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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장애물을 극복한 사람들 (출 14: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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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을 극복한 사람들(출 14:26-31)

나폴리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꿈은 최대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열 살 되던 해 꿈에 그리던 성악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본 선생님이 '너는 노래할 수 없어,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어, 덧문 부딪치는 소리 같아 그만 접어라!’ 모든 꿈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거와 같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로 좌절하고 있는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들을 따스하게 품으면서 ‘너는 할 수 있다, 너의 목소리는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다. 너는 가능성이 있다 다른 선생님한테 레슨 받자’ 그리고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주 자기 부족과 레슨비 때문에 중단하고 그러면서 또 좌절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내 어떤 일을 해서라도 네 레슨비를 마련할 테니 너는 계속 해라 너는 최고가 될 수 있단다’ 결국 노력 노력하여 세계 최고의 테너가수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엔리코 카루소’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내일을 향한 꿈을 좌절시키고, 그 장애물을 바라보면서 주춤하게 하고 또는 주저앉아 버리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인내하며 노력할 때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차대전 때, 헤럴드 레셀이라고 하는 청년이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폭탄에 맞아서 두 팔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불구가 된 그는 참으로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망의 기도를 하는 그의 귀에 분명히 들려주셨습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지 않느냐.” 레셀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에게는 아직 생명이 잃고, 두 눈이 있고, 두 귀가 있고, 두 발이 있습니다. 정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생각을 바꾼 그는 의사에게 부탁해서 의수를 만들었습니다. 또 열심히 타이프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내온 생활을 잘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것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영화에서는 자기가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크게 성공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결연히 대답했습니다.“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얻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십니다. 더 많은 가능성이 그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간증입니다.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만납니다. 이 장애물들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한 기자가 전도자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큰 장애가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무디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무디 라는 작자 때문에 가장 골치를 썩고 있소.” 또한 잭 피아도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많은 장애물을 만났었다. 그중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나를 좌절케 하고 낙망케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경제적인 것, 사회 환경, 질병, 모함, 오해….
여러 가지 장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정말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있는지를 말입니다. 장애물이 나의 외부에 있는지 나의 내부에 있는지, 내 인생을 곰곰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내 꿈, 내 시간, 내 목표, 내 사랑….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을 좌절시킨 장애물은, 정말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안에는 문제에 얽히거나 거기 빠져 실패하거나 죽은 사람의 얘기도 있고 도저히 헤어나기 어려운 문제를 풀고 승리한 사람들의 얘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사건 역시 불가능을 넘어선 사건이었습니다. 뒤에는 바로의 기병대, 앞에는 넘실대는 홍해 그리고 쫓기는 이스라엘은 부녀자를 합하면 수백만이 넘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의 기병대를 이기고 홍해를 건넜다는 것이 출애굽기 14장의 줄거리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은혜를 나누도록 하십시다.

1.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출애굽기 12:51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고 했고, 13:3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고 했고, 13:9,11,14,16에서도 계속하여 '하나님이 인도해 내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의 주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18을 보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출발에서 종점까지 인도하십니다.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둘째 확실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인도하시는 목적지가 확실하고 가는 길이 완전합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지만 우체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소년에게 우체국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빌리그레함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밤 저기 있는 교회에 오너라 내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그랬더니 그 소년은 '싫어요 안 갈래요. 아저씨는 우체국 가는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죠'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도는 불안전하고 허약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는 너무나 확실하고 안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십니다.

