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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과나무 밑에서 (아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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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가서 1:15-17을 뜻을 생각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아 1:15-17)
여러분! 읽으신 말씀의 뜻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어렴풋이는 아시겠지만 아가서가 지니고 있는 짙은맛은 느끼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으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정말 아름다구려 그대의 눈은 비둘기 같소이다'(아 1:15) '나의 사랑하는 님이여, 당신은 정말 멋있고 잘 생겼습니다. 우리 침대는 푸른 풀밭이요 우리 집의 들보는 백향목이며 서까래는 잣나무입니다'(아 1:16-17)

여러분! 어떻습니까? 확근하지 않습니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시골에서 만나 대자연을 누비며 열렬하게 첫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때 술람미 여인은 멋지고 잘생긴 솔로몬과 아주 깊고도 달콤한 사랑에 빠져 꿈같은 황홀경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묘사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 사론이란 팔레스타인 의 서북지역에 있는 넓은 평야를 의미합니다. 이 평야 지대는 장이 약 90리, 광이 약 30리나 되는 넓은 지역인데, 지금은 국가 경제를 위하여 오렌지 밭으로 개간하였으나, 솔로몬 당시는 넓은 평야 그대로 있었고 이곳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만발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나 터키지역을 여행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동지역에는 들에 양귀비꽃이 굉장히 많습니다. 때로는 파란 밀밭 사이사이에 빨간 양귀비꽃들이 요염한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데 가이 환상적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사론의 수성화요 솔짜기의 백합으로 표현한 것은 솔로몬의 궁전에는 화려한 기화요초와 같은 '후비가 칠백이고 빈장이 삼백이나(왕상 11:3)되고, 이들 중에는 애굽 왕 바로의 공주로부터 지체 높고 고양 있는 여성들이 줄비한데, 이들에 비하면 자신은 시골에서 포도원이나 지키던 여성으로 마치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야생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천한 자신이 일국의 제왕의 사랑을 독점하게 되었다는 것이 꿈만 같고 구름 위에 떠있는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수를 넘지 않았습니다. 교만도, 자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론의 수선화에 불과하고,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골짜기에 홀로 피었다 지는 백합에 불과하다고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드러움과 겸손은 여성이 지녀야할 아름다운 덕이며, 성도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가져야 할 덕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덕을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잠 18:12)고 하였고,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술람미 여인처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생활에서 겸손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골짜기의 백합화로 표현하자 솔로몬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다'(아 2:2)고 화답을 합니다. 백합화는 꽃의 색깔이 희고 청순하여 아름답고, 다른 꽃들과는 달리 머리를 다소곳이 땅을 향하여 숙이고 있는 것이 아름답고, 짙은 향기가 있어 아름답습니다. 이런 꽃이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 있다면 거친 배경 때문에 더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때로는 일진광풍이 불어오면 백합은 애매하게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게되고, 그 상처에서 진액이 흘러 향기가 더욱 짙게 확산되니 아름다운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여자들 중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애매하게 가시에 찔려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A.D. 70년경 로마의 네로 황제는 로마시에 대하재가 났을 때 이 방화의 범인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애매하게 누명을 씌워 핍박을 합니다. 이때 성도들 주변에는 날카로운 군병들의 창검이 가시처럼 번뜩였고, 이 가시에 찔려 수많은 선량한 성도들이 형장의 이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순교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의 향기였고, 그 피의 호소는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을 뿐 아니라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사론 평야의 수선화만이 아니라 가시나무 속에 핀 백합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많은 가시들이 돋았고, 일진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수십년 직장과 사업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온 직업인들에게 IMF는 일진광풍이고, 이런 저런 예리한 가시에 우리는 찔리고 있습니다. 그 가시는 아픔과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이럴 때 성도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입니까?

어렵고 힘들 때 절망하고 낙담하고 실의에 빠져야 할 것입니까?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 앞에 나와 말씀 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절대 주권의 주님을 믿고 인도를 받으며 굳건하게 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역경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신앙의 빛을 발하고 예수님의 향기를 물씬 나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날 저녁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는데, 우리도 십자가의 가시에 찔려도 승리의 주님을 따르면서 승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도는 죽는 순간에도 믿음이 흔들리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사랑하는 여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아가서를 강해하는 동안 여성도님들은 남편에 대하여 나는 사론의 야생화에 불과한데 당신이 나를 사랑하여 거두어 주었으니 참으로 고맙소라고 생각하시고, 남편되시는 분들은 아니 나와 같은 사람 때문에 당신은 많은 가시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었어도 가시나무 속의 백합화처럼 아름다운 미소와 격려로 주님의 향기를 발하여 내가 오늘에 이르렀소 참으로 고생 많이 하였소 라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격려와 위로의 말을 들은 술람미 여인은 다음과 같이 솔로몬을 찬양합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는 고백은 솔로몬은 남자중의 남자로써 많은 닭 무리 속에 섞여 있는 훌륭한 장닭이 아니라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아서 다른 남성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남편을 볼 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보듯 하시기를 바랍니다.

