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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는대로 거둔다 (창 29: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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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지만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루게 하십니다. 대가를 치루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대가를 치루었을 때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야곱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에 큰 좌절과 절망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방황합니다. 출발은 있으나 목적지가 없을 때 방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야곱이 방황할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라고 교회에 오실뿐만 아니라 성령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기쁨으로 채우는 사랑

야곱이 만난 하나님은 그를 꾸짖지 않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야단쳐서 바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면 변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녀를 심하게 야단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야단친다고 아이들이 변한다면 쉽고 간단할 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은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줄 때 스스로 변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야곱은 상처를 치유받습니다. 아버지와 형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상처가 하나님을 만나서 사랑과 위로를 받고나서 치유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치유됩니다.
야곱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절망중에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그런 계기 와 용기를 갖게 됩니다. 야곱은 변했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사람은 새로운 가치관과 목표를 갖게 됩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둘째 딸 라헬을 얻기 위하여 칠년 동안을 무보수로 일합니다. 사랑하면 돈을 받지 않고도 일합니다. 사랑하면 칠년을 수일같이 보냅니다. 사랑하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비밀입니다. 그러나 근심걱정하고 갈등하고 미워하면 7일도 7년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 복잡한 세상, 서로 속이고 속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비밀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사랑하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야곱은 7년이라는 세월을 수일처럼 느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야곱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보냅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빨리 갑니다. 야곱은 7년을 기대감과 설레임과 흥분으로 보냈습니다. 1년이 지나면 ‘6년 남았구나’ 또 1년 지나가면 ‘이제 5년 남았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그리움과 설레임과 기쁨으로 세월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가는 사람은 세상을 기쁘게 삽니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늙으면 예수님을 만날 시간이 더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달, 두달 세월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계산합니다. 그래서 ‘기한이 찼으니’라고 야곱이 먼저 라반에게 이야기합니다. 야곱이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고 목적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계산하며 삽니다.
그는 그 여자를 달라고 하지 않고 ‘내 아내를 달라’고 합니다. 라반의 마음은 몹시 언짢았습니다. 그에게는 시집가지 않은 첫째 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문화에는 첫째 딸이 시집가고 나서 둘째 딸이 시집가게 되어 있는데 둘째 딸을 먼저 보내고 나면 레아는 혼사길이 완전히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은 어떻게 해서든지 레아를 먼저 시집보내야만 했었습니다. 라반이 언짢았던 또 다른 이유는 만약에 야곱에게 자기 둘째 딸 라헬을 주고 나면 둘이 자신의 집을 떠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라반은 일꾼을 잃어버립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라반은 결혼식을 배설했습니다. 이 결혼식은 7년전부터 소문난 유명한 결혼식입니다. 이 결혼식에 대해서는 라반, 야곱, 라헬 그리고 라헬의 언니 레아도 잘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다음 날 아침,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신부가 바뀌었던 것입니다.
23, 24절을 보십시오.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저녁에 라헬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아버지 라반은 레아를 들여 보냈습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음모였습니다. 사기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사기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사건일 때 성립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이런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먼저 라헬은 어떻게 했었을까요? 분명히 라반이 라헬에게 찾아가서 ‘언니를 먼저 시집보내야 하지 않느냐’라고 통 사정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 라헬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아버지가 협박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날 밤 라헬을 감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레아를 생각해 봅시다. 레아는 당돌합니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를 박차고 들어갑니다. 어쩌면 자기 동생이 7년 동안 야곱과 연애하는 것을 보는 중에 자기도 야곱을 사랑하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그런 음모를 계획했을 때 레아는 동의합니다. 동의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야곱이 레아와 하룻 밤을 자면서도 레아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남을 속이는데 명수이고 잔꾀가 많고 교활한 사람인 야곱이 이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몰랐겠습니까. 그것은 레아가 철저하게 변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헬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라헬의 옷을 입고 라헬처럼 화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바로 7년 전에 야곱이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아버지에게 사기쳤던 방법 그대로 야곱이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야곱도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염소새끼 털을 가지고 손과 목을 감싸서 에서처럼 꾸몄습니다. 거기다가 에서의 옷을 훔쳐서 입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염소새끼 구운 것을 산에서 사냥해서 가져온 고기라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지금 야곱은 자신이 한대로 똑같이 당합니다. 남에게 사기친 사람은 사기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 위로도 받고 새 출발을 하고 새 믿음을 가지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치루어야 할 대가는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치루어야 할 대가도 다 용서해 주고 없애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죄는 용서받지만 죄에 대한 대가는 치루어야 합니다. 야곱은 과거의 자기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야곱은 그렇게 사랑했고 기다려 왔던 라헬이 자기 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깨어보니 자기 품안에 있는 여자는 레아였습니다.
그는 항변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당신을 위하여 7년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외삼촌이 나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야곱은 황당함, 당황함, 허탈함, 억울함 그리고 분노와 수치와 굴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그런 것을 겪습니다. 아내나 남편한테 배신당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사업은 망하고 재산을 다 빼앗기는 경우,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패가망신당한 끝에 가족이 다 흩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미움, 분노, 복수심이 사람들 마음에 자라납니다. 야곱의 마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는 법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반대로 상처를 받을 때의 상황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합니다. 자기가 가해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피해받은 것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인생은 모두가 다 피해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평한 상황이기에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주지 마십시오. 그 상처는 반드시 심는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특별히 자기가 높은 지위에 있거나 돈이나 권력이 있을 때 마음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권력의 칼과 오만한 언어에 시달릴 때 당하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리는 사람은 자기한테 힘이 있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이 그 힘에 의해 상처입는 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합니다. 맞는 사람은 힘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상처가 됩니다.
야곱은 바로 이런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야곱은 흥분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7년 전 자신은 아버지와 형에게 이것보다 더 심한 상처를 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때 처음으로 그는 아버지와 형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혔는지 알았을 지도 모릅니다.

