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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송의 능력 (출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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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사변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유엔군 참전으로 다시 탈환하자 피난 갔던 시민들이 돌아왔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돌아와 보니 그가 살던 가옥은 멀쩡하였으나 공장이나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도무지 복구할 엄두도 나지를 않았습니다. 얼마나 피땀을 흘려가며 닦아 놓은 사업이었던가? 설사 사력을 다하여 복구를 한다해도 전쟁중이라 언제 또다시 그런 참변이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라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오직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투신자살을 하려고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투신할 곳을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히 여겨 찾아가 보니 비닐로 비바람을 가린 움막에서 거지가족이 돼지죽 같은 것을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이상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까닭을 물은 즉 그들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많은 생명이 죽어갔는데도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그 날 저녁도 굶지 않게 먹을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큰 감동을 받은 그는 거지 가족에게 그의 바깥채가 비었으니 그곳에 와서 살면서 매일 찬송만 불러주면 먹고 살 것을 대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결국 거지가족은 그 사업가 집으로 옮겨 들어가 찬송을 불렀으며 그 사업가의 가정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사업도 번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찬송 중에 함께 계시며 우리가 찬송할 때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입으로 쉬지 않고 찬송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며 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찬양은 모든 헌신 가운데 최고이며, 믿음의 진정한 증거입니다. 성경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147:1)하였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면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 가? 를 알아봅시다.
첫째, 찬송을 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고 마음이 치료됩니다.(삼상16:23)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성탄을 앞두고 이웃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20여 명이 모였는데 오르간을 칠 사람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한 할머니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헬렌, 당신이 있으니 오르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 할머니는 70세가 훨씬 넘어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슬픈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신경통으로 오르간을 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그 목사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조자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까짓 신경통을 슬퍼해요? 신경통이 당신의 생애를 통하여 애써 오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덮어 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헬렌 할머니는 신경통이 있는 오른손은 쓰지 못했지만 왼손만으로 반주를 했습니다. 즐겁게 캐롤을 불렀던 그때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각적이면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영혼의 깊은 곳까지 즐겁게 해주며 기쁨을 가져다주는 음악입니다. 감각적인 음악으로 인한 즐거움은 잠시 잠깐이고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 드리는 찬송은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세상의 근심과 괴로움으로 방황하거나 마음의 평안이 없으신 분이 있습니까?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찬송을 하십시오. 찬송을 모른다면 찬송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아니 감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혼이 맑아지고 힘이 납니다. 괴로울 때 지친 영혼을 감싸줍니다. 코넬이라는 분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흘러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시네.”
여러분, 정말로 찬송을 듣고, 부르고 해보십시오. 마음 속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편 145편)
둘째, 생명을 구원받게 하십니다.
부흥사 무디 목사의 유명한 찬송인도자였던 생키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봤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가 만든 찬송가 ‘선한 목자 되신 주여’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생키가 거절하지 못하고 그 찬송 부르기를 마치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생키 선생님,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남군으로 참전했는데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파란 군복을 입고 있었죠. 하늘엔 보름달이 떠 있었고 당신은 제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겨냥해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부른 바로 그 찬송이었지요. 그 찬송은 저의 어머니께서 늘 부르시던 찬송이었습니다.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저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 없었습니다”
생키는 그를 꼭 껴안은 채 하나님의 돌보심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불렀던 생키의 찬양이 결국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날마다 찬양이 있습니까?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시21:13)
셋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였더라'(대하20:21-23)
넷째, 마음이 즐거워지고 건강과 활력을 주십니다.
캐나다에서 여러 해 동안 유능한 목회자로 사역한 존 루키스 경이 있습니다. 그분은 구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위해서 점점 더 활력 있는 삶을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언젠가 루카스 형제에게 그 나이에도 그토록 활력 있고 힘찬 삶을 보낼 수 있는 비결이라도 혹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이토록 좋은 건강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항상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입니다.' 루카스 목사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그 분은 매순간 우리를 축복하여 주십니다.(시146:2)
찬송은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우울할 때 마음을 위로해 주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며, 지저분한 생각들을 정돈해 줍니다. 예배시간에 찬송을 힘차게 부르는 사람은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된 사람이며 예배의 감격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면 열심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2,3)
다섯째, 한 밤중에도 어두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합니다.
