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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을 받는 그릇들 (룻 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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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로 이어집니다. 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에서 한 민족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룻기라는 독특한 책이 사사기 다음에 등장합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이야기였던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전혀 다르게 사사로운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기가 담긴 아주 특별한 책입니다. 그러면 왜 갑자기 룻기가 등장합니까? 도대체 룻기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기에 그렇습니까?

룻기는 이 땅위에 사는 고난 속에 있던 인간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인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갑자기 룻기서를 등장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룻기에 나오는 이 가정은 원래 유다 베들레헴에서 살던 가정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 이렇게 넷이서 단란하게 살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그 가정은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 이렇게 네 식구가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곳에서 가장인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 후에 두 아들을 장가보내었는데 그 두 아들도 그만 다 죽어 버렸습니다. 흉년을 피해 타향에 가서라도 좀 잘 살아보겠다고 해서 갔었는데 나오미라는 여인은 이제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고 비통의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남은 식구는 두 며느리뿐이었습니다. 손주 자식들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가정이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비참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국 땅에서 졸지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렸으니 그 인생의 고통과 비애는 우리가 짐작할 만합니다. 쓰라린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나오미는 이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고 혼자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작은 자부 룻은 한사코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룻이라는 자부 한 사람을 데리고 여자 둘이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비참한 모습으로 그리고 룻은 남편을 잃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들은 친척집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서 목숨이라도 부지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부 룻이 친족 보아스라는 의로운 사람의 아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 가정은 은혜를 입고 살아가게 되었고 또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눈물의 가정이 하나님의 위로와 복을 받아서 다윗왕의 계보에 들어가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었다 하는 것이 룻기서의 주제입니다.

신약 마태복음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한때 비참했던 슬픔의 가정이 다윗 왕가가 되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계보에 들어가는 축복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아주 완전히 밑바닥까지 떨어진 슬픔의 가정이 이제 새로이 다시 시작해서 기쁨의 가정, 축복의 가정으로 일어서는 아름다운 승리의 모습이 룻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고통 중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뚜렷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눈물을 흘리는 가정들이여!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라.' 이것이 룻기서의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까? 룻기는 전체가 네 장으로 된 짧은 성경입니다. 등장 인물도 몇이 안됩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서 아주 특색있는 것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을 해주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해 주는 말들을 성경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보아스가 자기 종들에게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룻기 2장 4절입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이번에는 종들이 자기 주인 보아스에게 또 축복해 줍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보아스가 이삭 줍는 비애의 여인 룻에게 축복하는 말이 나옵니다. 룻기 2장 12절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또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축복하는 말이 나옵니다. 룻기 2장 19절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보아스가 은혜를 베풀어서 이렇게 이삭을 많이 주울 수 있었다고 하자 나오미가 듣고서 또 축복을 합니다. 룻기 2장 20절 '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뿐만 아니라 백성과 장로들이 보아스집에 아내로 들어오는 룻에게 축복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룻기 4장 11절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이 또한 보아스에게 축복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 그리고 보아스의 집을 향해서는 룻기 4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마을 여인들이 나오미와 태어난 아기에게 축복을 합니다. '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4:14)

이렇게 짧은 룻기서의 여러 곳에서 등장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룻기서에 많이 등장합니다. 짧은 네 장의 성경 속에서 이처럼 복을 빌어 주는 말들이 9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이 룻기서의 특색입니다.

룻기서에 계속 등장하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축복하는 아름다운 모습들. 결국은 이러한 축복의 말들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정말로 이 가정은 눈물에서 기쁨으로 변화되어 간 복의 가정으로 변해 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복을 빌어 주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도 그 가정이 복을 받을 만한 그릇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룻기에 나오는 이들은 또한 축복을 받을 만한 그릇들이었습니다.

먼저 보아스라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불쌍한 이 가정에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레위기 23장 22절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도 자기의 종들에게 이삭을 조금씩 내버려두어서 불쌍한 룻으로 하여금 이삭을 많이 줍도록 해 주었던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보아스는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손해가 나더라도 성실히 지킬 줄 아는 자였습니다. 나오미의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는데 그는 룻을 데려다가 자기의 아내로 삼고 기업을 무르게 해 주면 자기에게 재정적인 손해가 나므로 그 의무를 포기해 버립니다마는 보아스는 달랐습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 가정을 살리고 기업을 계속 이어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선 것입니다. 과연 보아스는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라는 여인은 자기 며느리를 복되게 하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룻기 3장 1절에 보면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며느리를 구박했을 지도 모릅니다. '네가 우리 집안에 시집을 오더니만 내 아들이 죽었다'고 하면서 구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며느리한테 어찌해서든지 복이 되게 하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과연 나오미도 축복의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며느리 룻을 보십시다. 이방 여인이었지만 자기의 시어머니와 그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그리고 남편도 없는데 시어머니한테 계속 순종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룻기 1장 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방 여인이면서도 이처럼 하나님을 따라오는 자가 되었고 자기의 시모님을 극진히도 모시는 효부였습니다. 과연 룻도 축복의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이들은 모두가 준비된 축복의 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계속 복을 빌어 주는 말들이 선포됩니다. 보아스가 종들에게, 종들이 보아스에게,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보아스가 룻에게, 백성들과 장로들이 보아스에게, 백성들과 장로들이 룻에게, 여인들이 나오미와 태어난 아들에게.

