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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을 쌓은 일군들. (느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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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 공부한것을 잠시 복습을 합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고요히 삼일간 지내는 중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라고 하며, 그 하나님의 감화를 받아 순종하는 느혜미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에게 온 이 하나님의 감화는 신약에도 있었고,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누가복음2장 22절이하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죽기전에 그리스도를 볼것이라는 성령의 지시'(26)를 받아서 기다리던 어느날 성령께서 빨리 성전으로 가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시므온은 즉시 순종하므로 성전에 막 들어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므온을 감동하신 성령은 다름 아닌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 속에 내주하여 계시는 바로 동일하신 그 성령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동일하신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성도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게 하시고,또한 성령 충만케도 하십니다.그러나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싶고,성령충만을 받고 싶은사람은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 순종할 마음의 자세부터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나하면, 사도행전 5장 32절'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하셨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안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아무리 감동하시더라도 순종안하므로
성령의 감동하심이 소멸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살로니가 전서 5장 19절에 말씀처럼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부임 초기에 성벽을 건축하고자 하는 불타는 사명의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느혜미의 모습속에서 참신앙의 사람의 모습을 본다고 했습니다. 참신앙의 사람은 사람 앞에 말하기전에 시편 62:8절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 39편2절에 '사람 앞에서 특별히 말을 삼가한다'고 하였고 야고보서 1장 19절에 '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한다'고 하였습니다. 참신앙인의 모습을 본받자 했습니다.
 
느헤미아는 드디어 이제 하나님으로 받은 성벽재건의 사명을 실행으로 옮겨야 할때가 &46124;습니다.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다음 두가지를 말합니다.
(1) '예루살렘 무너진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 받지 말자'라고 하며 민족의 아픔에 호소를 하며 (2), 간증을 하는데 ,느혜미야2장18절에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던 일'을 간증하므로 성벽재건하는 이 일의 동기가 바로 신앙에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런 느혜미의 말을 들은 모든 백성들은 깊은 감화를 받았고,.그리고 모두 떨쳐일어나서 '일어나 건축하자' 라고 외치며 오늘 3장으로 넘어와서 성벽 건축에 모든 백성이 달려 들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것입니다. 3장의 성벽건축의 사건을 통해 몇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예배의 회복입니다..
1절을 보면 '때에 대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재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멜 망대까지 선별하였고..'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제사장들이 제일 먼저 건축한것은 '양문'입니다.
양문으로 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계속 나누어 성벽을 둘러 건축하기로 구역을 구분한 다음 마지막 양문으로 마칩니다.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양문 부터 회복시켜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양문이 하는 역활은 즉 양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양을 끌어 드리는 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출입시키는 성전가까이 있는 특별한 문입니다. 그래서 1절을 보면 이 문을 '성별했다'고 했습니다. 유다백성들이 이 문을 모든 성벽건축의 우선으로 또한 깃점을 잡은것은 무엇 무엇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제일 중요하며 모든 일에 앞서 그것을 먼저 회복해야 하고 또 그곳에서 부터 시작되어져야 한다는 양문 건축속에 담겨 있는 고귀한 신앙의 정신을 우리가 볼 수 있는것입니다.
오늘날 무너져 내리고 있는 신앙,가정,도덕,경제,문화, 등등 수많은 것들 중에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라는것을 교훈으로 받습니다.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예배를 회복해야 하고 예배로 부터 모든것을 시작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잘만 드리면 신앙 점점 건강해지고 윤택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를 믿은지 오래 되어도 ,하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신앙이 좋아지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중에는 봉사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너무나도 잘합니다.그러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일을 맡겨서 몇 사람분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런 분들은 많은 봉사 때문에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합니다.예배를 드려도 정성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일에 바빠서..... 얼핏보면 열심있고 봉사를 잘하기 때문에 신앙이 좋은 분인줄압니다만, 그러나 예배를 소홀이 함으로써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신앙에 점점 병이들기 시작해서 결국은 낙심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무리 바같에서 봉사를 많이하고 아무리좋은 일을많이 해도 예배에 은&54700;를 받지 못한체로 한달 두달 지나다 보면 사람때문에, 일때문에 괜히 화가나기도 하고 신경질이 나기도 하고 괜히 원망이 생깁니다. 그러다가 신앙에 병이 들어서 나중에 보면 얼마나 상처가 많은 줄 모릅니다. 이 신앙애 병이 안들려고 하면 무엇 보다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되어야 합니다.가인과 아벨이 똑같이 에배를 드렸지만 아벨의 예배는 열납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시지 않았습니다. 예배시간에 밤낮 졸기만 하고, 귓속말만 하고, 엉뚱한잡생각이 나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 사람이 드리는 에배를 열납하시겠습니까?.
 