영국의 여객선 스텔라호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됐습니다. 거친 파도는 승객들이 탄 구명보트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여성이 탄 구명보트는 노가 없이도 계속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 보트에는 유명한 가수인 마가렛 윌리엄스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승객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 의지합시다. 믿음의 징표로 함께 찬송을 부릅시다'
12명의 여성은 찬송을 부르며 공포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사나운 폭풍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순양함이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여인들의 찬송소리가 울려퍼졌&49850;니다. 구조대원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여인들이 구명보트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12명의 여인들을 구출했습니다. 신앙은 삶의 위기에서 더욱 빛납니다. 고난 속에서 부르는 찬송은 기적을 창출합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대하20:22)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5, 26)
여섯째,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한때 음악가가 되려는 희망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베르디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친 것은 오페라 <나부꼬>부터였습니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고, 다음 작품 <왕국의 하루>를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었습니다. 낙담한 베르디는 두문불출하고 있었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는 재능 있는 작곡가의 좌절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작곡의 의욕이 솟을 만한 대본을 구했습니다. 메렐리는 <나부코>의 대본을 마련하여 베르디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왔습니다. 어느 날 베르디는 낯선 대본을 펼쳐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구약성경 열왕기하편에 나오는 것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간 유대인들이 핍박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속에서 조국을 그리며 자유를 구가하는 가사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압정 하에 있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포로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노예들의 합창’을 국가처럼 불렀던 것입니다. 그 노래는 절망과 우수에 빠져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일곱째, 고난을 이길 힘을 줍니다.
1907년 조선을 잠식해 들어오던 일제의 이등박문이 결국 조선군대를 해산시켰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군인들은 의병을 일으켜 지하로 숨거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머리를 땋거나 상투를 틀었던 당시의 풍습과 달리 서양의 영향을 받아 단발을 한 기독교인들이 일본인들의 스파이로 오해를 받아 곤욕을 치르던 때였습니다. 의병들은 기독교인들과 일본의 스파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일본의 스파이들도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나중에는 찬송가를 불러 보게 했습니다. 찬송가를 잘 부르면 '기독교인이셨군요!'하며 악수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 찬송가가 불신자들에게도 어찌나 큰 감화를 주었던지 어떤 불교 신자는 찬송가에 매료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찬송이 없다면 날개 없는 새와 같아서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여덟째, 회개하고 주를 의지하게 합니다.
영국의 한 목사가 폭풍우가 심하게 치던 주일날 밤 교회에 갔으나 교인이 4명밖에 없었습니다. 크게 낙심한 목사는 원망 반 애원 반이 섞인 목소리로 교인이 가득 차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꿈에서 교회를 가니 교회 안에 교인이 가득 찼습니다. 그 때 마침 찬양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찬송소리는 들리지 않고 단지 열 두세 살 남짓한 소녀 아이의 찬송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교회 안에 사람이 많으면 무엇하나? 벙어리 찬송, 형식적 예배는 필요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울면서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하여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3)
아홉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한 어린 소녀가 비록 할아버지 뒤에 타는 것이긴 해도 난생 처음 말을 타는지라 몹시 초조해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타기의 명수였습니다. 소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말에 태우자 소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떻게 해? 난 말을 탈 줄 몰라요! 한번도 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걱정일랑 하지 말아라. 어떻게 타는지 몰라도 괜찮다. 그냥 이 할아버지만 꼭 붙잡아라, 아가야. 나만 붙잡으면 된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와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찬양과 기도함으로써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4)
열 번째,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실수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와 실수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찬송하는 자는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다윗이 범죄하였지만 그는 항상 주님을 찬양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높이셨습니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욜2:26)
노래방의 열풍을 보면서 언뜻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찬송 방'입니다. 자신의 음성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목청껏 부를 찬송 방. 하늘을 감동케 할 만큼 열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찬송 방, 가슴속 찬송이 터져 나오도록 부를 찬송 방을 만듭시다. 병들었던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존 웨슬리 형제는 일찍이 찬송의 능력을 소중히 여겼으며, 찬송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기운차게 찬송하라. 맥빠진 사람처럼, 혹은 조는 사람처럼 하지말고 음성을 높여서 힘차게 찬송하라. 당신이 사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음성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말라.' 생명의 찬양을! 병든 영국 사회를 건져낸 웨슬리의 찬양의 힘이 다시금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뎌낸 우리 선배 신앙인들의 승리의 찬송이 또다시 힘차게 불러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어둠에 생명을 불어넣을 능력의 찬양으로 이 땅의 절망을 구원하라! 세속 음악들의 근본 사상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이런 음악이 번져나가다 보면 찬송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더불어 온 천하에 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즉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은 찬양을 하는데 쓰여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거역하고 입술을 불의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보십시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어두움과 탄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며,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인간적인 설득과 눈물로 호소하는 일 등 다른 모든 것들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찬송은 왜 항상 성공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송은 믿음을 나타내는 언어이고, 믿음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 주님을 찬양하며 말하십시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없었도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열 번씩 이야기한다고 합시다. 여러분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을 것입니다. 미소를 띠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변화할 것입니다. 주님을 많이 찬양하는 일은 당신을 치유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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