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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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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몬타나 주의 빌링이라는 곳에서 기차를 세우고 간단한 연설을 할 때의 일입니다. 두 명의 어린 소년이 경찰의 제지선을 넘어서 앞으로 나와 대통령과 그 부인 그리고 유명한 인사들이 자리한 곳 바로 밑에서까지 와서 섰습니다. 그 중의 한 소년이 손에 잡고 있던 작은 미국 성조기를 번쩍 들어서 대통령에게 바치자 부인이 그 국기를 받아 들었습니다. 함께 나왔던 다른 소년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국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른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 손에 쥐고는 대통령 에게 뻗쳤습니다. 그것은 10센트짜리 동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몸을 구부려서 그 소년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후 5년이 지나서 윌슨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던 부인이 대통령의 지갑을 열어 보았더니 지갑의 따로 된 칸에 5년 전에 소년이 드린 선물인 10센트 짜리가 종이에 쌓인 채로 넣어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어디를 가든지 소년이 바친 그 선물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이 바치는 예물은 주님께서 이처럼 기억하시고 간직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주시고 생명의 면류관으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인터넷정보클럽)
그러나 사람들은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에반스톤 해안 폭풍우 속에서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그때 노스웨스턴 대학 학생들이 승객들을 구조하려고 나섰습니다. 그 학생들 중에 에드워드 스펜서라는 학생이 침몰해 가는 배에서 17명을 구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친 채 방으로 실려 가면서 '내가 최선을 다했나? 제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토레이 박사가 로스앤젤레스의 한 회합에서 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 청중 중의 한 사람이 '스펜서 씨가 지금 여기에 참석했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토레이 박사가 스펜서 씨를 강단위로 초대하자 백발의 노인이 우뢰 같은 박수 속에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토레이 박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참으로 장한 일을 하셨어요. 그 당시의 일들 가운데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것이 있는지요?' 그러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단 한 가지가 있어요. 제가 구했던 17명 중 어느 누구도 제게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누구도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지요)

감사 보다는 불평이 더 많기도 합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감사를 불평으로 바꾸는 사람들-인터넷 정보클럽)

이러한 불평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사람이 사탄이 사람의 가슴에 뿌리려고 준비해 둔 씨앗의 곡간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낙망'이라는 씨앗이 있었는데, 그 씨앗은 모든 곳에서 싹을 내고 자랄 수 있는 씨앗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다른 씨앗들보다 훨씬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탄들보다 훨씬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이 씨앗이 뿌리내릴 수 없는 곳은 없니?' 그러자 사탄은 그 씨앗은 아무 곳에서나 쑥쑥 자라지만 절대로 번성할 수 없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거기가 어느 곳이니?'하고 묻자 사탄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감사가 불평을 없애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불행에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에 예수를 믿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별명이 '감사할머니'였습니다. 언제든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감사합니다'하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어떤 집 아이가 병들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아기가 입원을 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이래서 얻은 별명이 감사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저녁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데 갑자기 소방차가 요란하게 지나갔습니다. 할머니는 혹시나 우리 집이 아닌가 반신반의 하면서 급히 뒤따라 가보니 자기 집 쪽이었습니다. '아이쿠! 우리 집에 불이 났구나! 나무아미타불 !' 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가 '감사합니다' 할 때에는 여유가 있고, 남의 일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에 다급한 일에 생기니까 생각도 없이 나무아미타불이 나온 것입니다.(항상 감사하라-둘로스자료)

범사에 감사하기가 때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몸이 몹시 아프거나, 불치의 병에 걸린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직장을 잃거나, 소중한 인간 관계가 깨어졌을 때 감사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할 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 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루어 주심을 깨달아 알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롬 8:28).

