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라의 반역 (민 16:1-14)

첨부 1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을 가볍게 보지 말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방종으로 치닫는 삶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마음에 두고 살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천국을 말하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교회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살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부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를 좇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가 살아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린 하나님을 경외한다거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신자이면서 불신자와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기쁨이 되고 자기에게 즐거움이 되고 자기에게 편하고 이득이 되는 쪽으로 모든 행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옛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자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인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불신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된 자를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죄로 여기고 그 본성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늘의 인간의 성품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 애를 쓰고 갈급해 하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라면 일년 365일을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서 살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하나님이 생각날 때만큼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그 표가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자기에게서 사라질 때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다시 돌려달라고 외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중심적인 옛사람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자신이 주인 되지 못하고 팔팔하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은 결코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전혀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자의 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순간 여러분 자신은 없습니다. 마음이 뜨겁고 꿈에서 무엇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체험을 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만 내 가슴속에 살아계시고 그 순간 나라는 존재는 전혀 의미가 없어지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중심으로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을 보면서,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잘사느냐는 관심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느냐는 그 마음만 남아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 천당 가보겠다고 교회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조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고 설교를 듣기 때문에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를 반역한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자들이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레위의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인 다단 아비람 온이 서로 결탁을 해서 다른 족장들과 함께 모세를 반역합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합니다. 지금 이들은 모세에게 '너하고 우리하고 다른 것이 뭐냐 우리도 거룩한 자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계신데 왜 너만 잘난척하고 높은 자리 차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무조건 거룩한 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거룩한 자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에 나온다고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잘 듣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함께 하시냐를 깨달으시고 '나는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실 만한 신자인가'를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반역을 한 사람들은 비록 우리도 거룩하고 하나님이 함께 한자라고 큰 소리쳤지만 그들은 전혀 거룩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는 9,10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는 말씀에서 고라는 봉사의 일을 크고 작은 일로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작은 일,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은 큰 일로 여기고 우리도 너희와 다를 바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너희들만 높은 자리에서 우리를 다스리느냐고 반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일 작은 일을 따지게 됩니다. 사람이 크게 보이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하고 작은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것은 크게 보이는 일에 칭찬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이 많다는 것은 자기에게 기쁨입니다. 보람이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부인되지 못하고 살아있기 때문에 큰일에는 앞장서려고 하지만 작은 일에는 무관심하고 그런 일은 못배우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하는 일로 여겨버리는 것입니다.

다단과 아비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이들을 부르자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13절)고 공격합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자손입니다. 르우벤은 혈통적으로 장자지파입니다. 때문에 이들이 고라에게 동조하게 된 것은 아마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은 장자지파가 되어야 하는데 장자지파가 아닌 모세가 지도자로 되어있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불만이 지금 모세가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여보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즉 백성을 잘 살게 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들의 왕으로 행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야당이 대통령을 공격할 때면 언제나 백성들을 잘살게 해주지 못하는 것을 들고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고라나 다단 아비람 모두는 모세의 지도자직이나 아론의 제사장직이 인간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것임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맡은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가 부인되지 않는 채 하나님을 찾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모세를 반역한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 나왔으면서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가 살아있는채로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자기에게 좋으면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자기에게 나쁘면 나쁜 것으로 여겨버립니다. 절대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부인한 채 이 자리에 나오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은 마음에 두고 있다면 여러분 자신은 이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내 계획, 내 욕심은 이 자리에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린 채 봉사하는 것입니다. 고라는 레위인으로서 제사를 돕는 일을 맡았습니다. 고라가 만약 자기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만 마음에 두는 삶을 살았다면 자신이 맡은 일이 어떤 일이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기쁨과 감사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를 여전히 마음에 둔채 일을 했기 때문에 모세에게 불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마음에 둔 신자로 하나님을 찾읍시다. 그럴 때 우리는 나 자신의 편함과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보다 형제의 유익을 우선으로 하는 신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무엇을 하든 그 마음은 형제의 유익을 위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 당장에 중지하십시오. 귀찮으면서도 할 수 없이 하는 일은 서로에게 부담만 줄뿐입니다. 일을 하고 나서도 즐거움이 없습니다. 나 한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얻는다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채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자기 자랑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적게 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일을 작은 일로 여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되고 '네가 뭔데'라는 반역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자는 자기가 부인된 채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신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누구에게 욕을 먹든,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망이든 낙심이든 그런 마음은 모두가 자기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남을 도와주고 좋은 일한다고 해서 다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만족과 보람을 중심으로한 이웃사랑이 많습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를 잊어버린 채 자기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가 안될까 먼저 생각하게 되고, 자기 행동이 남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보여지는 일을 하려고 하게 됩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에서 하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린 채 이웃을 생각하며 아무리 작게 보이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신자에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이런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는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불신자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신자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큰소리 칠 것입니다. 그것이 고라 일당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는 아무리 신자라고 소리쳐도 여전히 옛사람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겉으로는 신자이면서 여전히 옛것에 매여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옛것에 아니라 새것에 매여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옛것에 매여 있으면서 새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옛것을 충족시켜주는 새것을 원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옛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으로만 만족하겠다는 의도가 없습니다. 옛것을 가진 채로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말에서도 행동에서도 오직 옛것만 보여질 뿐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봉사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도 고라 일당의 반역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불평과 불만 속에서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만족을 위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불신자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항상 자기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그러나 옛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우리들은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잊고 오직 하나님만 마음에 두고 살고자 힘쓰는 신자되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