술람미 여인의 속삭임은 계속됩니다.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고 말입니다. 사과나무는 봄에는 꽃과 향기를 제공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맛과 영양이 좋은 열매를 제공합니다. 사과의 영양이 얼마나 좋은지 아침의 사과는 금 사과요, 낮의 사과는 은 사과라는 말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 사과나무의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정치인도, 학자도 많고, 종교도, 학설도 많습니다. 동양에는 공맹의 도가 있고, 인도에는 석가의 도가 있고, 중동에는 마호메트의 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많은 성현 중의 또 한 분 위대하신 분이 아니라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믿습니까?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어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선언하신 분이시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할 수밖에 없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밑의 나다나엘은 그에게 나와 진리를 얻었고, 가시채를 뒷발질하던 사울도 주님 곁에서 쉼을 얻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요긴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과나무 그늘에서 쉬는 혜택은 나그네도 가능하지만 열매는 신부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늘 밑에서 쉼을 얻는 것은 외부적이며 육신적인 은혜를 의미하고, 열매의 감미를 체험하는 것은 내부의 만족 곧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강건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신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릴 때 육신도 마음도 주님의 은혜로 소생하고 충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아 2:4-5) 이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드디어 예루살렘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연회에 참석시킵니다. 술람미 여인에게는 사과나무 밑의 밀회도 아름답고 과분한데,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Party에까지 참석하는 영화를 얻게 되니 감격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가시에 찔려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성도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영광스런 Party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소망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이제 그가 참석한 Party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분이 비천한 술람미 여인이 화려하고 호화로운 왕궁의 Party에 처음 참석하니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하게 되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리게 됩니다. 과분한 대우를 해주는 신랑 솔로몬의 사랑 때문에 숨이 막히고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 이것을 그는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날 지경이고' 표현했고, 그래서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아 2:5)고 부르짖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영광은 우리가 천성에서 누릴 영광입니다. 미천한 우리들, 죄와 악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해 주셨고,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 앞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천국의 진주 문을 썩 열고 들어가 기화요초가 만발한 황금 길을 걸어가면 천군천사들의 풍악소리와 함께 주님은 우리를 영접해 주실 것이고, 영광으로 가득한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우리도 주님의 사랑으로 병이 날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이때를 위하여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건포도로 영혼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건포도는 장구하게 보관할 수 있어 원방에까지 수출할 수 있고, 영양분이 풍부하여 사람의 기운을 소생시키기에 충분한 식품입니다. 그래서 건포도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상징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건포도와 같아서 영구불변이며, 원방에 수출이 가능하여 사해에 퍼지니, 대한에 사는 우리들도 이 말씀의 권능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든든히 하여 오늘을 승리하고 천국의 영화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아 2:6) 황홀한 중에 정신을 잃다 싶히 한 술람미 여인에게 솔로몬은 가까이 닦아와 그를 사랑의 손으로 감싸 안아 줍니다.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여러분! 우리가 실의에 빠지고 곤경에 처하여 몸부림 칠 때 솔로몬보다 더 부드러운 손길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십니다. 믿으십니까? 성경에는 왼손은 위로와 안위를 상징하고, 오른 손은 권능과 보호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이런 손으로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형편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망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축복의 손을 기다리며 그의 사랑의 품에 안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심된 분들이 계십니까? 고통의 멍에를 메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어렵고 힘든 짐을 홀로 지고 애쓰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을 품에 안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오른 손과 왼손에 못이 박히셨으며, 지금도 두 팔을 벌리고 게십니다. 이런 주님의 품에 안기도록 하십시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2:7) 술람미 여인은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하였지만 솔로몬의 사랑의 품안에 안기면서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가수들은 노래를 부르고 무희들은 춤을 추겠지만 나는 솔로몬의 품으로 만족하니 그런 것으로 우리를 번잡케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영화도, 세상의 즐거움도, 고량진미의 배부름도, 주님의 사랑의 품만 같지 못하다고 느끼는 순수한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을 다 주고도 주님의 사랑과 바꿀 수 없고, 세상 것 다 잃어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을 제일로 여기는 믿음이며 우리가 최후까지 지켜야 할 고귀한 믿음이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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