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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고백 (신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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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고백(신 6:4-9)

하루는 제 아들 녀석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녀석이 좀 특이했습니다. 옷은 어디서 구제품을 얻어 입었는지 무릎에 구멍이 숭숭 나있고 그것도 궁둥이가 다 보이도록 입고 다니는 녀석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머리는 일곱 색깔 무지개로 염색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야, 아까 그 녀석 순 깡패지, 공부 되게 안 하게 생겼더라.'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아니에요, 걔가 우리 반에서 일등 하는 아이예요.'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 이 녀석아, 빨리 가서 자라니까 뭐하고 있냐?' 야단치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나이가 지긋한 교인 한 분이 계셨는데 생긴 것은 분명히 대학 총장이나 큰 기업의 회장쯤으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젊었을 때부터 먹고 노는 것이 취미인 분이었습니다. 평생동안을 'Play Play Young Play. Old Old No Play.' 이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살던 분이었습니다. 사람의 선입견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정확한 판단을 못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볼 때에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봅니다. 여러분들이 '아브라함', 그러면 '아, 아들도 바친 위대한 믿음의 사람' 이렇게 머리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애당초에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서 먹고살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 그러면 전도여행을 네 번씩이나 하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사람, '나는 죽으나 사나 주의 것이로다.' 이런 고백을 한 사람, 로마서를 비롯해서 신약성경의 대부분의 서신서를 기록한 사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죽일 때에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베드로' 그러면 예수님의 수제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신앙고백으로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 나중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위대한 사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한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면서 어부 생활로 돌아갔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상당히 틀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죄악에 빠져 살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들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이렇게 형편없는 모습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오늘 넘어지면 내일 또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요, 내일 또 넘어지면 또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그래도 또 넘어지면 그 다음에는 아예 업고 가실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가실 것인가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일생을 읽을 때마다 어딘가 이야기가 중간에 끊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TV로 드라마를 보는데 첫 회부터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휴가를 갔다 왔더니 벌써 마지막회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알겠는데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일생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모세의 일생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살펴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당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애굽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날이 갈수록 이스라엘백성들의 숫자가 불어나면 나중에는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 중에서 여자아이는 살려두고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차마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나일강에 떠내려보냈습니다. 누군가가 주워서 키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애굽왕 바로의 딸이 모세를 발견해서 아들로 키웁니다. 그래서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40세 되던 해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을 하는 현장에 나갔다가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마구 때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동족의 편을 들어서 애굽사람을 때려죽여서 모래 속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 일은 발각이 되었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40년 동안을 모세는 양치는 목동으로 삽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이 이름을 '게르솜' 즉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고 지었습니다. 이제는 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면서 일생을 마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모세는 어느덧 백발이 흩날리는 80세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양을 몰고 호렙산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떨기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불이 붙어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무가 타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벌겋게 불이 붙은 채로 있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깜짝 놀란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계획을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이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명령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모세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오. 나에게 이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오, 사나이 가는 길을 막지 마시오.' 하면서 쏜살같이 말을 달려 애굽으로 갔다.' 이렇게 되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우리말 성경에는 상당히 겸손하게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왜 갑니까?' 상당히 불만이 섞인 대답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제 친구 중에 막걸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저녁마다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다녔습니다. 심심하면 중간에 한 모금씩 맛도 보고해서 일찍이 주도에 입문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눈이 퉁퉁 부어서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아버지가 막걸리를 사오라고 하는데 '내가 왜 가요?' 그랬답니다. '내가 마실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마실 것인데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사 오세요. 나는 안갑니다.' 그랬다가 실컷 얻어맞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했던 대답, '내가 왜 갑니까?' 이것은 불만이 섞인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정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싶으시면 하나님이 하세요. 난 안 합니다.' 하는 대답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40년 전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 애굽사람을 때려 죽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총궐기 시켜서 나를 돕게 하셨다면 벌써 노예생활에서 벗어났을 텐데 그때는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제 얼굴을 보십시오. 주름이 너무 많아 얼굴이 호두껍질같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나보고 뭘 하라는 말씀입니까? 난 안갑니다. 못 갑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모세를 설득하십니다. 하지만 모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뭐라고 핑계를 대는가를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를 묻고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자니라.'라는 뜻입니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마음대로 하시고, 40에 부르건 80에 부르건 마음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불평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이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말대꾸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모세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몇 가지 이적을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모세가 가진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땅에 던지니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꼬리를 잡으니 이번에는 다시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품속에 손을 넣으라고 하셔서 넣었더니 손에 문둥병이 옮았습니다. 다시 한번 넣었다 꺼내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이번에는 문둥병이 사라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보여주어도 믿지 않거든 그 다음에는 강물을 떠서 땅에 부어보아라. 물이 피로 변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쯤 하면 항복 할만도 한데 모세는 여전히 고집을 부립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이번에는 말을 잘못해서 못 간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입만 벌리고 말은 내가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핑계 댈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기 애굽으로 가기는 갑니다. 그런데 가면서 한 마디를 남깁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리고 지팡이를 질질 끌면서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애굽으로 들어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로에게 '내 백성을 내 보내라.'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모세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적어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인데 바로가 내 말을 듣겠지.' 그래서 '내 백성을 보내라.' 했더니 바로는 코방귀도 안 뀌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더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러 갔던 모세는 오히려 더 큰짐만 안겨준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신경질을 부립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안가겠다고 하는 것을 공연히 가라고 하셔서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설득하십니다. '내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리라.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 한번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나를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이것이 모세의 모습입니다. '내가 왜 갑니까?'로부터 시작해서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모두 일곱 가지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6장까지 나타난 모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4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모세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나게 됩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있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입니다. 지금까지 모세의 태도로 보면 여기서 어떤 말이 나와야 합니까? '그것 보십시오. 제가 처음부터 안가겠다고 한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군대입니다. 공연히 저보고 가라고 하셔서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런 대답이 나와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었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전혀 기대치 못했던 모습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어째서 모세가 이렇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 해답은 출애굽기 7장부터 13장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변한 것을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모세가 이렇게 변했을까, 일곱 가지 핑계를 대면서 오리발을 내밀던 모세가 어째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렇게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가, 이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것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입니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어디에 있든지 이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이것만이 너희가 살 길이다.'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왜 가야합니까?' 대답하던 모세,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고집을 쓰던 모세, '내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말을 했더니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불평하던 모세, '나는 입이 둔한 사람이라 못합니다.' 버티던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홍해를 만났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외칩니다. 바로 그 모세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애타게 호소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처럼 고집을 부립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모세처럼 온갖 핑계를 대며 맡은 일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것은 모세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 역시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하실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항복시키신 하나님께서 나도 항복시키실 것입니다.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내 이 고집과 못난 자아를 하나님께서 꺾어주실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모세처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모세처럼 혈기를 부리고 고집을 쓰고 게으름을 부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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