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3.05.07 14:41

주님을 바라보라 (욥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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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생각한 욥의 신앙 고백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구속자가 살아 계신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처지와 환경에 처한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사업을 크게 하던 분이 정말 어려운 자리에 이르게 되니까 10층 빌딩에서 투신 자살을 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건 배후에 대한 것은 차차 밝혀질 것이지만 그 회장님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1조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매일 이자만도 몇 억을 물어야 하는 처지인데, 사업은 부진하지요, 이자는 밀리게 되지요, 미칠 만도 하고 죽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길에 한 번 눈을 들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바라보았다면 이런 비극의 종말을 고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다른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욥이 당한 어려움 이상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재물이든 자녀이든 그의 건강이든지간에 세상에 나와서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잃었습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그를 동정하기는커녕 비난하고 정죄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이 땅을 내다볼 때 정말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앞길을 꽉 막아 버리고 캄캄하게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욥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소망을 찾고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친구 중에 한 사람인 소발이 한 말입니다. 소발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악인의 상황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악인은 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소발의 눈으로 볼 때는 욥이 악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징벌을 받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욥의 말은 결과적으로 그 친구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2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 생각이 내게 대답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초급함이니라” 했습니다. 소발은 욥의 말이 끝나자마자 생각의 여유도 별로 없이 너무 급하게 말을 꺼내는 것으로 보아 슬기로운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급한 발언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욥은 그 친구들의 분노를 크게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반박하는 말을 참지 못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들게 말해 주지 않았을 때는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욥이 한 말을 책망으로 들었고 그것을 “부끄럽게 하는 책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책망을 욥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발은 계속 악인의 멸망과 파멸을 명확히 알려 주면서 욥이 이런 고투를 당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악인이고 사특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발은 욥이 일반적으로 악한 사람이 받는 보응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사야 3장 11절 말씀에 보아도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도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믿음을 고백하고 경건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악을 행하는 사곡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비참하게 되리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모습을 하였더라도 그 안에 악의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더욱 나쁜 것입니다. 경건을 가장하는 것은 이중으로 범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따르는 형벌도 두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엄히 책망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했습니다. 회칠을 했으니 밖은 얼마나 깨끗합니까? 그러나 속은 더러운 것과 썩은 냄새가 가득합니다. 겉모양보다는 속이 더욱 중요합니다.

며칠 전에 어느 교회의 모임에 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는 10여 년 전에 개척한 교회로 그 지역에서 큰 교회로 자라났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 교회는 반 이상이 예수를 처음 믿는 분들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에 비해서 순수합니다”라고 대견스럽게 자랑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우리 한국 교회에 큰 문제가 있구나.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더 순수하고, 예수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인데 어떻게 기독교의 복음이 이렇게 전달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어디엔가 굉장한 잘못이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은 연수가 높으면 순수성이 잃어질까요? 이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를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전보다 더욱 순수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사랑스러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매끄럽고 자기만 알고 남에 대한 비판이나 하고 입만 놀린다면 이것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관이, 세계관이, 우주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식까지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잘못하면 바리새인처럼 돼 버리기 쉽습니다. 반질반질 닳고 닳으면 큰 일입니다.

