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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 (시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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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1:8)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 (97.1.1.염광 신년예배 설교)

새해 아침입니다. 우리는 또 한 번 일년이라는 시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이 한 해를 시편기자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줄로 압니다.

1. 하나님의 안전한 안내
시인은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이 시를 적고 있습니다. '내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1)고 말했을 때 시인은 길을 떠나기 직전 자신이 걸어가야 할 여행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만 하는 새해는 사실상 시인이 가야만 했던 여행길보다 훨씬 더 알려지지 않은 여정입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가려는 새해는 바로 미지의 길입니다. 미지의 길을 향해 떠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슨 사건이 터질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위험의 한가운데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면 우리는 벌써 평강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확실한 안내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갈 때 비록 미지의 길을 갈지라도 가장 확실한 안내자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나는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차를 산지 얼마 안돼서 처음으로 네델란드의 암스텔담 국제공항에 손님을 맞이하러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초보운전자였습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을 초행길이었습니다. 모든 교통표지판은 이제껏 보아오던 글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여행길은 200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었습니다. 아침에 도착하는 손님이었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을 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밖에 나와 보니 안개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마음 속에 깊은 한숨이 울어 나왔습니다. 괜히 마중 나간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불안했던지 '주여'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이제 막 두려운 마음으로 출발하려는데 누군가가 '목사님'하고 부릅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저를 무척 아끼시는 집사님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내가 암스텔담을 향해 새벽길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동행하시겠다고 오셨던 것입니다. 집사님은 암스텔담 공항을 여러차례 다녀온 분이었습니다. 확실한 안내자였던 것입니다. 그때 순식간에 나의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은 이보다도 더 확실한 안내자이십니다. 우리가 가야만 하는 새해도 우리 혼자서 가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면 안전합니다. 시인은 이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출입을 지키시리로다' (8). 출입을 지키신다는 말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앉는 것과 일어서는 것을 아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옵니다' (시 139:1-2).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깨는 것과 자는 것을 붙드십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붙드심이로다' (시 3:5).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가십시오. 혼자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없이 혼자 가시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가시면 안전합니다.

2. 우리의 과감한 도전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 시작과 나중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작 뿐 아니라 마지막도 잘해야 합니다. 시작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을 잘못하게 되면 나중에 골치아픈 일들이 아주 많이 생깁니다. 우리 나라는 처음부터 도시건설을 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개발지나 신도시가 아니면 어디나 구획이며, 도로며, 가옥이 엉망진창으로 서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도시학자들은 무어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 Martin Pawley라는 도시학자는 1971년에 저술한 Architecture versus Housing (한역:근대주거이론의 위기)에서 파괴는 도시계획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잘못 시작된 도시는 파괴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네로와 같은 생각이지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신앙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해를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시작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신앙적으로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고 맙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시작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종결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작을 잘했지만 마침을 잘 못하거나, 시작을 잘못했지만 마침을 잘했거나 하는 것은 둘 다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달려있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은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I.Q. (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몇몇 독일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E.Q. (Emotion Quotient 감성지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S.Q. (Spirit Quotient 영성지수)라고 생각합니다.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새해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십시오.

현실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영원을 맛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출입을 지금도 지키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영원히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동행하심 속에서 시간에 살지만 영원을 맛보며 삽니다. 현세에서 영원을 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사람은 영원에서의 보호를 바라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첫째로 현실을 이깁니다. 영원을 확보한 자들이기에 신앙인들은 이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면서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원으로 현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고난을 헤쳐 나갈 능력을 지닙니다. 둘째로 미래를 세웁니다. 신앙인들은 영원을 확보한 자들이기에 이 시대를 살면서 항상 미래를 창조해나갑니다. 미래를 향하여 도전합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전통에 매어버리거나 현재의 습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원을 확보한 신앙인은 미래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항상 도약합니다. 신앙의 도약. 도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비약하는 사람이 되자. 새해는 비약하는 해가 되도록 합시다. 신앙의 비약을 맛봅시다.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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