2. 기도했습니다.
본문 14:10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었다는 것은 소리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절박한 위기에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시편 50:15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으면 환난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 부르짖어, 부르짖음이라는 구절이 145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부르짖으려면 입을 열어야 합니다, 다문 입으로는 부르짖을 수 없습니다. 부르짖으려면 소리를 내야 합니다. 묵상으로 부르짖을 순 없습니다. 부르짖으려면 힘을 써야 합니다. 소리는 힘을 써야 커지기 때문입니다.
시편 28:2를 보면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했고, 34:6을 보면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고통, 걱정, 근심, 환난을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4장에 보면 유대의 왕이었던 아사에게 닥친 큰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만 명 정도의 군사밖에 없는 아사 왕에게 세라는 군사 100만과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침공하였습니다. 지금 아사 왕의 입장은 큰바람 앞에 놓인 작은 촛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도 아사 왕과 같은 입장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항상 우리 앞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유대 왕 아사는 그 위기를 기적적인 하나님 은혜로 극복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아사의 승리의 비결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에게 당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아사 왕은 자신에게 닥친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가서 부르짖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아사의 태도는 자신의 장애물을 해결하는 열쇠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닥치는 문제와 장애물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무엇을 합니까? 혹시 인간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힘든 문제가 생길 때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사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갈 때 기도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는 기도의 응답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열쇠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에 생명력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아사 왕은 과연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아사 왕은 자신은 도무지 이 세라 왕의 백만 대군을 이길 수 없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이 모든 장애물과 문제를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음이 기도 속에 나타납니다. 확신에 찬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한 아사 왕은 하나님을 믿고 전쟁에 나아갑니다. 승산이 없는 전쟁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그들과 맞서 싸웁니다. 하나님은 아사에게 승리의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야고보서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이 있노라”하고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눈으로만 우리의 문제를 판단하려고 하는 실수를 범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 세라의 백만 대군은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믿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윗도 믿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을 때 골리앗을 이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사에게 역사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곧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분명 아사 왕과 같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그 장애물을 바로 보지 마십시오. 그 장애물을 해결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아사와 같이 믿음으로 행할 때 기적적인 은혜로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입을 열어 구한 대로 응답하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소리내어 기도합시다. 소리내어 기도하고 소리내어 찬송합시다. 소리내어 복음을 전합시다.

3. 기다려야 합니다.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수도원을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좇아간다. 그러면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그렇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좇아간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싫다고, 교회의 단체가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좇아만 간다면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때 쉽게 주님을 포기하고 외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릴 때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14:13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화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고,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바로의 기병대는 뒤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놓여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가만히 서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소리치고 서둘고 안절부절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힘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30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내가 떠들고 설치고 나서면 하나님은 잠잠하십니다. 그러나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4. 새벽에 응답하셨습니다.
24절을 보면 '새벽에 여호와께서...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라고 했고, 27절을 보면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8절을 보면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홍해의 기적은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수 6:15). 이방여인 룻이 베들레헴 갑부 보아스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게 된 것도 새벽이었고(룻 3:14), 예루살렘 여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도 새벽이었습니다(눅 24:1). 주님도 새벽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같은 태양이지만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에 지는 해는 느낌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아침에 뜨는 해는 바라보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밤사이 내린 이슬과 함께 만물에게 생기를 주고 성장의 활력을 줍니다. 그러나 지는 해는 바라보는 사람에게 슬픔, 서운함,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금방 저버리기 때문에 영향력이 적습니다.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세 가지 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천냥, 밤에 깨어 있는 것은 백냥'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밥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2004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됩시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6개월만 참고 노력하면 체질이 바뀌고 건강이 바뀔 것입니다. 강요나 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결단으로 시작합시다. 새벽 동트는 아침을 내 시간으로 만듭시다. 밝아오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기도의 단을 쌓읍시다.
늦잠 자던 사람들은 힘들고 고생스럽고 입술이 터지는 역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비만 넘기면 아침형 인간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새벽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시다.

5. 믿고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때 상황은 매우 절박했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민대'라고 했습니다. 믿고 순종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고 했고, 27절을 보면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비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손을 내밀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손을 내미는 모세의 순종 신앙을 보게 됩니다. 만일 그때 모세가 '될까? 안될건데. 힘들꺼야. 괜한 짓거리지'라며 시큰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홍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도 홍해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내 힘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심각한 고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절망, 질병, 아픔 이런 것들은 모두가 우리의 홍해입니다. 홍해의 절망과 위기 앞에서 서있던 이스라엘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젠 죽었다. 이젠 끝장이다'라며 원망하고 소리치고 덤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포기한 사람들이고 두 손 털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홍해를 건널 수 없습니다. 둘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원망하고 대들었던 사람들도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없다면 믿음 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섞여야 합니다. 내가 덕이 없다면 덕 있는 사람과 교제하고 만나야 합니다. 내가 외롭다면 외로움을 이기고 행복을 찾은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내가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풀고 해결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친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가로놓인 홍해 같은 고통, 절망, 아픔, 좌절을 극복하려면 소리내어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홍해에 길을 내시고 건너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장애물을 만나 절대로 절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고 의지하여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사랑의 하나님,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말과 나의 모든 행동이 주님께 열납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하오니,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주님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사단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나로 죄 짓도록 미혹하는 때에 이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늘 말씀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부족한 나를 붙드시사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앞과 뒤가 막혔을 찌라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용기가 있다면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장애물을 만나 실망하고 낙담케 마시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케 하옵소서. 늘 변함 없는 믿음을 주시사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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