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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결하게 하는 말씀 (시 1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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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지도와 같습니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우리가 거룩과 순결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지도대로 따라갈 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배워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찬송하며 하나님의 뜻 이뤄 나가야 합니다. 시편 119편의 두 번째 주제는 ‘순결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죄악에서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하며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죄의 더러움에서 자신을 순결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죄, 더러움, 욕망 등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부부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남편을 떠나 외도하는 부정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와 부정하는 여인과 같은 것입니다.

▶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본문 말씀은 우리가 죄에서 구별된 삶을 살도록 강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이 말씀은 이미 우리가 죄로 더럽혀져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깨끗케 할 수 있고 정결케 할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년’이란 시편 기자가 ‘청년’이라서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또 기자가 청년의 시기를 보낸 후에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청년’은 그 자체가 생동감을 줍니다. 청년기에 갖는 열정과 의지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기에는 유혹 역시 끈질기며 사탄은 매혹적으로 공격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가 죄를 짓게 하려고 할 때에 나이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면 죄의 유혹은 더욱 집요하고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라는 말씀에서 누구라도 ‘청년’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시편 기자가 절규하는 더러움에서 이겨 나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밀려 넘어질 때, 죄의 파도에 휩쓸릴 때,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때 어떻게 죄악에서 깨끗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삼가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지도와 같습니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우리가 거룩과 순결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지도대로 따라 갈 때 안전하게 목적지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을 비추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의 유혹은 아주 달콤합니다.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죄의 유혹에서 자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씀이 뜻하는 대로 행동할 때 죄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편 119편은 8절씩 한 단락을 이룹니다. 2절의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과 10절 말씀이 대비를 이룹니다. 시편 기자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전심으로 주님을 찾고 구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사모해야 합니다. 주일을 맞아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겠다는 마음으로 교회에 모이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때, 죄악에서 자신을 지켜 나가고 거룩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염려는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 우리를 하나님께 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는지, 예배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 주시는지 의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유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이 없을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하나님에 대한 갈망도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방법
셋째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둬야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둘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에 주님의 말씀이 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 범죄치 아니하려는 이유에서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귀하신 주님을 질그릇에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질그릇은 그다지 귀하거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순결하시며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담는 우리의 마음은 실상 흠이 많습니다. 상처, 연약함, 부족함이 있는 우리의 마음이지만, 그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둘 때 크신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남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때, 우리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고 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셨을 때 사탄이 주님께 와서 세 가지를 시험했습니다. 그 시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사탄에게 받았던 것과 동일한 주제였습니다. 아담은 사탄의 시험으로 무너져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모두 이기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을 믿는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
12절 말씀입니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방법으로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말씀을 마음에 두는 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려면 우선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배워야 하고, 배웠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마다 ‘온누리신문’과 ‘주보’에 주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그는 4장 13절에서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그가 기록하길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배우고자 했던 점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상고’라는 말은 자세히 읽고 살펴서 본의를 곰곰이 되새긴다는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자세히 읽고 살펴서 마음에 새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자세히 읽고 헤아려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담아 둬야 합니다.

▶ 능력과 은혜의 찬송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방법으로 둘, 입술로 말씀을 선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13,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입술로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곧 말씀을 소리나게 읽는 것입니다.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는 것’중의 하나는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들은 대개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512장입니다. 3절 가사는 “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입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을 때, 인생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평생에 힘쓸 것이 있는데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내가 너를 사랑한 그 사랑을 찬양하고 나의 십자가, 보혈, 부활, 구원을 이야기하라’. 저에게 512장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무척 귀합니다.

우리는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눈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뿐 아니라, 입술로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와 더불어 말씀에 근거한 찬송을 부를 때, 말씀을 마음에 둘 수 있습니다. 찬양으로 영혼에 말씀을 외치며 스스로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두 제자는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 주실 때 우리의 마음에 뜨거움이 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입술로 말씀을 선포할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가사 속에서, 곡조 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기 위해선 찬송을 외워서 부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길을 걷거나 운전할 때,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쉴 때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과 말씀에는 능력과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함으로 상한 마음이 위로 받고 치유되길 바랍니다.

▶ 새 힘을 얻는 말씀암송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방법으로 셋, 주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15, 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암송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면 그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캄캄한 곳에서 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할 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알려 주십니다. 한 주일에 한 구절씩이라도 암송하겠다는 소원을 갖고 말씀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암송하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제가 처음 암송하고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내용은 주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찢기고 인정받지 못해도 주님 안에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말씀을 암송하면 어제는 실수하고 부족하며 연약한 존재였지만, 오늘은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가운데 두셨다는 것은 말씀을 암송하는 일입니다. 많은 지식으로 머리를 채웠을지라도 한켠에 하나님의 말씀을 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찬송하며, 외워야 합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마음판에 새기며 묵상함으로써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이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면서 들어 보십시오.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찬송하겠습니다. 주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의 입술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를,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주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나는 주의 법을 명상합니다. 주의 도를 주목합니다. 주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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