그러자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가정은 이제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가정이 되어 갔고 태어난 아기 오벳은 잘 자라서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고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왕의 집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집안 계보에 들어가는 놀라운 축복의 가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후손에서 그 위대한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놀라운 은혜의 가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 마을에서 가장 비참했던 가정, 가장 슬픔을 당하고 있었던 가정,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던 가정, 이러한 가정이 가장 복된 가정으로 되어지는 그 놀라운 방법을 룻기서는 기록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나오미처럼 룻처럼 슬픔과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가정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방법은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첫째로 나 자신이, 우리 가정이 축복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준비가 되었으면 기도하고 축복의 말을 하며 복을 빌어 주는 주는 것입니다.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10:11-13) 먼저 그 집이 평안이 담기기에 합당한 그릇인가를 찾아내어 그 집에 평안이 임하기를 비는 것. 이 두 가지는 축복의 필수 요소입니다. 준비된 그릇에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빌면 하나님의 복이 그 그릇에 내려와서 담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여기 나오는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십시다. 하나님의 복이 머물 수 있는 합당한 가정이 되어져야 합니다. 올해에는 먼저 이처럼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과 복을 받기에 합당한 가정 합당한 사람으로 먼저 만들어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서로를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귀로 하여금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고 시기의 말을 하고 서로 독한 말을 하고 마음에 화를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틈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1서 4장에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의 우리들이 서로 서로 축복의 말을 해주고 서로 좋은 말을 해주고 기쁨으로 서로 복을 빌어 주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면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룻기서의 원전을 읽어보는 사람들은 그 말들을 보고 감탄을 한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히브리 언어, 최고의 복되고 부드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성경이 바로 룻기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축복의 말은커녕 원망의 말들, 저주의 말들만 듣고 산다고 해 보십시다. 가족 식구들에게 교인들에게 이웃들에게 욕만 먹으면서 산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잘 되겠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줍는 사람이 그 쓰레기를 주우면서 '누가 이것을 여기다 버렸나? 에에 못된 사람! 빌어먹어라!' 하면서 저주의 말을 했다고 합시다. 이 욕이 과연 그 사람에게 돌아오겠습니까?

이것에 대한 해답을 알아보기 위해서 성경을 뒤지다가 다음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잠언서 26장 2절에 보면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까닭 있는 저주는 어떤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들의 욕과 저주가 정당하다면 그들의 부르짖음이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하나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 저주가 까닭이 있는 저주이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또 성경에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출 22:26-27)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 것이라”(출22:22-23)고 했습니다. 고아나 과부나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이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복받는 사람은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초청할 때 부자들을 초청해서 대접하느니 차라리 가난한 자들을 초청해서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왜? 부자들은 초청을 받으면 나중에 다시 갚습니다. 그러나 갚아 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초청해서 대접하면 그들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하나님 앞에 복을 빌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갚아 달라고 기도하는 이 복 빌어줌이 더 좋다고 하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얼마나 심각합니까? 이런데도 내가 원성들을 만한 일을 만들고 다니시겠습니까? 절대로 누구한테든지 해를 끼쳐서 원망이나 원성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보아스는 자기의 종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백성과 장로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 나오미는 마을 여인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와 보아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 룻기의 등장 인물들은 이렇게 축복의 말들을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저주를 당하거나 원망을 사거나 욕을 얻어먹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사사기에 보면 이 축복과 저주 기도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사사시대에 미가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미가의 어머니가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그 돈을 가져간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주를 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미가가 그 소리를 듣고 그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은 일천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삿17:2) 그 은전 일천 일백의 도둑이 바로 아들 미가였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즉시 말을 바꿉니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 어머니는 저주 기도에 놀라서 즉시 그 아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다시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가 또 한군데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첫왕 사울왕때의 일입니다. 사울이 전쟁을 앞두고 그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 맹세에 걸려든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 말을 어기고 그만 꿀을 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나단은 결국 전쟁에 나가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울의 입으로 한 저주가 그 요나단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이만큼 사람의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된 사람되려면 절대로 원망이나 원성의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혀는 무섭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그런고하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소리를 들으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가정에서 나쁜 이야기는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축복의 말을 하고 아내도 바가지 대신 남편에게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의 기도와 말을 해주어야 하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건강과 여러 가지 일들을 위해서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이래야 복받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에는 축복해 주는 모습도 많이 나옵니다. 이삭이 아들 야곱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에게 축복 기도를 받으려고 팥죽으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 기도해 주는 모습, 모세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축복을 해 주는 모습이 자세히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정말 그에 합당한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모인 군중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축복을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스데반도 자기가 죽어 가면서도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죽었습니다. 그만큼 축복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성경에서 약속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십시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원리대로 룻기처럼 해봅시다. 첫째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복이 담기기에 합당한 삶, 합당한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고 둘째로 서로서로 원망이나 시기하지 말고 서로서로 복을 빌어 주고 기도해 주며 축복해 주어서 정말 아무리 눈물의 가정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룻의 가정처럼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복을 주시는 1997년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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