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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를 사고 팔지 말라 (잠 23: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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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사고 팔지 말라(잠언 23:19-26)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로 그리할지니라.”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세계는 무대와 같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와 같다”고 하였는데 지혜자 솔로몬은 “세계는 시장과 같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사람과 같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의 장사하는 것과 비슷하고 반성하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계산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우리의 일생을 돌이켜 본다면 그것은 일생을 통하여 장사한 것을 총결산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실 인간 생활은 장사하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좋은 것은 사고 나쁜 것은 팝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반대로 좋은 것은 팔고 나쁜 것은 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진리는 사고 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귀한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 크고 값진 진주를 만나면 집에 돌아가서 모든 것을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고.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신 크고 값진 진주는 진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사실 이 말은 전에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은 물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는데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때 빌라도가 이상한 눈초리로 “진리가 무엇이냐? 하였습니다(요 18:38). 진리란 한자의 뜻대로 하면 ‘참된 이치’ ‘참된 진리’란 뜻입니다. 그저 쉽게 말하면 진리란 ‘참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저 산정 호수나 청평댐 같은데 보면 그 넓은 호수에 아름답게 물든 산의 그림자가 그대로 비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산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습니다. 요사이는 천연색 사진이 발달해서 아주 실물이나 다름없이 색깔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사진은 실물의 그림자 뿐이고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이란 말에는 실상이란 뜻이 있습니다. 거짓이나 허위, 가식이나 가짜의 정반대가 진리입니다. 물론 모양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내용이 아주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 이리가 양의 가죽을 썼다고 양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의 눈으로 세상의 것을 보면 한 서너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참입니다. 실상입니다. 진짜입니다. 그리고 진리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진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아주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가령 상품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기 양복감이 있는데 순모직, 화학사와 모직의 혼방 그리고 화학사로 된 것이 있습니다. 얼른 보아서는 누구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금도 그렇습니다. 사상도 그렇습니다. 정치도 예술도 다 그렇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참된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아예 사교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는데 여기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진리요’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은 영계에 있어서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영계에 있어서 참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약이 그림자라고 하면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교훈이 실현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란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리라고 하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의 실재이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친히 보여주기 위해서 진리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계셔서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활을 볼 수 있고 그의 성품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그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그대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자신이 진리요, 그 성품이 진리요, 그 사랑이 진리입니다. 오직 영계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참된 실체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진리를 사라고 했는데 어떻게 진리를 살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가만히 보면 거짓된 주의, 사상, 풍속, 유행, 유혹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로역정에 나오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허화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모든 거짓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몇 주일 전에 말씀 생각한대로 이사야의 말씀이 옳습니다. 목마른 인생들이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하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 것을 따라가다가 망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 행로의 길가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진리를 사라”는 말씀은 얼마나 적절하고 필요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즉 모든 방면에서 진리를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방면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참’을 찾아서 참되게 살고 진리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아무래도 참이신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진리의 근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먼저 소유해야 합니다.

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바로 살기를 원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 되는대로 거짓 따라 사는 사람에 비하면 어느 정도 나을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따라 사는 사람이 구부러진 길로 간다면 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비교적 바른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줄을 잘 긋는 분이라고 해도 자기 혼자서 직선을 그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좀 찌그러집니다. 그러나 줄을 잘 그을 줄 모르는 사람도 잘 그을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직선으로 된 자를 가지고 그 자에 의해서 그 자를 따라서 금을 그으면 직선이 됩니다. 우리의 사상이나 수양으로 어느 정도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면 의롭다(곧다)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 수 있습니까?

먼저 기억할 것은 진리를 사는 것은 돈으로, 값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돈이면 무엇이나 살 수 있고 돈이면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야’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물론 돈이 귀합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것, 진리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살 수 있습니까? 조금 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셨지만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어떻게 했어요?

