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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창 26: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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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이삭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여러가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거했지만 기근이 오자 두려워하며 애굽으로 도망가려 하다가, 그랄에 머물렀던 모습을 보였습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완전한 신앙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다 불완전한 신앙에서 완전한 신앙으로, 미숙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원하셨고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셔서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듯이 이삭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많은 재산을 주십니다. 이것으로 인해 블레셋인이 그를 시기하여 내쫓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이삭이 파는 우물마다 물이 나오고 이 우물을 블레셋인이 약탈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와중에 블레셋인들은 이삭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되어 그를 두려워 하게 됩니다. 이삭은 지는 것 같고 패배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이삭의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삭을 공격하지 못 하고 화친조약을 맺자고 제의하게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루는 선

이 사건들을 통해서 볼 때 이삭에게서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첫번째는 이삭은 자기의 우물을 약탈해 가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37편 1, 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하나님의 사람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신에게 악을 행하고 손해를 끼치고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보복을 하지 않습니다. 행악자는 하나님이 다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이것이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오른 쪽 뺨을 치면 왼쪽 뺨도 돌려내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어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살면 패배자 같고, 세상에서 무시당할 것 같지만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은 결코 무시당하거나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삭이 복을 받는 과정에서 그가 악착같이 돈을 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를 주셨다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며 돈을 벌지만 어느 순간 재산을 다 잃고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에게 불만이 많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 보면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일을 당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늘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없이 우물을 빼앗기면 다른 데 가서 우물을 팠던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거나 망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 편이십니다. 세상이 당신을 무시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이삭을 통하여 발견하게 됩니다.
복을 받는 과정에서 이삭에게 두번째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왔다는 아주 신비스러운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는 놀라운 표적이 따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왔다는 표적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한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가 많이 있을 줄 믿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이 구절은 짧지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삭의 변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블레셋의 수도였던 그랄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거처했던 브엘세바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완전한 순종을 해서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그랬던 이삭이 엉거주춤한 그랄의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의미하는 브엘세바로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엉거주춤한 상태로 믿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서 적당히 예수 믿는 것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한번 들춰보지 않다가 주일이면 그 성경을 꺼내 들고 교회오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일대 대변혁과 혁신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브엘세바는 창세기 22장 19절에 나타나는 장소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나오는 장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들 이삭을 죽이는 것을 막으시고 그 옆에 숫 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이삭 대신에 양을 제물로 드리고 하나님의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갔던 장소가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는 이런 의미에서 영적인 장소로써 많은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승리하시고, 함께 하셨던 장소가 브엘세바인데 이제 이삭은 기근 때문에 브엘세바를 떠나서 그랄에 기거했다가 이제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은 복이란 아버지의 집, 아버지가 살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임재

여러분,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자라는 과정에서 아버지한테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버지의 방식을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실패를 겪고 나서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 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은 철이 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육신의 아버지와 관계가 나쁜 분들은 오늘 다 철들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24절을 보면 이삭이 그랄에서 브엘세바로 떠나던 날,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적당히 신앙생활 하던 내가 마음을 정리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만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마음에 결정하는 날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의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말라’.
이것이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었던 첫번째 메시지 입니다. 이삭은 우물도 다 빼앗기고, 그랄에서의 부도 내려놓고 브엘세바로 향했기때문에 그때까지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적당히 믿으면 더 생깁니다. 여러분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안에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 어떤 형태의 두려움이든 그것이 돈이나 죽음,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지든 간에 이 시간에 그 두려움이 떠나가기를 바랍니다.
24절 후반절을 보면 하나님은 후속 발표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그 자손을 번성케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순간부터 두려움이 사라지고 믿음과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믿음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결국은 안심하는 마음, 평안한 마음입니다. 미래는 찬란한 축복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천국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하나님의 임재는 곧 예배로 이어집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삭은 황홀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잊지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떠나시지 않는 하나님, 내가 두려울 때 나를 찾아와 주셔서 나와 함께 했던 그 하나님’.
그렇기에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지 않을 수가 없고,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우물을 파고 새로운 삶의 근거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26, 27절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이상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삭이 그랄을 포기하고 이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그 때, 놀랍게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을 대동하고 그를 방문한 것입니다. 이삭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이 찾아온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방문의 목적을 묻는 이삭에게 아비멜렉은 이런 답변을 합니다.

선한 영향력 끼치는 그리스도인

28, 2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여러분, 아비멜렉 왕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네가 떠나고 나니까 알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을 잘못 다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말 뜻깊은 장면입니다. 이삭이 싸우고 대들어서 얻은 명예가 아니라 져주고, 포기하고, 당했는데 하나님이 이삭의 손을 들어서 승리를 안겨준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에게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니 홀대해서는 안되겠다’라고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삭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랄을 떠났는데 이제 오히려 두려움은 아비멜렉의 마음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삭을 찾아와서 서로 공격하지 않는 동맹조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예수 믿은 보람이 있고, 손해보고 져준 보람을 느낍니다. 여기서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지는 진정한 축복과 보람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돈을 빼앗거나 권력으로 살거나 착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져주고 이기는 사람이며, 매맞고 승리하는 사람이고, 쫓겨나고 영광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정치운동하고, 시민운동 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세상이 변하는 방법은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왔는데 마음까지 오지 않았고 몸만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어디 갈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서 단지 시간을 때우듯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곧 교통사고라도 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있으니까마치 예배드리는 것을 부적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환자를 심방하러 가십시오. 아파서 교회 못오는 사람들과 외롭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찾아가서 격려해 주는 것은 예배의 연장이며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즐겁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십시오. 이런 사람을 사탄과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 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생각을 쏟아 부으면 기적이 일어나고 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0, 31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여기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원수가 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이러한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에 당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세상에 영향력을 주지 못 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32, 33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였더라

또 다시 우물을 파니까 물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삭 편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택의 책임

저는 우리 성도님들과 자녀들이 이삭이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오듯이, 하는 사업과 일마다 복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신명기 28장 2절에서 6절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는 어느 곳에 살아도 복을 받고 그 소생과 토지와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런 복들과 놀라운 기름 부으심이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마다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34, 35절을 보십시오.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26장을 끝내면서 사족 같은 이야기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에서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에게도 항상 맘을 상하는 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매력있는 사냥꾼이었던 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하지 않고, 자기 정욕대로 여자를 얻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헷 족속의 여자 곧 가나안의 여자였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의 아내를 고를 때 가나안 여자 중에는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의 원칙입니다.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는 아내를 데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축복의 물줄기를 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데려온 가나안 족속의 딸들은 아마 굉장히 육체적으로 매력이 있고 멋있으며 화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 여자들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35절을 보니까 그 부모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복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함부로 결혼하지 마십시오. 결혼은 오다가다 눈이 맞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신분의 고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축복의 물줄기는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으로 결혼하고, 눈맞아 결혼하면 그당시에는 좋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축복의 물줄기가 다음 대에서 끊어지고 맙니다. 에서는 불행한 결혼을 선택합니다.
여러분,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선택은 내가 하고, 결과는 하나님 보고 책임지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선택했다면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혼을 결코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론을 말하자면 결혼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됩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기준을 선택하면 결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결혼은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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