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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택하신 곳 (신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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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방식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애굽은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아가는 땅이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 땅에서는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식물을 얻어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식물을 얻기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바탕으로 한 수고와 노력은 자신의 능력과 힘을 바탕으로 한 수고와 노력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기를 바탕으로 한 수고와 노력에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즉 자신이 목적하고 원하는 결과를 스스로 얻어내기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입니다. 따라서 애굽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은혜를 언급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원하는 결과가 달성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바탕으로 한 수고와 노력은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어떤 수고와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수고와 노력에 대한 결과가 어떤 형태와 분량으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수고와 노력은 자기가 했지만 주신 분은 여호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은혜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세워놓은 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을 삽니다. 무엇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립니까? 인생 목표를 자신이 세우고 달성 또한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목표가 달성됐다 하더라도 잠시 행복을 맛볼 뿐 또 다시 더 높은 목표를 정하고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애굽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인생입니다. 스스로 평안과 행복을 파괴하고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자기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목표를 정하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책임지는 분은 여호와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책임을 여호와께 따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기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가 얼마가 주어지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 은혜로 사는 신자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인생의 지혜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은 평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대부분이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직장에 대해서든, 자식에 대해서든, 아내와 남편에 대해서든, 환경에 대해서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말고 이렇게 되었으면'하는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으면'하는 환상이 현재의 삶에 대해서 불만을 일으키게 되고, 그 불만으로 인해서 평안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었으면'하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은혜의 바탕 위에 서있지 못하는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행복과 평안은 결코 주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 통로가 막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욕심이 행복을 멀리 쫓아 버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의 통로가 막혀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통로를 뚫어보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종교 행위 역시 복의 통로를 뚫어보기 위한 인간의 열성으로 전락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을 다른 차원에서 구분한다면 애굽 땅은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사는 땅이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는 내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있습니다. 내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름이 높아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름을 높여주는 신은 우상입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우상을 멸하라는 차원으로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3절 마지막에 보면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고 합니다. 즉 이름과 이름의 싸웁니다. 우상의 이름은 멸하고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는 곳, 그 곳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느 곳이든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을 불사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우상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우상을 만들고 그 이름을 높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이름을 가집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름이 곧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이름이 낮아지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천대받고 무시 받는 이름으로 전락된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으로 여깁니다. 오직 내 이름만 높이기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하는 곳, 그곳이 바로 애굽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의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그 우상을 멸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어느 곳에서든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라고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제사하는 것입니다. 왜 꼭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제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무 곳에서나 하면 안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 특별한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모두 아닙니다. 택하신 곳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택하신 곳이 어디냐를 알려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곳에서나 제사하지 못하고 택하신 곳에서만 할 수 있었다면 이것은 오늘날도 같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아무 곳에서나 예배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바로 이점을 알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출 20:24절에 보면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말합니다.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이란 제사가 행해지는 곳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은 제사를 의미하는 것이고, 제사란 흠없고 죄없는 제물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일이란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란 법궤 위에 피가 뿌려지는 일이 행해지는 성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장소에 솔로몬이 날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성전이 세워지게 되고 지금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을 하신 주님이 곧 성전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져 있고 따라서 그리스도가 오늘날의 택하신 곳이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이라는 장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것이 곧 택하신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리스도안에서 예배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리기를 우상을 깨뜨리고 불사르는 것은 우상의 이름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이 높임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소원을 간직한 채 나온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에서는 흠없는 제물이 희생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일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인간이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희생을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희생을 진심으로 아는 신자라면 자기 이름은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름이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희생을 보면서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택하신 곳에서만 예배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희생이 없는 예배는 예배로 여기시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택하신 곳에서의 인간의 자기 자랑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이란 자기에게 가치를 두는 것인데, 자신에게 가치를 두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희생의 의미를 알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른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택하신 곳, 그곳에서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안에서 주님을 부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이란 내 이름은 높여지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일만 높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희생 앞에 내 이름은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철저하게 인식이고 내 이름은 무너지고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그 자리가 오늘날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신 택하신 곳, 즉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하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불법을 행하는 것으로 단정하셨습니다(마 7:22,23). 행위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법칙에서 어긋나는 모든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4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사람들처럼 여기저기서 자기들 마음대로 신을 섬길 장소를 찾아서 신을 섬기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절에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즉 광야에서는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택하신 곳에서만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마음대로 생각하고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서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복이 주어집니다. 복은 주어지는 통로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닙니다. 출 20:24절에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복이 강림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복이란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는 그 자리에 강림하는 것이지 인간이 선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강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가 복의 통로가 되지 못한다면 자기 행위에 대해서 그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두려고 합니다. 이 행위 때문에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은 자기의 행위를 통해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행위에 전혀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신자는 자기 이름을 포기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만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모두가 헛됨으로 끝나게 됩니다. 내 이름이 부서지고 내 이름에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복이 강림합니다. 그러나 그 복도 역시 우리의 이름을 높여주는 복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복이 주어질 때 내 이름이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면 그 사람은 애당초부터 자기 이름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께 나온 자입니다. 아예 자기 이름에 기대를 두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것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주어진 것으로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것이 곧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나 때문에 하나님이 희생하셨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십자가 밑이고 내가 죽어지고 없어진 자리입니다. 이 마음이 없이 예배한다고 나서는 것은 예배도 아니며 여기저기서 자기 마음대로 예배하는, 즉 우상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여지는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이름을 높이고 인간의 이름에 가치를 두면서 모인다면 그 어떤 장엄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는 십자가를 믿는 그 자리가 복이 주어지는 장소입니다. 자기 이름이 있는 곳에는 복이 주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이름이 있는 곳에는 피흘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모두가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기 이름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사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그런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이름이 포기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때 그때 '주여라고 부르는 그 자리가 복이 강림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애굽은 인간의 욕망으로 사는 장소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어 낼뿐입니다. 이시간 여러분 스스로에게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애굽 방식이 아닌지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욕망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포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헛됨이고 썩어짐이며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임을 알기 때문에 여호와를 신앙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으로 인해서 어떤 득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가장 큰 득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만 산다면 무엇을 잃어도 괜찮은 것이 신앙입니다. 이미 복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사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무너지는 것이며 내 이름의 가치를 헐고 깨뜨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곳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곳에서만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가 예배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욕망이 포기되지 못한 채 나온 자리이고 예배하는 것이라면 결코 예배가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 이름을 두신 한 곳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택하신 곳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신자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제물 되신 것 때문에 우리에게 복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은혜로 주어진 것을 형제와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안다면 형제를 향한 마음이 열려질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이 누리는 복을 나누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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