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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짓말 하지 말라 (잠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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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지 말라(잠언 19:1-9)

본문 5절과 9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5절).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9절)

잠언 25장 18절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잠언 24장 28절 “너는 까닭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잠언 12장 17절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

이미 생각한 잠언 6장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가 있는데 6장 19절에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4장 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같은 장 25절에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출애굽기 20장 16절 십계명 중 아홉 번째 계명이 “네 이웃을 해 하려고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하였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계명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의사를 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것인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언어가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언어가 없다면 오늘과 같은 문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이 언어를 잘 못씀으로 인해서 입는 피해도 여간 많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흔히 말을 많이 하고 특히 말 중에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탓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보통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남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마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흔히 남의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런 잘못을 범하면서도 죄책을 느끼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어느 경험 많으신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까 자기 일생 경험 중에 여러 가지 죄를 자복하는 가운데 다른 죄는 자복하는 이가 많지마는 거짓말한 것, 남의 허물을 이야기한 것을 자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말을 하는 것, 남의 흉을 보는 것은 죄로 생각하지 못해서 그래요.

오늘 본문에 뭐랬어요?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한다고,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더구나 거짓 증거 하는 것은 계명을 범하는 거예요. 열 가지 계명 중 어느 것은 중하고 어느 것은 경한 것이 없어요. 하나라도 범하면 계명을 범한 거예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도 중요한 것입니다. 거짓 증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증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공적 증거요, 다른 하나는 사적 증거입니다.

공적 증거에서 우리는 거짓 증거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국가의 법정에서 증거할 때 감정이나 악의로 혹은 뇌물을 받고 거짓 증거 함으로 이웃을 해친 예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애굽에 있는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 증거로써 요셉을 고소해서 죄없는 청년이 감옥에서 고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거짓 증인 두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하여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예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말하면 예수님도 거짓 증거에 의해서 정죄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스데반도 거짓 증거에 의해서 순교한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법정에서 거짓 증거 하는 것은 인간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법정이란 실상 하나님의 공의를 인간사회에서 대행하는 기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면 3권이 엄연히 분립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사법 기관이 행정부의 시녀처럼 되어 버려 정치적인 분풀이하는 곳으로 전락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큰 비극입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합니다. 옛날 로마의 원시사회에서는 거짓 증인인 것이 판별되면 낭떠러지에 데리고 가서 떨어져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거짓 증인은 코와 귀를 잘랐다고 합니다. 공적 증거가 진실해야 공정한 재판을 할 수가 있고 국가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해야 국가의 질서와 기강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적 증거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내가 증인대 앞에 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주 사회는 소위 여론의 법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에 대한 여론이 국가 법정의 판결 못지 않게 그의 명예나 신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분해서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사담 석상에서 남에 대해서 중상하거나 악선전하거나 시비하는 것은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기억하고 삼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침묵이 거짓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풍설이 돌아가는데 자기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아니하고 침묵을 지키면 이것도 결국 공범죄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헬라 속담에 “혀는 뼈 하나 없고 아주 약하고 작지만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터어키 속담엔 “혀는 검보다 더 많은 사람은 죽인다.”
파사 속담엔 “혀가 길어지면 생명이 짧아진다.”
아라비아 속담엔 “네 혀가 네 목을 베지 못하게 하라.”
“칼은 쓸수록 더 무디어지나 혀는 쓸수록 더 날카로워 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서 진찰 받을 때 의사들이 혀를 보자고 합니다. 아마 혀를 보고 여러 가지 병을 알아내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이따금 하나님 앞에 혀를 내밀고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혀는 어떠합니까? 병나지 않았습니까? 그 심령 상태를 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귀는 두 개를 만드시고 입은 하나를 만드셨어요. 무슨 뜻입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듣는 것 보다는 말을 많이 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 말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할 수 있는 대로 말을 적게 하여야 실수가 적습니다.