악인은 멸망합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높기가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했습니다(5-7절).
시편 37편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이 시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쓴 시입니다. 여기엔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인이 성하는 것을 보고 “불평하여 하지 말며 투기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다윗이 자기 스스로 반성하며 자기 자신의 혈기를 억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마음을 향해서 설교한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부패한 혈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그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시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기 자신에게 설교한 그 설교가 가장 훌륭한 설교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을 한 번 바라보세요. 행악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 땅에서 융성하며 번영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면 다 소유하며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면 다 행하며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스로 뽐내며 자기들 수중에는 세상을 뒤흔들 권력이 주어져 있다고 으스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이미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요, 지금도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일이 있어서는 더욱 안되겠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욥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도 응답하지도 않으시고 나를 원수처럼 대하신다고 생각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을 빈둥거리며 살도록 내버려두고, 저희의 세력을 우세하게 하심으로 세상을 혼란시키며, 의를 위해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맥빠지게 하시지는 않는가 하고 투정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악한 사람들이 꾸며 놓은 계획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고통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불법적인 수단으로 재산을 마구 벌어들이며 저희의 욕망을 마음대로 탐닉하는 자들을 은근히 부러워하기가 쉽고, 바로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노력과 수고가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오히려 세상 사람들, 성경이 말하는 악인을 부러워하는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것을 볼 때 “불평하여 하지 말며 투기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불평과 투기는 그 자체의 형벌을 이미 가지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투기는 우리의 심령을 불안하게 하며 뼈를 썩게 하는 일”이라고 잠언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얼른 볼 때 악인이 아무리 성공하고 형통하는 것 같이 보여도 불평하고 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악인들에게서 저희의 번영을 시기할 만한 하등의 이유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투기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희의 파멸이 문밖에 이르렀고 저희들은 파탄을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무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풀과 같고 푸른 채소가 무성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돼지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받아먹기만 하고 살이 찌는데, 가서 “야, 돼지야 너는 어쩌면 그렇게 축복을 받았니? 날씨가 추워서 걱정이냐? 옷 걱정 있냐? 연탄 걱정 있냐? 먹을 걱정 있냐? 하루 종일 주는 대로 배부르게 먹고 자면 되니, 돼지야, 너는 정말 행복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러분, 돼지에게는 그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살찌고 그러다가 때가 되면 도살장으로 가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운동을 하면 살이 빨리 찌지 않으니까 운동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통속에 가둬 놓고 먹고 살찌게만 합니다. 돼지가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한다고 부러워 할 사람이 있을까요?

곡식과 가라지를 비교해 보세요. 가라지는 곡식보다 얼마나 빨리 자라납니까?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를 뽑아 버립니다.
박 넝쿨이 자라나고 퍼지는 것을 보고 백 년 묵은 소나무가 “너는 어쩌면 그렇게 빨리 자라니? 그러다가 온 세상을 덮어 버리겠구나”하고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할까요? 아닙니다. 소나무는 말할 것입니다. “두고 봐라. 네가 아무리 큰소리치며 세상을 다 덮을 듯이 야단하지만 두고 봐라” 할 것입니다.
이 오래된 소나무는 벌써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에 해마다 호박 넝쿨이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다가 겨울이 되면 다 말라 버리고 마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이런 일이 많습니까?

여러분, 악인의 번영이 이와 같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더 빨리 베어질 것입니다. 저희가 의기 양양한 것은 잠깐이고 저희의 애곡과 비탄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생활과 하나님께 만족한 생활을 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행악자들의 번영을 불평하지 않도록 해 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다면,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그토록 나쁜 일을 하는 그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찌어다.”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에게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종교의 생명은 하나님과 그의 은총, 그의 섭리, 그의 약속에 대하여 믿음으로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과 선을 행하는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배부르고 번성하며 출세할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은 세상적인 것의 풍성함에 있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이 그 가산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것이 부족할 때 하늘의 것을 넘치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는데 이것은 “너는 성실로 식물을 삼을찌어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스스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을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은 악인이 성하는 것을 볼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하시면서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의 안에서 위안을 받아야 합니다. 기쁨의 근원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동시에 특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2절에도 주님께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에게, 그 기쁨의 원인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사람에게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여러분,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의 마음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따라 살며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안내자로 삼아 그의 인도와 지시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복잡해 보이고 절망적이던 상황이 지각밖에 넘치는 좋은 길로 풀려 우리에게 흡족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고 맥이 빠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버리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더니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르시고 우리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우리의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실 것입니다. 잠언 16장 3절에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우리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내가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하는 자세가 아니라 성패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의 행사를 맡긴 사람은 잘 되면 교만하지 아니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잘 안되었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에 합력해서 선을 이뤄 주시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주님의 선하신 섭리에 의해서, 그가 바라시는 대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정하시도록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잘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꼭 믿으시고 하나님께 맡겨 보세요. 다음에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담력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침묵의 덕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용합니다. 떠들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잘 해 주시고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릴 줄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울 때 우리의 심령이 피곤할 때 모든 일을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 분을 생각하십시다. 새로운 인내의 힘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1.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2.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님의 이름 부르고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행악자는 끊어지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그곳을 찾아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꿈같이 지나가나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던 환상처럼 쫓겨가리니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말이 바로 그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염려하지 맙시다. 의인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장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갈 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세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다리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피곤해 지친 사람에게 소생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물과 불 속에서도 그의 백성을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낙심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힘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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