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혜롭게 사는 것 (욥 28:1-28)

첨부 1


오늘 우리가 생각하게 될 욥기 28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것과도,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될 욥기의 나머지 부분과도 아주 다른 분위기의 말씀입니다. 욥은 그의 아픔과 모든 슬픔을 잊고서 마치 철학자나 대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속에는 자연과 도덕 그리고 인생의 철학이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욥이 갑자기 그의 논조를 바꾸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물론 흥미를 위한 것이나 논쟁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악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욥은 어떤 악인들은 형통함 가운데 살고 죽는 반면에 다른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곧 공개적으로 벌을 받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어떤 사람들이 “왜 어느 악인은 이 세상에서 처벌되고 어떤 악인은 처벌되지 않고 평안히 지내다 가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치를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발은 11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지혜의 비밀을 알려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신명기 29장 29절에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이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첫 부분은 이 세상의 재물을 위해 이 세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찾고, 추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며 얼마나 연구하며 얼마나 용기를 무릅쓰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둘째 부분은 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의 가치는 너무 크기 때문에 측정할 수가 없으며 어디에 있는지 그 장소도 비밀이요 하나님 안에 감추인 지혜와 인간의 자손에게 나타난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자연의 깊이를 얼마나 찾아내어 그것의 풍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독창적이고 근면한 탐구에 의해서 많은 지식과 재물을 그들이 얼마나 소유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왜 어떤 악인은 흥하고 다른 악인들은 벌을 받는지 그리고 왜 어떤 선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다른 선한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환난을 당하는지 사람의 지혜로써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땅의 동굴은 발견될 수 있어도 하늘의 뜻은 우리로서는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재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수고를 합니까? 요사이 사업을 하는 데 경쟁이란 말이 지나쳐 전쟁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네가 망하고 내가 흥하느냐, 아니면 내가 죽고 네가 사느냐 하는 형편입니다.
지난 시간에 본대로 은을 티끌같이 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잠 27:16). 이제 그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은이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그것이 얻어졌는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악인은 그들의 부요함과 화려함에 대해서 자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땅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이 은과 금을 땅 속에서 캐내어 나중에 연단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에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금은동철이 흙덩어리와 다름없이, 보잘 것 없는 것인듯이 흙과 먼지와 함께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무시된 채 땅에 묻혀 있다가 사람에 의해서 발굴이 됩니다.
6-11절에 “그 돌 가운데에는 남보석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위엄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무너뜨리며 돌 가운데로 도랑을 파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하고 감취었던 것을 밝은 데로 내느니라” 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주목하지 말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5절에 보면 “네가 어찌하여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돈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이 필요없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 이하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옳습니다. 돈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것을 맡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인데,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왔다고 해서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 새들은 날개가 있어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다른 밭에 날아갑니다. 이와같은 것이 세상이요 세상 물질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 것에 치심치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본능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사용할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을 때, 안 먹어야 될 것을 먹을 때 죄가 됩니다. 돈이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잘 쓰면 좋은 것이고 잘못 쓰면 죄가 됩니다.
칼이 외과의사의 손에 들려질 때는 죽을 사람을 살리는 수술을 할 수 있고 강도의 손에 들려질 때는 사람을 해치는 악행을 저지르는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본능대로만 살지 아니하고 이것을 제어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 본능대로만 살면 그것은 짐승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은 본능대로만 살지,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잠언 23장 7절에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생각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엣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비록 이 몸이 땅에 거하지만 우리의 심령이 위에 속해 있으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 감사도 만족도 찬송도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과 불만과 시기와 분한 생각 같은 것으로 가득 차서 언제나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생각이 다 없어지게 됩니다. “불가입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병속에 물을 넣으면 공기는 몰려 나가게 마련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면 땅엣 것은 자연히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세상의 것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땅 속에 감추인 재물을 얻기가 힘이 들어도 그것을 얻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은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3절에 있는 “끝까지 궁구하여”라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한없이 찾습니다. 사람들은 이 재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며 얼마나 애씁니까? 10절에서는 그들은 바위를 뚫고 길을 내며 산에 갱도를 판다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험도 사양치 아니합니다. 광산을 파는 사람들은 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해야 하며, 땅의 가스에 질식당하거나 그들 위에 있는 흙이 무너져 내려 깔리거나 생매장 당하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금과 은을 얻고자 합니다. 솔로몬 시대의 은은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같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얻고 또 얻고 더 얻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톨스토이의 옛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임금님이 어느 농부에게 “네가 하루종일 걸어서 돌아온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왕의 약속을 들은 농부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땅을 넓게 얻기 위해서 열심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뛰기도 했습니다. 조반 먹을 생각도 잊었습니다.