더구나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자기도 확실히 모르는 풍설을 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 거짓말인데 내가 하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출애굽기 23장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무족언(無足言)이 천리행(千里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풍설은 눈사람 같아서 굴러가면 굴러 갈수록 커집니다.

거짓 화제를 만드는 사람도 나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나쁩니다. 허무맹랑한 풍설을 함부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유언비어를 함부로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비판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너희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의 눈의 티를 빼고자 하느냐?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빼어 놓고 밝히 보면서 다른 형제들의 티를 뽑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흔히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은 보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편지할 때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라디아서 6:1)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사람의 잘못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다른 이에게 옮기지 말고 조용히 그 사람과 마주 앉아서 바로잡아 주고 자신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권면입니다. 남의 결점을 잘 말하는 사람의 배후에는 흔히 심리적으로 말해서 열등감이 있는 사람, 시기심이 있는 사람, 교만한 마음이 잠재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열심히 듣기 좋아하는 것도 이런 사람과 공범자입니다. 가만히 보세요. 다른 말 할 때는 졸다가도 어느 누구가 남의 추문을 말하면 정신을 가다듬고 듣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전에 성 어거스틴은 자기가 주재하는 수도원 식당에 이런 표어를 써 붙였었다고 합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자는 이 식탁이 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식당에서는 식사하면서 절대로 남의 이야기는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영락 교회에서는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친구와 같이 식탁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남의 허물을 말하기 쉽습니다. 허물을 들어내는 사람보다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전에 노아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말년에 한 번 크게 실수를 했습니다 포도주를 많이 먹고 취해서 벗은 몸으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함이라는 아들이 그 광경을 보고 동생들에게 그 사실을 일렀습니다. 그때 셈과 야벳은 그 말을 듣고 홋 이불을 가지고 가서 뒷걸음으로 들어가 벗은 아버지의 몸을 덮어 주었습니다. 누가 복을 받았습니까? 아버지의 허물을 이야기한 함은 저주를 받고 허물을 덮어 준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나 진실하고 정직한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것을 하기에 앞서 말부터 옳아야 할 것입니다.

잠언 12장 19절에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하였습니다.

신명기 32장 4절에는 “하나님은 진실 무방하시다” 하였고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마귀 자식입니까? 진실을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될 것이고요, 거짓을 말하면 마귀 자식될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라’고 본문은 경고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가장 엄한 벌이 누구에게 내렸는지 아십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에게 내렸습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가산을 팔아 절반을 가지고 와서는 판 값이 전부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가산을 팔아 절반을 가지고 와서는 판 값이 전부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얼른 생각할 때 너무 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얼마나 미워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경고는 오고 오는 시대들에게 무서운 경고가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읽을 때 들어보세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거짓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특별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 전도사, 구역장, 권사, 권찰의 책임을 지신 여러분, 여러 집을 찾아 심방 하시는 분들 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이집 저집 다니면서 말하면 큰 실수를 범합니다. 말을 조심하지 않아서 교회가 손해를 보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직업 가운데는 신문기자, 언론인들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된 언사로 말미암아 인격과 명예, 재산에 손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남의 허물을 보도하기 쉽습니다. 특별히 정치인들이 선거 때에 과장해서 선전하게 되면 더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을 과장되게 하면 그것은 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손해인 것입니다. 국민은 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면에서 일하는 분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청년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노래를 부릅니다. 이때 청년 이사야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입술이 더러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로다 나여! 나는 입술이 더러운 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천사 하나가 제단에서 절절 붙는 숯불을 가져다가 입술에 대어 주면서 ‘네 죄가 씻음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입술이 성령의 불로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입술이 거듭나야 합니다. 입술이 청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깨끗해지면 상한 마음을 고쳐 줄 수 있고, 약한 사람을 튼튼하게 할 수 있고, 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이룩할 수가 있습니다. 이 깨끗한 입술로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의 거짓으로 가득한 이 입술을 성령의 불로 세례 받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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