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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십이지파 이야기3 (창 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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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듯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도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에도 베드로와 가룟 유다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야곱의 열두 아들들도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을 때 로마와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이 되었던 것처럼 야곱의 열두 아들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복과 기름부으심을 받았을 때 복된 열두 지파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열두 지파를 만든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 지를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열두 아들들이 한 어머니에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가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고, 시므온과 레위는 ‘잔해하는 기계’라는 말을 들을 만큼 성격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도덕적 편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열두 지파의 조상들로 삼아주셨습니다.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복된 지파와 자손이 될 때까지 그들을 돌봐주셨습니다.
특별히 열두 아들들의 이름은 대제사장의 두 어깨와 에봇 앞에 흉패의 보석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한 복판에 구원받은 우리들의 이름이 보석으로 박혀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갓과 아셀의 탄생

이미 열두 지파 중 다섯 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섯 지파중 세 지파는 레아가 낳은 4명의 아들 중의 세명의 아들인 르우벤, 시므온, 유다가 지파로 형성됩니다. 나머지 한 아들 레위는 열두 지파에 포함 되지 않고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지파로 남습니다.
라헬은 언니가 아들을 4명이나 낳는 동안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초조했습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고, 마음에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몸종 빌하를 통해 야곱의 아이를 낳게 합니다.
이렇게 두 지파의 시조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들은 단과 납달리입니다. 레아가 낳은 지파중에 유다지파가 복을 받은 지파라면 빌하가 낳은 지파 중에는 납달리 지파가 복을 받은 지파입니다.
이제 새로운 두 지파를 살펴 봅시다. 레아는 아들을 4명이나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라헬이 자기의 몸종 빌하를 통해서 두 아들을 낳게 되니까 위기와 질투심을 느낍니다. 레아는 라헬이 썼던 수법을 그대로 써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합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라헬은 하나님이 아기를 낳지 못하게 하심을 깨닫고 빌하를 통해서 아기를 낳습니다. 그런데 레아마저 라헬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해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통해서 아기를 낳고 맙니다.
레아의 질투 때문에 이렇게 갓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인간은 실수로 아기를 낳고, 질투와 조바심과 경쟁심으로 아기를 낳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복을 주시고 용납하십니다.
인간이 저지른 실수와 문제를 하나님은 수습하고 정리해 주시곤 합니다. 마치 자녀들이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부모가 항상 뒤치닥거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레아와 라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의 상처는 매우 큽니다. 한 남자의 편애 때문에 한 여자는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살면서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을 때 여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레아는 애통함과 슬픔을 가지고 ‘아들을 낳아서 나의 원통함을 풀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런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가슴은 넓고 크십니다. 인간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고 보석처럼 만들어서 쓰십니다.
창세기 49장 19절을 보십시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는 전쟁에 능한 지파, 즉 싸움꾼들입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갓 지파가 결국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갓 지파는 전쟁에 많이 참여하고 그 때마다 승리를 거두곤 합니다.
역대상 5장 1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싸움에 능한 지파로 르우벤, 므나셋 반 지파와 바로 이 갓 지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의 나가 싸울 만한 용사 곧 능히 방패와 칼을 들며 활을 당기어 싸움에 익숙한 자가 사만 사천칠백육십 인이라’라고 표현합니다.
갓은 비록 한 여인의 질투 때문에 몸종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용맹스럽고 전투에 강한 지파로 만들어 주십니다.
모세는 신명기 33장 20, 21절에서 갓 지파에 대해 이렇게 축복합니다.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찌어다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모세는 갓 지파를 마치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동물에게 덤벼들어서 팔을 찢고 정수리를 찢는 암사자와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각 지파에게는 아름다운 보석이 하나씩 주어지는데 갓 지파의 보석은 보석 중에 가장 단단한 보석인 다이아몬드(홍마노) 입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레아의 몸종 실바가 야곱에게 또 다른 아들을 낳아주는데 그 이름은 아셀입니다.
12, 13절을 보십시오.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야곱과 모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셀 지파는 그렇게 눈에 띄는 지파는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49장 20절을 보십시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아셀의 땅에서 나오는 식물은 다 기름진 것’이라는 말은 그 땅은 비옥하고 아셀은 축복받은 지파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셀의 땅에서 나온 식물은 왕의 진수를 제공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존귀한 자에게 음식을 드리는 지파가 아셀이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아셀 지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33장 24, 25절을 보십시오.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찌로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여러분, 이런 복을 받은 지파가 아셀 지파입니다. 자녀의 복을 받고,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땅이 기름지고, 그 문이 철과 놋 처럼 견고하며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지파였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실속있는 지파였습니다.
우리는 갓과 아셀 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은 출생과 상관 없이 펼쳐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출생이 어둡고 힘든 배경을 가지면 인생 전부도 비참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출생이 어떤 출생이었든지 간에 하나님은 당신을 보석처럼 가장 복받은 인생으로 만들어주신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상에서는 혈통을 많이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혈통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셀 지파에게 준 보석은 영광과 축복을 상징하며 불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닉스(호마노)입니다.
레아의 몸종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난 이후 새로운 두 아들이 또 태어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네 명의 아들을 낳고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레아에게서 태어납니다.
여러분,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아이를 언제 주실 지 모릅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하니라

슬픈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집에 여덟명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레아의 네 아들과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두 아들과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자기 아이가 없어 슬퍼합니다.
라헬은 임신을 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태를 막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한 소식을 듣습니다.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맥추절에 들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합환채를 발견해서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다는 것입니다.

