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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 (잠 13: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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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을 두려워하는 자(잠 13:13-25)-박조준 목사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잠언 13장 13절을 다시 한 번 읽읍시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잠언 19장 16절에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민수기 15장 31절에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하였습니다.

역대하 36장 16절에서 20절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하며 멸시하여 그 선지자를 욕되게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이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을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에 대소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에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사무엘상 2장 3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요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또한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을 경멸하십니다.

전에 실로에 있는 성막에 하나님의 단을 섬기는 엘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는데 이들도 역시 제사장으로서 아버지와 같이 한 제단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알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생활 영위를 위한 하나님의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래서는 그 때 성막에 가져오는 제물은 하나님을 드리기 위해서 였는데 가만 봐 가지고 좋은 것, 먹음직한 것은 자기들이 다 먹어 버리고 변변치 않은 것만 제물로 바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더러운 일을 하는 등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한 일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엘리의 가정이 멸망하여 노인이 없을 것과 영영히 제단에서 손을 떼실 것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 뿐만 아니라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사실 그대로 다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울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수가 약 4,000가량 되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군대는 겁에 질리고 맥이 풀려서 어떻게 사기를 돋우어 보려고 생각하던 끝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싸우면 나을 것 같아서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진 가운데 두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중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더욱 사기를 돋우어 이스라엘과 대전하게 될 때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던 사람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엘리는 그 때 나이 92살로 연로해서 움직이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도 전장에 나아간 아들들이 소식을 기다리노라고 길가에 의자를 놓고 있었는데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달려오면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함께 죽임을 당했고 여호와의 언약궤 마저 빼앗겼다’고 소식을 전하자 이 말을 들은 엘리는 그만 의자에서 놀래서 넘어져 떨어지면서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었는데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정신없이 해산을 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시하십니다. 이런 일은 비단 엘리의 가정 뿐만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우리는 이런 일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룹니다. 구약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유명한 사건 하나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여호수아 장군이 지휘하에 여리고 성을 처음으로 점령하려 하는 때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였습니다. 그 성을 함락시키는 법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하여 주시는 말씀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게 되면 “너희가 많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는 상상도 구경도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을 너희가 하나도 개인적으로 가지지 말라” 거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군인들이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면 전쟁을 바로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모든 물건은 다 나 하나님의 것이니 너희는 절대로 손대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군대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하나님이 하시라는대로 해서 별 어려움 없이 정복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있는 성이 아이성인데 미리 정탐하는 사람을 보내서 사정과 형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하는 말이 ‘아이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우 작은 성입니다. 많은 군대를 다 동원할 것은 없고 장군님께서 직접 지휘하실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저 의군 2,3천명 정도만 출전시키면 무난히 함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그 말대로 3천명쯤 보내서 아이성을 함락시키려고 갔었는데 천만뜻밖에 이스라엘 군대가 36명이나 전사하고 아이성 사람들에게 쫓겨 스바림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 장군도 너무도 기가 막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이 궤 앞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슬프도소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어서 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멸망시키려 하십니까? 우리가 차라리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기에 살았다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이제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하는 우리 군대가 이런 꼴을 당해 놓았으니 저 가나안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일제히 일어나 우리를 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이름이 아주 세상에서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려니와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행하여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어찌해서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말을 어겼어. 내게 바치라는 것을 바치지 아니하고 개인의 것을 삼으려고 도둑했어. 그래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않았어. 그래서 아이 사람들에게 쫓겨난 거야. 너희 가운데서 이제라도 그 죄를 제하지 아니하면 네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할거야.” 이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온 백성을 다 모아 놓고 이 사실을 알린 후 범인을 찾았더니 아간이란 사람이 장본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과 금과 외투가 너무 탐이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범죄하여 결국 전 민족이 수난을 겪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간과 그 가족은 아골 골짜기에 돌로 쳐죽인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길이 형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패망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후로 모셔 드려서 바알 신을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숭배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후에 예후의 반란으로 이세벨이 창문으로 던지워 죽어 버리고 아합왕의 아들 70명이 하루아침에 죽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던 하나님께서 그를 경멸히 여기십니다. 사도행전 12장 1절에 보면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행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하였습니다. 헤롯왕은 멸시하여 주의 종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12장 23절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였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경멸히 여겨서 헤롯은 충(&34411;)이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결국은 패망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존중히 여겨 창성했지마는 하나님을 멸시할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역사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던 나치스, 일본 군국주의, 파쇼의 종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따라서 오늘 하나님을 멸시하던 공산주의 국가가 어떻게 될 것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또한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보세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히 여겼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랐습니다. 고행을 떠나라 하실 때 무조건 떠났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늙어서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대 모리아 산에(아무런 질문도 하지 아니하고)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가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여 그의 마음이 창대케 하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습니까? 애매하게 형들의 시기로 인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어도 조금도 원망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는데 보디발의 아내의 큰 유혹을 당하였습니다. 사람으로는, 특히 젊은 사람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한 번만 아니고 날마다 당했습니다. 더구나 상관의 아내되는 사람의 위력으로 압력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떻게 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겠습니까? 사람은 혹시 내가 범죄하는 것을 보지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보시는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길 수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요셉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보디발의 아내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어떻게 어려움을 당하리라는 사실도 짐작하지 못한 요셉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총명한 사람이요 지혜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육신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한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는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감옥까지 갔지마는 내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맡겼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요셉을 하나님이 또한 요셉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우리가 다윗왕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의 삶에서 명암 양면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생활을 했습니까? 그래서 비록 어릴 때이지마는 하나님을 택하심을 받았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린 소년 목동이었지마는 다윗은 온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 떠는 블레셋 군대 장군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은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온전히 하나님께만 의탁하고 나아갈 때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존중히 여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여러 가지 교만한 생각으로 범죄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무엘하 12장 7절에 보면 나단 선지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하시면서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에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실 다윗의 가정에서 늘 여러 가지 불상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때 그를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멸시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경멸히 여기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연히 그의 말씀을 존중히 여깁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법칙과 지침이 되는 신구약 성경을 존중히 여겨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 하는 때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고 하면서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잠언 14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바꿔 말하면 여호와을 경외하며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사람은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4장 16절에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빙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악에서 빨리 떠납니다. 잠언 14장 26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이 형통하시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쓰세요. 우리가 두려워할 이는 세상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람 두려워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해서 그 말씀을 따라 살려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아니 나아가서 우리 대한민국이 말씀 두려워하는 나라 되어서 하나님의 상급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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