라반의 속성

26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라반은 뻔뻔하게 우기기 시작합니다. 사실 라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느냐 우리 문화에서는 그런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레아를 먼저 시집보내야 한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라반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틀린 말이고 사기극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그런 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옳다고 말해도 자신의 입장에서 옳은 것이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라반은 미리 말해서 이런 불상사를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야곱을 속였던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

이제 라반의 속셈이 나오고 숨은 동기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야곱을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7일 동안을 같이 있으라는 소리는 어차피 혼례식을 치루었으니 7일을 함께 있어서 결혼절차를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둘째 딸도 너에게 주겠다. 단 조건이 있다 7년을 더 무보수로 일해라’. 라반의 속셈은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그럴듯하고 멋있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을 제일 멋있게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알고 보면 속셈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교사로 가고 목사가 되어도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라고 아무리 말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말에 자기가 속고 자기가 말하고 스스로 감동받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28, 2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은 타협안에 쉽게 누그러집니다. 야곱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까닭은 줏대가 없고 우유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야기 한 것을 끝까지 끌고 나가지 않습니다. 야곱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는 심는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깨달은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사기 당했다고 펄펄 뛰다가 진짜 사기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언어폭력을 조심하십시오. 약한 자를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원칙은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말은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긍휼을 심으면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5장 7절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도와주고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도 여러분이 어려울 때 긍휼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자신은 외박하고 노름하고 멋대로 살면서, 자기 아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그러한 삶의 대가가 그아들에게 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심는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다들 대가는 싫어합니다. 죄는 자기가 짓고 대가는 다른 사람보고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대가는 본인이 받게 됩니다. 대가를 받을 때 ‘억울하다, 분하다. 하나님은 너무 하시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가를 치룰 때는 회개하십시오. 그때 복이 다시 시작됩니다. 억울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 대가는 고통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대가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잔꾀와 방법에 하나님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대가의 법칙 깨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여기서 더 귀한 진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원칙에서는 심는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원칙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심는대로 거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모든 저주가 끝나게 되고 모든 심판이 끝나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회복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이런 시련을 계속 겪어야만 했을까요? 그 대답은 야곱의 우유부단한 성격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고통을 겪을 때 잘못해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미숙해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함부로 말을 쏟아서 고난을 겪을 때가 참 많습니다.
야곱은 성격상 약점이 많은 남자입니다. 거짓말 하는 성격으로 약간의 사기성까지 있는 성격입니다.

큰 거짓말은 아니지만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할 때 과장을 잘 한다든지 틀린 것은 아닌데 옳은 것도 아닌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나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슬쩍슬쩍 섞어서 말합니다. 야곱은 이런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을 합니다. 별 죄책감 없이 습관처럼 거짓말 하는 분들은 그런 습관을 고치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의 이런 우유부단한 성격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믿지 않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적인 자기 경험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내내 찾다가 문제가 생기면 물질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받다고 놓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우유부단합니다. 레아면 레아, 라헬이면 라헬이어야 하는데 레아도 좋고 라헬도 좋다는 식입니다. 이런 남편하고 사는 부인은 굉장히 괴롭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줏대가 없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피곤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야곱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아이들까지 상처를 받았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사랑하려면 두 여자를 똑같이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아가 불쌍합니다. 레아의 인격은 어디 간 것입니까. 라헬을 더 사랑했다는 것은 야곱의 남자답지 못한 성격,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 편리한대로 하는 성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우유부단하고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야곱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기절을 10번 해도 또 다시 놀랄 수 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하고 부정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끝까지 인내하셔서 책임있고 정직하고 그리고 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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