점심때도 넘기며 열심히 ‘한 발자국 더 걸으면 그만큼 내 땅이 넓어지는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쉴 생각도 잊고, 피곤도 무릅쓰고, 힘있게 열심히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으려는 마음에서 입에서 단김이 올라오고 앞이 가물가물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바싹 차리면서 걸었습니다.
태양이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 임금님 앞에 다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걸었습니다. 이 농부는 거의 뛰다시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와 임금님이 계신 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해가 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걸은 땅이 모두 이 농부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는 왕 앞에 이르자 너무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일으켜 보았더니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없을까요? 그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려 보려고, 있는 힘 다해서 이웃도, 나라도, 교회도 생각할 여유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는 생각 뿐으로 사는 사람이 없습니까?
성경은 한마디로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는 것이 정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금은 찾으면서도 은혜는 무시합니다. 땅에서 나는 보석에 대해서는 기대를 걸고 노력하면서도 하늘의 지혜는 등한시 합니다.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리석게 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 이하를 보세요.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했습니다. 잠언 23장 23절에 보면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고 합니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세계는 무대와 같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세계는 시장과 같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하루하루의 생활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에 장사하는 것과 비슷하고, 반성하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계산을 보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우리의 일생을 돌이켜 본다면 그것은 일생을 통하여 장사한 것을 총결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실 인간 생활은 장사하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좋은 것은 사고 나쁜 것은 팝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반대로 좋은 것은 팔고 나쁜 것은 삽니다. 그래서 “지혜를 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값이 너무 비싸고, 그 값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중 13-18절을 보세요. “그(지혜의)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보다 귀하구나” 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마지막 절을 보세요.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잠언 1장 7절에도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솔로몬의 결론입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누려 보고, 가져 보고 했으나 하나님을 경외한 것 이상 귀한 것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지혜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돈을 무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세를 악한 것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소용없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를 얻으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했어요. “무식한 사람이 10년 동안 교회에 잘 다니면 대학 졸업한 사람보다 나은 지혜를 얻게 된다”고요.
사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약 잠언을 지혜의 책이라고 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열 세 번이나 나타납니다. 잠언뿐만 아니라 구약의 다른 책에도 거듭 적혀 있습니다. 모든 지식과 명철한 생활과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 열쇠인데 미련한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13절에 보면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지혜로운 충고를 듣지 아니하다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상 2장 25절에 보면 엘리 선지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도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지 아니해서 그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 지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반대로 요셉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있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선지자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도 시험이 옵니다. 기쁠 때는 기쁨을 통해서 시험이 닥칩니다. 슬플 때는 그 슬픔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한가한 때는 한가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은 밖에서 밀어닥치고 안에서 솟아납니다.
그러므로 시험될 만한 것은 아예 멀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멀리 하노라고 하지만 마귀는 갑자기 우리를 시험합니다. 이때는 ‘전격적’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는 일입니다. 시험에 들 시간조차 없도록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면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에게 어느 젊은이가 찾아와서 그의 지나 온 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다가 “선생님께서는 시험에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하고 물으니까 그는 안경 너머로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시험? 시험에 들 시간이 있어야지?”하고 대답했다는 말은 유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가정에서나 내 교회에서 내가 맡은 일에만 충성 다하노라면 시험에 들 사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비참하게 되어도 하나님이 동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비웃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무엘상 12장 14절에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 열조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존중히 여기면 내가 너희를 존중히 여기고 너희가 나를 경멸히 여기면 내가 너희를 경멸히 여기리라” 했습니다.

시편 128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 인생의 집을 만세 반석 되신 그리스도 위에 세우게 하십니다.
박조준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