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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진 (신 2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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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예수님만을 선포하고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고 살 것을 말하기가 아주 난처한 현실입니다. 사람은 땅의 생활이 지장을 받지 않고 있을 때 종교쪽에 마음의 여유를 두게 됩니다. 그런데 땅의 생활이 지장을 받고 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산적해 있는 시점에서 예수님만으로 감사하는 삶을 말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 그 마음속에는 '목사 당신도 이런 일을 한번 당해봐라 예수님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지!'라는 반발심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만으로 감사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것도 세상의 것에 대해서 근심 걱정이 없는 여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IMF로 인해서 수입이 많이 줄어서 지출도 줄이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과연 무엇에 대한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이는가를 조사했을 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오락과 취미생활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락과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삶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돈의 여유로움과 마음의 여유, 이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 바로 오락이며 취미생활입니다. 그런데 수입이 줄었다는 것은 돈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이고, 돈의 여유가 사라짐으로서 마음의 여유까지 같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오락과 취미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즉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생활이 오락과 취미의 범주 안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라면 돈이 줄어들고 마음의 여유가 줄어든 현실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겠습니까? 오락과 취미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듯이 교회, 예수님을 향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회에 발을 끊는 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마음을 끊어버립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만으로 감사하고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을 끊어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현실을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평안을 가져다 줄 나만의 예수를 찾게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답답해서,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이것을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서 해소해 보고자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 앞에서 하늘의 것만 말하고 예수님만을 말한다는 것은 아주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이러한 난처함이 있습니다. 은석교회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으로 감사하자'는 말을 하기가 참으로 난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일시적이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는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저는 목사에게는 교인들의 입장과 환경에 비례한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위해서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고 조정할 하등의 권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입장에 끌려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 여러분의 입장을 들고 하나님께 나가는 대리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을 들고 여러분께 나오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땅의 것으로 인해서 아픔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힘든 일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입장만 대변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입장만 대변하는 자리에서 충실한 것, 그것이 바로 저도 살고 여러분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릴 것은, 하나님께 나오실 때 여러분의 입장은 접어두고 나오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이 어떤 것인 가에만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면 여러분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과 괴로움 힘든 것들이 단지 나 개인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난이 아니라 믿음 없는 자들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나'라고 하는 시각과 입장에서 본다면 좌절과 절망과 낙심과 불만 밖에 없으나 다른 자를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시각과 입장에서 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면 분명히 자신의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여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해결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교회로 모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하시면서 개인의 입장을 고수한 채 나오신다면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도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만 말하기가 난처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개인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을 때의 제 심정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개인의 입장은 접어두고 하나님의 입장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나오셨다면 예수님만 말하는 저는 참으로 신이 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나의 입장을 가지고 본다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도대체 성경에 왜 이런 말을 기록했는지 아리송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몽설에 대한 얘기, 배설물에 대한 얘기, 도대체 하나님은 이러한 말을 무엇 때문에 계시라고 하는 성경에 기록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9절에 보면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악한 일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후에 몽설과 배설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악한 일이란 곧 몽설 하는 것, 배설하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가 몽설 하는 것이나 배설하는 것은 모두가 생리현상입니다. 인간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거나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몽설이란 몽정이라는 말로서 무의식 즉 꿈속에서 여자와 성관계를 가짐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리현상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조절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악하다고 말합니다. 배설하는 것 역시 인간이 억제하거나 참을 수 없는 생리현상입니다. 이렇듯 둘 다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발생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악하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우리 개인의 입장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해답은 전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몽설하고 배설하는 것은 악한 것이니까 하지 말자'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할 것입니까?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아주 쉽게 그 의미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업친데 덮친다는 격으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그런 일들이 하필이면 자신에게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기 입장에서 보면 전혀 이해가 안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여호와의 총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총회는 신낭이 상한 자, 신이 베인 자, 사생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의 총회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관계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탄생되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땅에서 아무리 저주를 해도 그 축복이 취소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총회를 저주하고 괴롭히는 무리들이 주위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내 자신이 하늘의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땅의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우선 1-8절까지 보면 총회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비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진이라고 하는 말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총회'나 '진'이라는 말은 결국 여호와의 백성의 무리라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단체의 의미로만 생각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은 백성이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숙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이라고 하는 것은 총회와는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접근되어지고 있습니다. 