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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전 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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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와 목적

때와 목적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1절; 시 31:15a).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모든 '때'는 하나님의 때이다.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의 생각하시는 바가 역사에 드러나는 시기이다. 그래서 우리의 바라는 바(='모든 목적', 1절)는 우리의 정한 스케줄을 따라 진행되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완전하게 이루어진다(1절).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때를 '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에 두셨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지만 적어도 땅에서 '때'를 논할 때는 그 두 사이에서 생각이 머문다. 하나님만이 '시종(from the beginning to end)'을 알고 행하실 뿐 우리가 현재를 벗어나서 무엇을 측량한다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다(11절). 그래서인지 우리의 눈으로 보면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없어 보이고 모든 일은 애써 행하는 노고에 지나지 않는 것같이 느껴지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고백의 전부인 것 같아 보인다(9-10절). 과연 어디서 안식을 찾겠는가. 생명과 죽음(2, 3절), 웃음과 울음(4절), 농사일, 사랑(5절), 야심과 좌절과 재물(6-7절a), 개인적이고 대외적인 관계(8절)가 다 내 맘대로 되어지는 적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우리의 마음으로 평강을 갖게 하는가.

2. 인생의 낙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지으실 때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 사실에서 평강을 가진다(11절).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는 '때'는 실로 아름답다. 창조 때에 하나님은 하루 하루를 지어 가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감탄을 발하셨다. 지어진 내용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겠지만 그 내용들에 담긴 '질서와 때'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감탄하신 것이다. 시종을 아시는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처음에 선한 것을 시작하신 이가 어찌 모든 것을 선한 때에 이루게 하시고 또 선하게 마치지 않으시랴. 하나님의 아름다운 때를 거스르는 인간이 고통스러울 뿐이지...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사실로 인하여 평강을 가진다(11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란 우리 때를 넘어 '하나님의 때'를 본다는 뜻이다. 닥친 상황을 조금 띄어 놓고 보면 달리 보이는 것이 분명 있는데 하물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에 현실이 달리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원을 사모할 때라야 사람에겐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에 낙을 누리는 것이 있다(13절, NIV find satisfaction in all his toil). 곧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의 인생을 느끼는 '길이'는 달라지며 이로 인해 전에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찾아드는 것이다. 게다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삶의 보장이 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땅의 수고에 매이거나 지치지 않으며 땅에 무엇을 쌓기 위하여 노심초사하지 않고, 이 땅에서 생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위한 재료로 쓰게 되는 것이다.

이전 구절인 12절에서는 이렇게 낙을 누리며 사는 것을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선을 행한다고 하면 남을 향해 베푸는 자애를 떠올리기 쉽지만 본문의 정황에서 말하고 있는 '선'은 '자기 삶에서 응당 그래야 할 것'을 행하는 의미로서의 '선'이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본분을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먹고 마시며 수고함에 낙을 누리는 것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행하길 원하신다. 달리 말하면 부족을 느끼거나 쫓기며 살지 않고 '만족'을 알고 살길 원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것에 변하지 않을 것이 있으랴만 하나님의 때를 사는 자에겐 영원한 것 밖에 없고 인간은 그것을 어찌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14절).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다는 말은(15절) 세상을 움직여 가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간에 의해 좌우된 적이 없으며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오늘도 항상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이 세상의 움직임을 지속시켜 가는 보장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오직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질뿐이다(='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God will call the past to account). /신대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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