잇사갈과 스불론의 탄생

합환채는 오렌지 색깔의 작은 열매로 일반적으로 최음제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에는 불임 치료제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이 열매를 너무나 갖고 싶어서 자존심도 다 포기하고 언니에게 찾아가서 합환채를 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레아는 일언지하에 상처를 주는 말로 거절하면서 ‘네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가더니 내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까지 빼앗아 가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틀린 것입니다. 라헬이 레아에게서 야곱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라헬이 결혼하게 되어 있었는데 레아가 야곱을 속여서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사실을 바꿔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마련이고, 힘이 있을 때는 더 강하게 공격합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얻는 것이 목적이어서 묵묵히 수모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이면을 생각해 보면 레아가 라헬에게 점잖지 못한 비열한 제안을 암시한 것 같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잔인한 조건을 라헬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합환채를 얻고 야곱을 레아에게 들여보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여기서 세 인물 레아와 라헬과 야곱을 살펴봅니다.
라헬은 해서는 안되는 굴욕적인 거래를 했습니다. 레아는 떳떳치 못한 성취를 했습니다. 세번째 인물 야곱은 두 여자의 사랑싸움과 질투 때문에 이용당하고 농락당합니다.
야곱이 들에 나가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레아가 나와서 그를 샀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별다른 반발없이 그냥 끌려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남자가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야곱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다 잃어버린 굴욕적인 존재로 스스로 자기를 비하시켜 버렸습니다.
그날 밤 레아가 임신한 아이가 잇사갈입니다. 그리고 잇사갈이 열두 지파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은 이 모든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 공개합니다.
17,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잇사갈은 말 그대로 ‘값을 지불하고’ 얻은 아들입니다. 야곱은 아들 잇사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9장 14절을 보십시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복잡하게 얽킨 상황속에서 태어난 잇사갈이란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맑고 깨끗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부모는 형편 없는데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착하고 곱고 아름답게 자랍니다. 잇사갈이 그랬습니다. 그에게서는 생명력이 분출했고, 안식과 쉴 것을 좋게 여깁니다.
노동을 하는 자만이 안식을 누립니다. 잇사갈은 땅을 귀하게 여기고, 노동과 휴식을 아는 남자, 특별히 어깨를 내려서 짐을 메며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지파였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33장 18절에서는 ‘스블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고 스불론 지파와 잇사갈 지파를 묶어서 이야기 합니다.
스불론 지파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반대로 잇사갈 지파는 장막안에 거하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어떤 아이는 밖에 나가는 것을 즐거워 하고 어떤 아이는 내 보내도 안 나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도 서로 다릅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는 아들이었지만 유다는 메시아가 태어나는 지파가 되었고, 스불론은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는 역마살이 붙은 지파였으며, 잇사갈은 항상 집에서 섬기는 은사를 가진 지파였습니다.
잇사갈의 보석은 황옥이라고 하는 토파즈입니다. 아름다움, 지혜, 장수를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여기서 또 배우는 것은 잇사갈의 출생은 어두웠지만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출생이 어떻든지 간에 여러분의 삶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사실 숨기지 않는 성경

이제 레아가 또 아들을 낳습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다시 잉태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그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레아는 여섯째 아들을 얻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후한 선물을 주셨다’.
창세기 49장 13절을 보십시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밖으로 나도는 성격을 가진 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스불론이 차지한 땅은 시돈까지 미치는 주로 바닷가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스불론이 점령한 땅이 바로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신 갈릴리 해변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 땅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가 점령한 땅이었습니다. 모세는 스불론 땅에 대해서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스불론 지파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많이 불러와서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하고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지파가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스불론 지파를 ‘선교사 지파’라고 합니다. 교인들을 보면 어떤 이들은 은혜를 받고 자꾸 바깥으로 나가 전도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들은 안에서 청소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가졌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지파들이었습니다.

과거와 상관없이 누리는 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의 열두 지파를 차별하지 않고 가슴에 안은 보석처럼 기름부어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슴 속에는 구원 받은 여러분의 이름이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열두 지파의 이야기를 지금 세번째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와서 ‘이제 그만 하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열두 지파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우리도 한 다리 건너면 이런 이야기와 비슷한 사연을 다 갖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사실들을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제가 핸디캡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친척들을 한 다리 건너서 바라보면 다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흠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복잡하고 허물많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출생과 삶을 연결시키지 않고 복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보석처럼 여겨주십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야곱의 열두 지파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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