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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인의 몰락은 만인의 기쁨입니다 (에 0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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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몰락은 만인의 기쁨입니다 (에 6:10-14)

하만이 아침 일찍 왕을 만나러 온 이유는 모르드개의 처형을 허락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왕이 부르더니 다짜고짜로 왕이 존귀케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떤 방법이 좋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왕이 가장 높였던 사람은 바로 하만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왕이 당연히 자기 얘기를 하는 줄 알고 높아지고 싶은 욕망을 마음껏 표출했습니다.

이제 왕이 “그 존귀케 하려는 사람이 바로 하만 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하만은 자연스럽게 자기가 아침 일찍 왕을 만나러 온 목적, 즉 자신을 몹시 노엽게 하는 모르드개라는 놈을 처형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잠시나마 왕의 영광을 누려보기도 하고, 꼴보기 싫은 모르드개도 없애버리고, 그리고 기분좋게 왕비의 파티에 참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아침부터 일이 잘 풀리는 걸까요? 과연 오늘은 하만의 생애에 최고의 날이 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하만은 한껏 마음이 부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만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하는 것도 잘 드러납니다. 만약 왕이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최고의 영광과 존귀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을 했겠습니까? 자기 이익과 관계된 것은 확실하게 챙기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결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사람들이지요.

그나저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하만은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입니다. 지금 하만은 벌써 마음속에서 왕복을 입고 왕관을 쓴 채 왕의 말에 타고 성중의 거리를 시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지금 모르드개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궁리를 하는 중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면 이렇게 수치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교만하면 자기 분수를 모르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씀이 있습니다. 만약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면 상석에 가서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초대를 받아서 왔을 경우에 주인이 와서 ‘죄송하지만 자리 좀 비켜 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거란 말이지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아직 비어 있는 말석에나 가서 앉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속말로 쪽팔리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차라리 말석에 가서 앉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와서 ‘아이구, 왜 이렇게 말석에 앉아 계십니까? 이리 오셔서 상석에 앉으십시오.’ 이렇게 요청을 하면 체면이 좀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게 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히려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자신을 높이려다가 진짜 쪽팔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존귀케 하려는 사람은 모르드개다. 그리고 신하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사람은 너 아니냐? 그러니 너는 네가 말한 대로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네가 말한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도록 하라.” 자, 이 말은 들은 하만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해버렸을까요? 아니면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생기거나 말을 못하게 되는 실어증에 걸리지는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하만은 그토록 미워하던 모르드개를 없애버리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했고 준비도 완벽하게 해 놨는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그 모르드개를 가장 존귀하게 모시는 아이디어를 낸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만이 왕에게 분노를 터뜨리거나 반발을 할 수도 없습니다. 왕 앞에서는 얼굴색이 변하거나 심지어는 슬픈 기색을 보이는 것조차도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히 반항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의 말에 태워서 그 말고삐를 잡고 성중의 거리거리를 다니면서 이렇게 소리를 쳐야 했습니다. “이 분은 폐하께서 존귀케 하시려는 분이시다.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해라!” 그러니까 하만은 졸지에 모르드개의 시종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악인들의 종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시 9:16). 또 솔로몬은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인다”(잠 5:22)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경험하는 악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자기 꾀에 넘어가 파멸에 이르는 악인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세력이 확장되고 잘나가는 악인들도 있습니다. 악한 모습을 교묘히 감추고 유력한 사람 행세를 하는 악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악인은 망해야 한다는 전제가 우리 마음속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법칙에 따라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로서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왕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복을 입고, 왕관을 쓰고, 왕의 말을 타고, 그리고 가장 높은 신하가 말고삐를 잡고 성중의 모든 거리를 다니며 온 백성의 경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모르드개로서는 대단히 위험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만약 여기서 모르드개가 우쭐하거나 마음이 높아져서 교만하게 된다면 하만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높임을 받고 칭찬을 받을 때 넘어지고 실수하게 되기 쉽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를 신뢰하셨고 또한 그의 믿음과 리더십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이었지요. 그런데 그 칭찬을 받은 직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또 나서서 말했습니다.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주님께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베드로는 칭찬을 좀 받으니까 자기가 마치 주님의 경호대장이나 비서실장쯤 되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자기가 나서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라는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본다면, 인간적인 의리나 정을 앞세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반대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지요. 이처럼 칭찬을 받고 우쭐해졌을 때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를 보면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아요. 왕에 해당되는 대접을 받고 나서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갔습니다. 왕의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인간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반면에 하만은 어떻습니까? 수모를 좀 당했지요? 그런데 그 수모를 당한 후에 하만은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어요. 머리를 쌌다는 것은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왕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왕비의 잔치에 초대를 받을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하던 하만의 마음은 한 차례 수모를 당했다고 한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만의 본색이지요.

하만이 가지고 있었던 지위와 존귀는 전적으로 왕에 의해서 주어진 것일 뿐이지, 그 내면의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서 주어진 존귀가 벗겨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무슨 타이틀이나 지위, 또는 업적에 의해 유지되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타이틀이나 업적이 없어지면 유지가 안 된다는 얘기지요. 외모로 유지되는 인간도 있겠지요. 돈으로 유지되는 인간도 있을 테고요. 그런 사람에게서 돈이 없어지면 존귀함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가치에 의해 유지되는 존귀함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돈 없어도 존경스러운 사람 있잖아요? 말단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당당하고 품위 있게 사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할 방법을 의논하던 때와 같이 아내와 친구들 앞에서 오늘 당한 일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하나같이 하만의 몰락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만이 모르드개를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모르드개가 유다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만의 집 마당에는 20미터나 되는 높은 나무가 세워져 있습니다. 모르드개를 잡아다 매달기 위한 것이지요. 비록 왕이 갑자기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높이는 바람에 모르드개를 나무에 매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12월이 되면 모든 유다인을 학살하라는 왕의 조서가 이미 반포되어 있고, 하만은 여전히 가장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하만이 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앞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 걸까요?

명확하게 이유를 찾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무에 매달아 처형하려던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하만이 그 말고삐를 끌고 성을 한 바퀴 돌게 되었다는 극적인 역전상황을 보고 이들은 매우 놀라고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공포가 이들에게 임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유다인의 조상들에게 철저하게 패배했던 악몽이 되살아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소문으로나마 많이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인들을 몰살하려고 했던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왕의 내시들이 와서 왕비의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하만을 데리고 나갑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의논하고 대책을 강구할 시간이나 기회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악인의 몰락은 신속하고 걷잡을 수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악인들과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봅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데,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했던 말을 상기해 보세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결국 얼마나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셨습니까? 여기서도 하나님은 얼마나 통쾌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그 백성을 구원하고 계십니까? 오늘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까?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구원하심에 의지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도 아니하시고 역사책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며 구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고, 매일 그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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