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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 (창 3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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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변했습니다. 야곱의 삶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화는 결단과 행동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주저하거나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화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데 씁니다. 의심하고 갈등하는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

야곱은 그의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단을 쌓고 나를 예배하라’. 이 말씀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복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듣자 야곱의 영안이 열렸고 수많은 갈등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 6, 7절을 보면 야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게됩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은 즉시 순종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모아놓고 결정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순종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절정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라고 합니다. 믿음을 갖고 변화받은 사람은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안에 불신이 싹트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이 자리잡고 있을 때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벧엘을 가리켜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가 엿보이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묵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1백년을 살고도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허물도 있고 실수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과거와 단절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완벽하고 허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에 허물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미래를 향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의지해서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좌지우지 해왔던 과거와 단절하십시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과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미래는 바뀌게 됩니다.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야곱의 복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과거와 공포와 불안에서 탈출합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현실에서 일어나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쫓기듯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줍니다. 그렇게 야곱이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놀랍기만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유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입니다.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이 갑자기 돌출되듯 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유모 돌보는 성숙함으로의 변화

리브가의 유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리브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모로서 야곱을 돌보았던 드보라는 달리 갈 곳이 없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이 드보라의 말년을 야곱이 행복하게 거두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정성스럽게 장사지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를 장사지낸 곳의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굉장히 상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드보라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이 성숙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그 어머니의 유모를 돌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하찮은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가치없는 사람,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사람만 돌봅니다. 유명한 사람만 골라서 사귀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사랑하고 죽음의 순간을 지켜주고, 장사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손해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돌보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에게까지 여러분의 사랑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부리는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쉽게 해고도 시키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을 돌보는 마음이 성숙하고 믿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복이 그림의 떡이었다면 이무렵부터는 복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9, 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사건을 회상시키십니다. 그것은 몇년 전에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야곱에게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이 두려움은 급기야 그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하인들과 가족들까지 보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지 못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얼마나 많이 두려워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족을 모두 보낸 후에 그는 얍복강 강가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런 순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단절 의미하는 ‘거듭남’

그렇지만 당신이 눈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그때 천사를 만납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해주고 가기 전까지는 놓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묻고는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때서야 야곱은 천사를 놓아줍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어린시절 친구들이 그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담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야곱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야곱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좌절과 인생의 어려움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새 이름을 주겠다고 천사는 말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구원’이라고 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연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단절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믿어도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과 단절하지 않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잘해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쁜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참된 구원은 우리 신앙의 발전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름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고 새이름 ‘이스라엘’을 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인정받은 야곱

하나님은 야곱의 존재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남편한테 인정받지 못한 아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불행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녀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인정하고 배우자를 인정하고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창세기 35장의 10절 끝부분을 보면 야곱의 이름을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겨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가지고 살면 팔자가 사납다고 작명소에 가서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어도 별로 나아지는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바뀐 이름을 불러주셔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을 때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사실을 아십니까?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악마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땅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에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이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 새 이름을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입니다. 약속은 능력이 있는 자가 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실 줄을 믿습니다. 전능하다는 뜻은 하나님에게 불가능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그 능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처음에는 있고 나중에는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동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후회도 없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

둘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축복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은 풍성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복받을 그릇이 못된다 할지라도 그를 변화시켜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12절을 보면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이 말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이삭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로 이어져야 하는데 야곱은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년동안 그를 고생시켜서라도 기어코 그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바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닐지라도 여러분을 고쳐서라도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변덕이 많고, 어리석고,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신 신실한 약속을 지키십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복은 계속됩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상처나면 싸매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하나님은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고는 가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오시는 하나님, 떠나시는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셨다고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가?’라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 이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은 오시고 또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나 떠나시는 것, 말씀하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동전의 앞과 뒤에 불과할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오셨을 때 믿음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셨어도 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날마다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기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떠났을 때 야곱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복과 위로가 계속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라 나는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 ‘벧엘’

여러분의 가정에서 예배가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멈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이것이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마음속에 찬양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신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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