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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 (대하 18: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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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나뉘어져서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남쪽에는 유다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일곱 번째 왕인 아합과 남쪽 유다왕국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이 얼마나 악한 왕인가 하는 것은 열왕기상 21장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아합의 왕궁 근처에 포도원이 하나있었는데 아합은 그것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갖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거기에 나물을 심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사리, 미나리, 이런 것을 심기 위해서 그 땅을 탐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주인인 나봇이라는 사람은 '이 땅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집에 가서 자리를 펴고 앓아 누웠습니다.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워 하다가 결국은 나봇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죽인 다음에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아합은 이렇게 성품만 악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대신에 바알 신전을 세우고 온 국민으로 하여금 바알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반대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몽땅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역대 19명의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다왕국의 여호사밧 왕은 유다의 역대 20명의 왕 중에서 가장 선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모든 우상을 없애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게 여겨서 자신이 직접 전국을 돌면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서를 가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온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도록 애를 썼습니다. 이러한 여호사밧을 가리켜 성경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하고, 가장 선한 왕이었던 여호사밧이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는가 하면 여호사밧의 아들과 아합의 딸이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악한 왕과 가장 선한 왕이 서로 사돈으로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아합은 여호사밧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했습니다. 요단강 동북쪽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 길르앗 라못이라는 큰 도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욕심 많은 아합은 그 도시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힘만으로는 안되니까 여호사밧을 끌어들입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뇨?' 이때 여호사밧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여호사밧은 새로 얻은 며느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며느리가 마음에 드니 그 아버지 아합도 좋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당신 사이에 따질게 뭐가 있느냐? 내 나라가 당신 나라고, 당신 나라가 내 나라니, 같이 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지혜와 힘을 다 동원했지만 죽고 말았고, 또 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만났지만 살아남았습니다.

먼저 아합이라는 사람을 살펴봅니다. 여호사밧과 함께 전쟁터에 나간 아합은 한 가지 꾀를 냅니다. 원래 싸움이란 상대편의 왕을 죽이면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왕이 어디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을 죽이기 위해 특별히 돌격대를 만들어서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왕의 옷을 벗어버리고 보통 군사들이 입는 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리고는 여호사밧에게 '이 전쟁에서는 당신이 대장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왕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랬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여호사밧은 자기가 대장이라는 말에 신이 나서 왕의 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아합은 상당히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여호사밧은 왕의 옷을 입고 있으니 적의 집중공격을 받을 것이요, 자신은 보통 군사의 옷을 입고 있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아합의 군대는 병거 2천에 보병 일만 명이었습니다. 여기다가 여호사밧의 군사가 같은 수로 참전했다고 하면 보병만 해도 2만 명입니다. 아합은 2만 명의 보병 틈새에 끼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이 죽을 확률은 2만 분의 1입니다.
그런데 본문 33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솔기라고 하는 것은 이음새를 이야기합니다. 갑옷은 원래 쇠붙이를 연결해서 만드는 것인데 쇠붙이와 쇠붙이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은 사이가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이가 벌어진 틈으로 화살이 날아와 꽂혔습니다.
이번에는 우연히 날아온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나한테 화살이 날아왔는데 그 화살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의 이음새 부분, 재봉틀로 박은 이음새에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누가 계산해 보시고 다음 주에 좀 알려주십시오. 아합이 활에 맞아 죽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우연히 쏜 화살이 날아와 아합의 갑옷 솔기에 맞았습니다. 부상을 입은 아합은 도망을 치려고 하였지만 밀려드는 적군 때문에 도망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피를 많이 흘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역대하 18장 19절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합을 길르앗 라못에서 죽이기로 작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합니다.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녀석이 어머니 태중에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대로 이삭은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장성하자 이삭은 고민이 생깁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맏아들에게 축복을 비는 관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게 베풀어주던 하나님의 은혜가 맏아들에게 이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고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옛날에 하셨던 말씀이고, 또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그래서 에서 대신에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하십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은 이삭은 크게 놀랍니다. 창세기 27장 33절은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하였습니다. 이삭이 왜 크게 떨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하신 말씀, 지금은 장성한 아들들이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하신 말씀이, 결코 사라지거나 변함이 없이 오늘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렇게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인가, 너무도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심히 크게 떨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를 다 짜내고 있는 힘을 다해 막아보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소용없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지혜를 다 동원했습니다. 여호사밧을 끌어들이고 자신은 2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 틈에 숨어있었습니다. 또한 아합은 상당히 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아합이 부상을 당한 채로 병거에서 싸우다가 저녁 때 죽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전쟁은 이른 아침에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아합은 부상을 입은 채로 하루 종일 싸움을 할만큼 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가 있고 힘도 있는 아합이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서 4장 35절 말씀입니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고,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항의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멋대로 하겠다고 하면 죽으려고 작정한 것과 똑같습니다. 아합은 '이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예언하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여러분의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해서 아무리 애를 쓴다해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을 살펴봅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예상했던 대로 아람군대는 왕의 옷을 입고 있는 여호사밧에게 총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자기를 향해 공격해 오는 아람군대를 본 여호사밧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호사밧은 지금까지 한번도 전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역대하 17장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이웃 나라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셨습니다. 여호사밧이 싸우려고 나가면 전부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한번도 실전에 참가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전에는 여호사밧이 나타나기만 해도 다들 겁을 먹고 도망갔는데 이번에는 모두들 칼을 들고 덤비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병거의 장관들이 공격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병거, 즉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싸우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발된 군인들입니다. 거기서도 장관들이라면 오늘 말로 하면 공수부대 사단장들입니다.
이렇게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여호사밧은 어쩔 줄 모르고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본문 31절은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사밧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며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시작을 했겠습니까? 적들이 쫙 둘러싸고 쉴새없이 공격을 해오는데 기도할 새가 어디 있습니까? 말 그대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살려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게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군대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살려주세요' 이 짧은 외마디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을 도우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도와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사밧에 대한 구절들을 몇 가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구하고 그 계명을 행하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했습니다.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썼습니다.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을 찾음이니' 그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해있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외마디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며 지켜주셨습니다.
사실 여호사밧같이 무능력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시에 아합에 대한 나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져있었는데도 아합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사돈을 맺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던 며느리, 아합의 딸 아달랴는 바알우상을 섬길 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기 손자들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았습니다. 여호사밧은 도무지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아합의 꾀에 넘어가 자기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아합이 자신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모르고 신이 나서 대답했습니다. 멍청하고 속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는 왕의 옷을 입으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나간 사람입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눈도 없고, 지혜도 없고, 판단능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터에서 꾀 많은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대하 20장에 그 이유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압이라는 나라와 암몬이라는 나라가 연합군을 편성해서 유다왕국을 치러왔습니다. 너무도 막강한 군사력 앞에 온 백성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나서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 믿음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오직 주만 바라보는 믿음,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도와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향해 있는 사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어떠한 위기를 만나든지 승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이 남들보다 똑똑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남들보다 능력도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남의 꾀에 넘어가 늘 손해를 보아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면, 여러분이 어떤 위기에 처하든지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 한 마디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도우십니다.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이 믿음을 갖고 늘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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