시각 장애를 가진 작가이며 설교자였던 스코틀랜드의 죠지 마티슨 (1842-1906)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내 인생에 장미꽃을 주신 것 때문에는 천 번도 넘게 감사를 드렸어도 나의 '가시' 때문에 감사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주님, 내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가르쳐 주소서, 나의 '가시'의 필요함을 알게 하소서. 내게 고통의 길이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 앞까지 기어서 올 수 있었음을 알게 하소서. 내게 눈물이 있었으므로 나의 무지개가 생겼음을 알게 하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모두가 됩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휘테라는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주일 설교할 때마다 그 주에 있었던 일 중에 꼭 한 가지씩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그 지역에 큰 태풍이 몰아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최악의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성도들은 오늘 아침만은 목사님이 감사할 조건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날 아침에도 여전히 감사기도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과 같은 최악의 재난이 항상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어떤 곳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 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잡수신 후 감탄했습니다. '이제껏 먹어 본 요리 중에서 이것이 제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는 세계 제일의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그러면서 요리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요리사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겸손해 했습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만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좋은 야채를 많이 파는 채소 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은 그렇다고 생각되어 채소 장수를 불렀습니다. 성으로 불려 간 채소 장수는 칭찬의 마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야채를 팔았을 뿐이며 칭찬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키운 농사꾼이겠지요.'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 갔습니다. 농사꾼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임금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랐다. '임금님,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입지요.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에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지요. 단지 저는 대대로 농사꾼이었기에 봄에 씨 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지요.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 그렇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행위를 옳게 합니다.
메리 리드 선교사는 본국을 떠나 인도에서 그리스도의 선한 사업에 힘쓰고 있었는데, 그녀는 한 가지 고민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쌍한 처지에 있으며 비참한 생활을 해 나가는 나병환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나병환자를 구제할 변변한 방도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메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은 전혀 낫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본국으로 송환되어 정밀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손가락이 점차 감각을 잃었고 얼굴에는 반점 하나가 생기더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의사는 그녀의 질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녀는 나병에 걸렸습니다. 이 사실을 메리 리드는 곧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녀가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하는 안쓰러움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메리 리드는 그 말을 듣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나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인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감사한 그녀는 일어나 인도로 갈 짐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나병환자가 된 것을 감사-둘로스자료)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는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자 입니다.
성가 작가 웬텔 라브레스 씨는 16년 이상이나 병상에 갇혀 살아온 일리노이 주의 64세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통증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으며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야말로 라브레스 씨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른 손 엄지손가락만은 아직도 쓸 수 있다는 엄청난 축복을 하나님께서 남겨 주심으로 인해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쪽 손은 완전히 굳어져 전혀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막대기에 매어진 끝이 두 갈래 난 포크를 사용하여 안경을 쓸 수 있었고, 음식을 스스로 먹고 빨대를 사용하여 차를 마시고, 큰 성경책의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이 엄지 하나를 사용함으로서 할머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라고 할머니는 한 방문자에게 말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누울 수 있으며 마음껏 마실 수가 있거든요.' 때로는 낙심되지 않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 주시는 한, 이 곳에서 누워서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엄지 하나뿐, 그러나 감사해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조베아흐 토다)는 '감사함으로 회생 제사를 드리는 자' 입니다. 제사란 어떤 회생 동물을 죽여 끌고 오는 그러한 외형적인 행위가 아니라 감사함을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감사와 제사가 함께 함에 주목해야 합니다. 감사와 제사가 함께 나타난 것은 예배 자들이 감사할 줄 모를 뿐 아니라 설령 감사한다고 해도 감사의 내용을 엉뚱한 곳에서 찾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하게, 또는 값없이 은총을 인간에게 내리시고 우리는 그 은혜 받아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주신 이가 누구인지에 관하여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결과 감사할 줄 모르게 되고 하나님께 돌아갈 마땅한 영예를 인간이 빼앗고 맙니다. 그러나 감사를 아는 이들은 기도, 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것, 모든 경건의 연습, 예배드리는 일 등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 들 조차도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치는 일은 예배에 관련된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은혜에 대한 분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참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참 믿음의 사람은 모든 땅 위의 역경도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참 감사하는 자는 인간의 가장 높은 목적을 성취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만사에 있어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그대로 돌려드리는 자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행4:33-35)고 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 구원을 확신하고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눅19:8)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14:3-9)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고 하신 말씀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모두가 됩시다.
강성찬 목사 (전주동부교회)



 (2005-06-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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