는데 두식구라는 이야기는 먹는 사람이 두사람, 다섯식구는 먹는 사람이 다섯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내가 노력해서 잘먹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에 매일 음식을 쌓아놓고 열쇠를 잠궈놓아도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는 사람은 마음에 안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가 노동하고 땀을 흘려서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음식을 먹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지 밥먹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직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그것이 내가 밥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한다면 인간은 너무나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오만해지고 못 벌면 열등감을 느낍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관점이 아닙니다.
4절에서 또 하나 배울 말씀은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크리스천의 양식은 이렇게 하나님이 만나를 비같이 온천지에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믿지못하고 '그래도 내가 가서 고생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가서 고생해라'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양을 보면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비슷한데 그것은 약간의 부족함을 느끼고 산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큰 월급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올려달라고 하고 큰 건강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건강하길 바라며 집도 어마어마하게 큰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방 한칸 정도 더 달라는 것입니다. 직위도 갑자기 사장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 직위정도 진급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런것이 다 모이면 원망과 불평과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 만사가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에 그런 사람이 있는데 제 차를 운전해주는 형제가 얼마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형제는 요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삶의 조건은 그 형제보다 내가 더 낫습니다. 그 형제는 조그만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서 삽니다. 행복이란 양이 아니고 질입니다. 좋은 조건이 있다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속에 있어도 하나님 믿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광야에서 발견된 축복이란 '무엇을 많이 가졌냐'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굽에 임했던 재앙이 하나도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양식은 두가지가 있는데 세상 양식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있습니다. 세상사람은 세상 음식먹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양식을 먹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양식을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식은 내가 노력해서 먹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양식은 1일분

그러면 그 양식은 어떤 양식이겠습니까? 세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시는 양식은 일일분입니다. 하나님은 따뜻한 음식을 주기 원하십니다. 상한 것도 아니고 식은 것도 아닌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일분도 한달치도 일년치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재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양식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월용할 양식을, 연용할 양식을 먹습니다. 주일날 한번 정도 예배를 드리고 가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끼 먹는 것입니다.

양식은 매일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틀분 수확을 하면 그 음식을 썩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음식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로 북한 사람 몇번 먹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음식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거두게 되면 썩습니다.
또 한가지는 안식에는 이틀분을 구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음식에 안식일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과 예배는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새벽은 축복의 보고

또 한가지는 만나는 해뜨기전 아침에 거두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겠습니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21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13절에서 15절을 보면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만나는 새벽이슬이 내린 후에 만들어진 꿀과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비같이 40년동안 주셨습니다. 만나는 해뜨면 없어집니다.
여러분,새벽의 이슬이 만나였다면 만나를 얻어 먹으려면 새벽기도에 나와야 합니다. 새벽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못나오는 이유는 늦게 잔다는 것인데 늦게 자면 정신병과 우울증에 걸립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중에는 정신병이나 우울증 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새벽에 매일 나와서 새벽을 사는 사람치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술먹고 도박하고 원망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새벽은 축복의 보고입니다. 체질이 안되는 사람도 1년 고생하면 됩니다.
이제 만나에 대한 세번째 신약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31-33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구약에는 모세를 통하여 만나를 주었는데 만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단물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광야에서 예수님은 식탁에 떡과 포도주를 베풀어 놓으시고 지치고 배고프고 상처받은 여러분들을 초대해서 먹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통 떡을 먹으면 다 배고프겠지만 예수님이 주는 생명의 떡을 먹는자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너 그럴수 있느냐'라고 따지지 않으시고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먹이고 난 후에도 따지지 않으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예수님이 광야의 식탁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내 살을 먹으라 내 피를 마셔라. 이것은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생명의 떡이다. 이 피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이다. 이것을 먹고 세상에서 승리해라'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