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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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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불안과 위험 가운데서 사는 우리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1. 순례의 산들
우리가 읽고 있는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일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22미터가 되는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주위에는 그보다 높은 산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려면 많은 산들을 넘어야 만 했습니다. 높은 산들. 이것은 위험의 근원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앞에 펼쳐져 있는 높은 산들을 바라보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앞에 나타나게 될 높은 산들을 생각하면 순례의 길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가는 신앙의 순례에도 이와 같은 위험한 산들이 등장합니다. 정치적인 불신이란 것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경제적인 불안이란 것도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사회는 환경오염, 자원부족, 연료고갈, 인성타락, 청소년범죄, 사기와 폭력, 전쟁위협 등등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앙인들이 가는 신앙의 여정에는 높고 험준한 위험의 산들이 셀 수 없이 많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의 순례의 길에 도움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마도 시편기자가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던져야 할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두려움의 산들
위험한 산들 앞에서 차라리 신앙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아니면 산들의 위험을 피하게 해줄 어떤 도움을 구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낮의 해' (6)와 '밤의 달' (6)을 숭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만물가운데 힘이 있어 보이는 것들을 섬기는 종교적인 행위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소위 자연숭배입니다. 하지만 만물은 우리를 인생의 위험에서 건져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만물은 단지 자신에게 정해진 위치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위험한 산들 앞에 서게 되면 그것을 이겨나갈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개발한 도구들은 위험한 산들 앞에서는 무력해지고 맙니다. 우리가 발견한 도움이란 것은 누구 하나가 소유하면 다른 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려고 했던 애굽이 상한 갈대 지팡이로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처럼 (참조. 왕하 18:21; 사 36:6), 사람이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결국 자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도우심
우리를 위한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산들을 넘어 계시는 분일 뿐 만 아니라 산들을 만드신 천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위험한 산들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1). 이것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산들이 앞에 놓여있는 순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산을 하나씩 넘을수록 우리의 신앙은 성장합니다. 사랑 성도들이여, 산을 하나 넘으면 우리 앞에는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이미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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