총회는 '어떤 무리'라는 의미로서 다가오지만 '진'이라는 것은 '어떤 무리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의미로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진'은 '진지'를 말합니다. 군인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모여있는 장소입니다. 9절에서도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오늘 본문은 전쟁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은 자기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사람대 사람의 전쟁을 하는 군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싸우는 군대를 말합니다. 자기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원수와 싸워야 할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그 지휘자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대장 되어서 하나님의 지휘를 받으며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군대가 있는 진지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지라면 그에 합당한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싸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하나님의 군대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원수와 싸운다고 하는데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흔히 '사단이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단이다'라고 하는 말 뒤에는 '나는 사단이 아니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 자신이 사단이 아닌지 사단인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의 모습은 피조물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자리는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은혜를 망각해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존재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항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보다는 내 노력과 힘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행동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들에게 원래 인간의 모습이 있습니까? 피조물의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은혜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십니까? 인간은 이미 그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육이 된 인간에게서는 참된 인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마귀의 생각으로 가득찬 채 내 인생과 내 삶에 치우쳐서 나의 소원과 내 목표를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도 내 입장만 고수하고 내세우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단은 누구입니까? 사단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사단이고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싸움의 대상은 내 안과 밖에 항상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여호와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것은 힘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것은 진을 거룩히 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음으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진을 거룩히 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싸움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진을 거룩히 해야 할 이유는 여호와께서 진중에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레 11:45절에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분이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이십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중에 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싸움은 거룩대 비거룩의 싸움입니다. 거룩으로서 비거룩을 드러내고 공격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거룩 되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이스라엘이 거룩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적을 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룩은 부정한 것과의 구별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몽설이고 배설물 처리법입니다. 10,11절을 보면 몽설함으로서 부정하게 된 자는 진 밖으로 나갔다가 해질 때에 목욕을 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오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것과 거룩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루는 해가 져서 다음날 해질 때까지로 계산합니다. 그렇다면 몽설 함으로 부정한 자는 해질 때 목욕하고 해진 후에 들어오라는 것은 정결한 자로서 새날을 시작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몽설을 부정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문자 그대로 몽설 자체를 부정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부정하다는 것은 인간 자체가 부정한 자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비거룩과 싸워야 할 자이기 때문에 항상 부정한 것으로부터 구별되게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12,13절에서 말씀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대변을 볼 때는 작은 삽을 들고 진 밖으로 나가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대변을 본 후에 다시 그 배설물을 덮으라는 것입니다. 배설물이 더럽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더러움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럽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더러운 것을 진밖에 구덩이를 파고 배설한 후 흙으로 덮으라는 것도 역시 부정한 것, 더러운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군대의 진에서는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을 들어서 비거룩을 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만이 마지막때 남고 비거룩한 것, 즉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워져 사라지고 맙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비거룩의 존재들이 마지막 때 할말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존재인 하나님의 군대를 통해서 비거룩한 자들의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나'라고 하는 입장에서 나를 보면 한 개인이고 오직 내가 중요한 존재이고 그러기 때문에 나의 삶이 편하고 부족함이 없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입장에서 보면 저와 여러분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내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한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내 개인의 입장은 무시되고 덮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나를 보면 지금 당장 돈 버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돈버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군대답게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정한 것을 몰아내고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대다운 모습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비거룩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존재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몽설이나 배설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몽설하고 배설하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기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부정한 존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깨끗함을 얻을 수가 없고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가 부정한 우리를 깨끗이 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피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피가 나를 깨끗케 한다는 것을 고백하며 내 스스로 거룩하게 되려고 하는 노력을 중지할 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거룩함을 입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이 거룩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서 모든 일을 해보려고 하는 비거룩의 무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을 입고 사는 군대로서 살아갈 때 날마다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의 거룩을 만들어 내고 나의 힘으로 깨끗해지려고 하고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고방식과의 싸움입니다.

항상 자기 입장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살려고 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왜 살고 있는지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왜 고통이 오고 어려움이 오는지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새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하나님의 전쟁을 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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