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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다운 감사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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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다운 감사 (시 50:23)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상실하면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감사절을 지켜야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감사주일을 당하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감사절이라기보다는 부담절이 되기 쉽습니다. 아니면 헌금 절기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신앙의 지배를 받습니다. 감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생각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도 유익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감사를 할 수 있는 복된 신앙인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감사이어야 합니까?

1. 감사함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형식으로 감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에 없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 없이 헌금을 합니다. 명목이야 감사 헌금이라고 하였을지라도 사실은 아닙니다. 체면으로 한 것 밖에 안 됩니다. 물론 선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절기를 지켜라 하신 것은 감사를 모르는 이들이 감사하는 방법을 알게 하심이요, 감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감사를 모르고 살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으로 감사하면서 살라고 감사 절기를 일년에 두 번씩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한 번은 반년(6개월) 동안 지켜주심을 감사하여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1년 동안 보호하심에 대하여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이왕 절기를 지키는데 절기답게 지키고 감사하려고 하면 감사 같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왜?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베풀어 준 것에 대하여는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후에 다시 더 주고 싶어집니다.

독일에 여러 해 흉년이 들어 어린아이들까지 영양실조에 걸려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돈이 있는 노부부가 그 동네 어린아이들을 위해 빵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눠준 빵을 들고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노부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빵을 나눠먹기 위해 빵을 나누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제일 착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었단다. 빵을 만들 때 제일 적은 빵에다가 넣었단다. 너는 다른 아이들이 다 골라 갖고 남은 것 제일 적은 것을 항상 가져가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다가 은화를 넣은 것이란다. 그건 너의 것이다. 그랬답니다. 사람들도 감사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더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이에게 축복하십니다. 이왕 감사하는데 축복 받는 감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삶에 활력을 주십니다. 감사해보세요. 나의 삶이 행복입니다. 왜 만족하기에 감사가 나옵니다. 불만이 불평을 만들어 냅니다. 불평은 불행입니다. 가정에도 감사 충만 교회생활에서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감사하고 내가 행복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팀의 명투수 토미 라소다가 어렸을 때 그의 집안은 매우 어려웠답니다.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는 항상 웃으면서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 번 듣다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버지에게 투덜대며 말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에요. 아빠는 채석장에서 트럭을 몰고 고되게 살고 엄마는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시고 우리 5형제는 먹고 입어야 할 것이 넉넉하지 못해서 어려운 형편인데 무엇이 그리 행복하다는 겁니까? 그때 라소다의 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얘야 알고 싶으냐 나는 빈털털이였는데 내게 지금 멋진 아내와 다섯 명의 착한 아이들이 있고 가꿔야 할 집도 있고 고물이지만 몰고 다닐 수 있는 차까지 있지 않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야. 얘야. 네게 웃음이 없다면 내 웃음을 내게 빌려 가거라.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는 게 아니라 가진 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쁨으로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감사하지 못하나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무엇을 보고 말하는 겁니까?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한 것을 찾아서 중심으로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복입니다. 은혜를 받았어도 은혜를 은혜로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사입니다. 아버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들 목사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얼마동안 기다리니까 아들 목사가 돌아옵니다. 그는 아버지 목사에게 아버지 오늘 저는 너무나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늘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충돌하였는데 제가 탄 차는 완전히 폐차시킬 만큼 망가질 정도로 큰 사고가 났는데 나는 조금만 다치고 무사하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 아버지 하는 말씀은 그래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생겼다. 아버지는 무슨 사고라도 있었습니까? 아니야 나는 자동차를 타고 오는데 너같이 충돌하지도 않고 뒤집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동차도 여전히 다친 데가 없으니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다 그럽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그것이 해결되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다가 기도하여 나음을 얻었다. 그것이 감사하다고 하는 것 사실 감사할 일입니다만 그러한 암에 걸리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우리같이 복 받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살기 좋은 시대가 언제 있었습니까?

