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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의 덕 (잠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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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1977년 새해 첫 번 삼일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계속해서 잠언을 강해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번 말씀드린 대로 잠언 10장에서 22장까지의 그 내용의 통일성이 전연 없이 여러 잠언들로 모아 놓았기 때문에 한절 한절 읽어 내려가며 강해하기 보다는 본문 가운데서 주제 하나를 찾아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잠언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겸해 읽어가며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은 새해 첫 번으로 맞이한 기도회 시간에 우리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덕 가운데서 하나인 겸손의 덕에 대해서 생각하고 같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하였습니다.
13장 10절에도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15장 3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6장 5절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16장 18-19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며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탈취물을 함께 하며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18장 12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21장 4절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29장 23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명예를 얻으리라”

그 밖에도 성경에는 겸손에 대한 권면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미가서 6장 8절에도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실 때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하였고, 마태복음 11장 28절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기독교의 윤리면을 취급한 로마서 12장에 제일 먼저 있는 말씀도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즉 겸손한 생각을 품으라는 말이지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도 3장까지는 교리편이고 4장부터는 기독교의 윤리에 대한 교훈인데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같은 권면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제일 먼저 가르치는 최고의 덕은 겸손입니다.

옛날부터 우리 동양에서는 세 가지 덕을 말했는데 지, 인, 용, 즉 지혜롭고 어질고 용기있는 것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특히 헬라의 윤리 사상을 보면 여기에다 절제를 더해서 네 가지 덕을 말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의 윤리 사상에서는 겸손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제일 먼저 겸손의 덕을 가장 귀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겸손의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한 열흘 전에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지켰습니다마는 예수님께서 즉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사실 자체가 겸손이요, 예수님의 생활 자체가 겸손에 대한 산 교훈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도 예수님 친히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종이 하는 일) 겸손의 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8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고 할 것이면 제일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 말씀처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즉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래서 전에 어떤 사람이 어거스틴에게 가서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큰 덕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어거스틴의 대답이 “첫째는 겸손이지요. 그리고 둘째도 겸손이지요. 그리고 셋째도 겸손이지요.”하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겸손하셨으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까?

첫째는 주님이 겸손하셨으므로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6장 16절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전에 파사 나라의 재상 하만이 교만해서 유대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를 잘 안한다고 그 사람과 그 가족, 나아가서는 온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된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교만한 자의 마지막이 그렇게 됩니다. 왜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교만해서 자기 궁전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지 궁중을 내려다보며 “내 능력과 내 지혜로 이 모든 성을 건설하였다”고 호언장담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안되어서 느부갓네살왕이 정신이 나가서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들에 나가서 소처럼 풀을 먹고 그 머리털이 독수리 머리털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전에 벨사살왕이 교만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쓰던 거룩한 기명을 내다가 술을 부러 마셨습니다. 천여 명의 고관대작들을 불러다가 연회를 하며 먹고 마셨습니다. 그날 저녁 메데와 파사의 연합군이 쳐들어와 벨사살왕은 죽고 온 나라는 망하였습니다. 왜요? 결국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에 불란서의 나폴레옹이 얼마나 교만하였습니까? 사전에서 불가능이란 단어를 빼라고 큰소리 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독일의 히틀러가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일본의 동조가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을 우리가 잘 압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대적하시는데 누가 설 수 있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까 우리가 읽은 잠언 16장 18절에는 “교만은 패망이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하였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입니다. 교만하므로 많은 다른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시편 101편 5절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교만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어떤 이는 자기가 잘생겼다고 교만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사업을 잘 한다고 교만해 합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예수 잘 믿는다고 자기 신앙이 제일 좋다고 교만합니다.

첫째, 영적인 교만입니다. 이거 무서운 죄입니다. 이사야 14장 12-15절을 보세요.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기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여기 계명성이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리로다’ 한 말이 다섯 번씩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 위에 오르리라” 이것이 영적 교만입니다. 영적 교만은 우주의 모든 죄 가운데 첫 번째 죄입니다.

영적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보다도 자기 자신의 덕을 더 내세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바리새인의 영적인 교만을 하나님은 물리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롭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있는 것으로 자만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면 모두가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비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거 매우 위험합니다. 말하자면 신앙의 교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이단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영적으로 교만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로 시간을 보냅니다.

지적인 교만 역시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2절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배워서 그 방면에 아는 것이 많아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뭐 조금 아는 사람이 소리가 대단히 요란합니다. 그래서 잠언 26장 1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는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교만은 물질적 교만입니다. 돈 많아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재물 얻을 능력을 누가 주셨어요? 하나님이 주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교만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시편 62편 10절에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심치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소유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듯이 겸손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모입니다. 병은 비어야 기름을 넣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겸손히 빈 마음에라야 성령의 기름을 부어 넣을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가 얼마나 겸손하였습니까! “나는 죄중에 괴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다” 이와 같은 바울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은혜 받을수록 겸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랑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고집을 너무 세우지 아니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불평, 원망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어다 가나 봉사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로마서 8:28)
겸손한 사람은 늘 마음이 평안합니다.

자 여러분! 새해가 시작되는 신년 벽두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교만합니다” 고백할 때 겸손해질 수가 있습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다음 회개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 대적하십니다. 금년, 겸손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기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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