2,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은혜를 받아야 신앙이 자랍니다. 또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24절 '내게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예배드리는 곳에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저렇게 초 강대국으로 축복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청교도 정신의 계승에 있습니다. 청교도 정신이란? 굶어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예배부터 드리겠다는 정신입니다.17세기에 메이 풀라워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제일 먼저 지은것이 예배들리 수 있는 예배당이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그 다음 자기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하나님께 그 조상들이 예배를 드리므로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 민족이 축복을 받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예배를 회복해야 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예배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유다 백성들처럼 무너진 양문부터 건축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느헤미아 3장을 통해서 두번째 받을 수 있는 교훈은?
 
2,팀웍의 중요성입니다.
3장 1절부터 몇절을 쭉 읽어 보면,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고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 부터 하나멜 망대까지 성별하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고, 그 다음은 .. 그 다음은 . 그 다음이란 말이 3장에 무려 29번이나 나옵니다. 3장이 32절로 되어 있는데 29번이니 매절마다 거의 한번씩 나오는것입니다. '그 다음'이란 말은 시간의 순서가 아닌 장소의 구분입니다. 성을 쌓는 일에 있어서 팀웍을 가지고 지역을 나눈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이 팀이.. 저지역에서는 저 팀이.. 그래서 성경에는 그 팀장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그 이름들이 47명이나 됩니다.
 
느헤미야 이하 46명하지 않고 왜 이렇게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을까요?
그 개개인 한명 한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의 일에 책임을 다해서 하나의 성벽이 이루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 개인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그 한명 한명이 전체가 다 중요했었다는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도 빼놓을 수 가 없었다는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몸에 많은 지체를 두셨습니다. 지체하나 하나 중요하지 않는 지체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8절 이하를 보면,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가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고 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28절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1)교회에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중에 단 한 사람도 쓸모 없는 사람이 없다는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보실때는 쓸데가 있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약하게 보이는 지체일지라도 그를 향해 '저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몸된 교회를 위해서 쓰신다는것입니다.
 
저는 섬에서 교회를 건축할때 그것을 역역히 체험을 했습니다.
교회건축할때 어떤 성도는 물질을 ,목제소 하고 성도는 교회 바닥을 할 많은 나무를, 목수기술이 있는 집사님은 오셔서 몇일을 자면서 목수일을 ,전기기술있는 집사님은 와서 교회 전기 설치를, 교회 제반 일과 종탑 십자가를 세우는 일을 할 줄 아는 집사님을 통해서 용접기까지 갖고 들어와서 그 일을 .. 다 곳곳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진 성도들이 한분 한분 하나님이 섬으로 들어 보내주셔서 예배당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다 쓰시는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버릴사람이 없습니다.
 
부산에 모리아교회의 여전도회 연합수련회 강사로 가서 일일 수련회를 인도한적이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서 연로하신 권사님들중에 한분이 점심식사를 대접하는데 같이 동석을 하여 저는 몸이 늙고 힘도 없어 몸으로는 일은 못하지만 대신 기도로 일합니다. 천국갈때까지 민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교역자들을 위해. 기도의 짐을 질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참 귀하신분이시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버릴 사람이 없습니다.
 