나이가 많으신 노인이 먼 산을 바라보면서 억울하다 참으로 억울한지고 그 말을 듣고 아들이 아버지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렇게 좋은 세상을 내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다. 내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좋았을 것인데 그러더랍니다. 옛날에 임금이라도 우리같이 좋은 것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겨울에 수박을 어떻게 먹습니까? 진시황이 잘 먹고 잘입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기껏해야 수레를 타고 다녔고 중국밖에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도 타보고 외국 구석구석을 다 다니면서 구경하고 삽니다. 우리는 진시황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지그 지글러(Zig Zigier)라는 사람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책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을 저술한 사람입니다. 그가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 자서전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딱 한 마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혼자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말씀과 천사가 나를 돌보셨다. 또한 가족들에 대하여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그 이웃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감사하고 감사 외에 다른 말이 없다.”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철이 드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죽을 때에 철이 드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철이 들면 감사함을 알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일본의 그리스도인인 우찌무라 간조(내촌감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심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아니하시고 저주되는 삶이 있습니다. 첫째도 아무리 말해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믿어지는 것만으로도 복이 됩니다. 아멘 다음은 성경을 읽고 요절을 외어도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음성으로 들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은 저주받은 사람이랍니다. 설교를 들을 때 주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저주받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한해동안 나를 지켜주신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감사할 때에 진정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감사한일이 있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가운데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감사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할 일을 찾아서 감사하는 이들입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때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2. 진정으로 감사하려면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도 라는 말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나에게 좋지 못한 조건이 생겼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도 감사는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생각 없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속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고난이 왔습니까?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리차드 법브란트 라는 목사님이 옥중에서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분이 옥중에서 겪은 실화를 글로 썼습니다.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이 옥중에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석방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제 조용하게 살리라 결심하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농사하는 중에 기도할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온전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를 더 온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 옵니다. 너는 온전하게 되기 위하여 다시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느냐?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다른 것은 몰라도 감옥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것만은 제발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그렇다면 온전해지기를 구하지 말라. 그때부터 자나깨나 그 음성이 들립니다. 온전해지려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라 내적으로 갈등과 고뇌를 느끼던 그가 결국은 항복하였습니다. 하나님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나를 온전하게 하옵소서. 그때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이젠 살았다 싶은데 비밀 경찰이 찾아와 그를 체포해 갑니다. 그는 햇빛도 없고 굴욕을 당하는 독방에 갇혀있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것도 없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감방 벽에 금이 나서 틈새로 상대방과 대화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오셨어요. 이렇게 묻는데 자신과 같은 이름을 댑니다. 깜짝 놀라 이름이 뭐라구요. 계속 물었더니 알고 보니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그때 그 농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부자로 하여금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들아 우리 부자는 이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자 둘이서 감사의 기도를 열심히 드렸답니다. 이것이 구 소련공산당치하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좋은 형편에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고난 중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감사를 받으십니다.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고난 뒤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어려워도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20세기 위대한 여성 두 사람을 말한다면 크로스비와 헬렌 켈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둘 다 장애인이라는 겁니다. 크로스비는 출생한지 6주밖에 안되었을 때 안질을 앓았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찬송가를 6,000곡의 작품을 썼습니다. 놀라운 것은 구절구절마다 감사의 글들입니다. 불행하다고 어렵다고 감사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으면 로마서 8:28절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일을 밝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따금 데모를 합니다. 잘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입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리같이 먹고 입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북쪽으로 얼마가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렵다는 이 나라도 오고 싶어 난리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불만이 많습니까? 우리의 불행은 경제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정치가 잘못되는 것만도 아닙니다. 만족이 없고 고마운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자기나라를 순찰하는 중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는 오두막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것과 그리스도로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왕은 기도소리가 진지하여 도대체 무엇이 그 가난한 집으로 하여금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을까? 알아보기 위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 주인은 점심식사를 위하여 빵 한 조각을 놓고 그처럼 하나님께 기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생각해보고 잘될 때에는 더 잘하는 사람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의 표현으로 예배를 드리고 귀한 헌금을 드립니다. 우리의 형편은 여의치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마치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감사에는 절대축복이 보장됩니다.

3. 진정한 감사는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일이란 억지로 해도 복됩니다. 그러나 자원하면 더 좋습니다. 기쁨으로 하면 의미가 있습니다.
왜 기쁨으로 감사하게 됩니까? 감사하는 우리들이 특권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은혜를 알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 허무감을 느끼게 됩니까?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입니다.(시 50:23)
우리의 감사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돈을 주어도 기쁩니다. 이것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럼으로 감사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예배가 예배답지 못하다면 잘못된 예배라면 감사 역시 그러합니다. 감사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할 때 1. 감사하기에 감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 범사에 조건 없이 감사하여야 합니다.
3. 기쁨으로 감사하여 약속된 놀라운 축복을 받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백장흠 목사 (한우리교회)


 (2005-06-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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