집에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려고 하면 먼저 내게 있던 것은 다 팔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 참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던 것, 내가 사랑하던 것, 말하자면 세상에 붙은 것, 성경 말씀대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자랑, 이생의 자랑, 세상의 좋지 않은 습관, 이런 것 먼저 다 팔아야 합니다. 없애 버려야 합니다. 즉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빈 마음을 가져야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를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써 먼저 사야 합니다. 지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사야 합니다. 즉 체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손과 발로 사야 합니다. 생활을 통해서 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귀한 진리를 여러분이 다시 사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머리에, 마음에, 손과 발에 다 소유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오늘 본문에 “진리를 샀으면 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샀다가 팔아 버리는 사람도 혹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전에 에서 같은 사람을 보세요. 그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당장 배고픈 생각만 하였지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귀한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습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버렸습니다. 돈 몇십만원에 예수를 팔아서는 안됩니다.

부올의 아들 발락은 선지자로서 많은 선물에 팔려서 따라가다가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선물 준다고 따라 가다가 나귀에게 책망 받듯이 안 믿는 사람에게 부끄러움 당하지 맙시다. 전에 게바같은 사람은 세상을 따라가느라고 예수를 팔았습니다. 세상 향락, 세상 권세, 세상의 허영, 세상에 속한 것 따라가지 맙시다. 세상의 것은 변합니다. 썩어집니다. 없어집니다. 없어지는 것 위해서 없어지지 아니하는 진리를 팔지 맙시다.

교회의 역사를 자세히 보면 종종 진리이신 예수를 미신으로 파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중고 시대(中古時代)에는 마리아나 성자 숭배가 있었습니다. 유물을 숭배하였습니다(옷조각, 밥그릇, 지팡이 등 이것으로 병을 고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미신입니다). 톨스토이의 글을 보면 헬파정교회에서는 19세기까지 신부들이 믿는 사람의 집에 특히 환자를 심방할 때 제단 위에 놓아 기도한 물병을 들고 다니면서 앓는 사람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태선 집단에서 그와 비슷한 일 하지 않았습니까? 진리를 미신으로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진리를 팔지 맙시다. 미신으로 바꾸지 맙시다.

주후 2세기경에는 몬타누스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보혜사 성령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짓 해석으로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나라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복음을 잘못 해석해서 진리를 세상의 것과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우리 교회 ‘만남지’에 사이비 종교를 비판하는 난에 기재된 몰몬교를 여러분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몰몬교인들은 2년 동안의 포교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근래 그들이 우리 한국에 집중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약 200명의 자원 포교자들이 자비량으로 와서 청년이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얼른 보면 성경을 이용하기 때문에 현혹되기 쉬운데 사실은 자기 나름대로의 ‘몰몬경’이 있습니다. 소위 통일교에서 성경도 쓰면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원리 강론’이란 책을 가지고 그들의 주장을 거기에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몰몬교도 밖으로 볼 때는 기독교 같은 인상을 주지마는 사실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단입니다. 왜요? 저희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합니다. 하나님도 하나의 피조물로 생각합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영적 어버이가 되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얻는 선물이 아니라 선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상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몰몬교를 창시한 조셉 스미드 2세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몰몬경을 써서 성경 대신 사용하고 있는데 여자 60-70명을 데리고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 조심하지 아니하면 진리를 팔고 거짓을 사기가 쉽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독일 문스터 시를 중심으로 해서 존 오브 라이덴이란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문스터 시에 새 예루살렘을 설립한다고 하면서 누구나 거기에 가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여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여자 16명을 얻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은혜를 색욕거리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계시를 받는다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몇 시간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 이외에 또 다른 무슨 계시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합니까?

물론 이 말은 계시를 받는다는 사실을 무시한 말이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지 이것을 객관화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팔고 세상의 것으로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듣는 대로 어떤 데서는 ‘기도하는 중에 무슨 병이 낫는 것을 보았으니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을 세상 것과 바꾸면 안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병이 나면 낫고 싶은 욕심에서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이 약점을 이용해서 복음을 악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병이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대학에 입학 못하면 누가 책임집니까? 예수 믿으면 병 낫고, 돈 벌고, 출세하고, 대학 입학 잘 하고, 이것이 복음이라면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미신입니다. 미신이 기독교로 탈바꿈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정신차려야겠습니다.

진리를 사고 팔지 맙시다. 우리의 일생은 진리를 사서 내 소유로 만들고 팔지 말고 끝까지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전에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온전히 진리만 사라. 진리 전체를 사라. 진리를 어떤 값을 주고라도 사라. 진리를 산 다음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라.” 진리를 사고 팔지 말아야 합니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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