(2)또한 교회 지체는 서로 돌아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분쟁하면 안된다는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같이 고통을 받기때문입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2:13절에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안에서 성도끼리 분쟁하게 되면 그 당사자는 서로 마음이 몹시 아프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사의 아픔을 보는 옆에 있는 성도도 같이 마음이 고통스러워집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근심하기때문입니다. 내속에 계신 성령의 근심하실때 나도 같이 근심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체가 영광받을때 내 속에 계신 성령이 즐거워하시므로 나도 같이 즐거워지는것입니다.
 
대심방중을 죽 해나가는 도중에 아주 어려운 가정을 만났습니다.
에배중에서 그 성도는 찬송을 부르면서 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눈에 눈물이 머금어져 있고, 말씀후에 아픈 가정에 여러사연을 주께 아뢰며 또한 아픈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할때 그 성도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율되어 느껴져 왔습니다. 제게 만 아니라 같이 동석했던 장로님도 권찰님도 같이 그 성도의 아픔에 같이 동참하고 있었고, 나오실때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얼마씩을 꼭 쥐어주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연약한 지체를 돌보는 주의 사랑의 훈훈함'을 보았습니다..
 
느혜미야의 위대한점은 지체와 일을 나눌 줄 알았고 또 지체들을 존귀이 돌볼 줄 알았다는것입니다. 3장을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도 단 한마디 자신의 이름으로 느헤미야는 거론하지 않는것을 보게 됩니다. 3장 16절에 '느혜미야'란 이름이 나옵니다만 그 느혜미야는 아스북의 아들 느혜미야이지, 유대총독으로 성벽건축을 지도하는 느혜미야가 아닙니다. 이 성경책을 기록한 사람이 느혜미야 자신입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이름을 높이 들어나게 할 수 있었을텐데도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도 기록해 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전재건의 공로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느혜미야의 넒은 마음을 엿 보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정말 위대한 사람인가? 생각해 볼때 자기 이름보다는 자기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의 이름을 높여 주는사람입니다.
주변의 사람을 자기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청년시절때 부산 벧엘교회에서 목사님이 저를 잘보셨는지 전도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주일학교를 다 맡겨주셨습니다. 지도교사라는 명칭으로 교육부서를 맡은것입니다.
주일학교 주보를 냅니다. 그 이름난에 맨위에 교장으로 당회장 목사님의 이름을 적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지도교사인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 다음에 부장집사님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주보를 받아쥔 부장 집사님이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그리고 주보를 앞에 턱 펄치시디만 제 이름에 줄을 옆으로 쫙쫙&44561;고, 그리고 그 이름대신에 '부장' '자기 이름'을 적고, 그리고 자기 이름위치에 내 이름을 기록하라고 하면서 화를 내시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저는 사실 처음당하는 일이라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저 부장 집사님이 대단히 화가 나 있는데 저 분의 마음을 돌이키고 이 부서일에 적극적으로 일하시도록 협조하게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기도하며 생각하는 중에 성령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다음번 부터는 이름의 순서도 고친것은 물론이고, 무슨일의 결정사항이 있으면 하나하나 찾아가서 여쭈었습니다. 나에게도 보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가서 항상 의견을 여쭈었고 그분을 높였습니다.한 달 쯤 그렇게 하니, 나중에는 제발 나좀 찾아오지 말고 최선생님이 알아서 하시라고..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얼마나 저를 좋아하는지... 제가 말만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조를 해주시는 분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가 부흥이 되는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어느 사람이 조그마한 일을 갖고 화를 내고 자꾸 까시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좀 높여 달라고 하는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름은 죽이고 주변의 사람들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했습니다. 빌리보서 2장 5절이하에 말씀처럼 '하나님과 근본 본체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되이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므로' 아버지를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고, 느헤미의 모습을 닮아야 할 줄 압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배를 회복하십시다. 예배로 부터 시작하십시다. 지체를 소중히여기시고,,지체와 일을 나누며, 지체의 이름을 높이는 느헤미야야의 넒은 마음 본받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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