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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5가지 마땅한 본분 (전 0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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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교회가 타락했다, 성도가 타락했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저는 그 말을 역으로 생각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로 듣고 싶습니다.

타락이라는 용어를 개나 돼지에게는 쓰지 않습니다. 그 말은 오직 사람에게만 씁니다. 왜 사람에게만 그 말을 쓸까요? 그 말을 좋게 해석하면 아직도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했다는 말에는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타락했고, 성도가 타락했다는 말은 좋게 해석하면 아직도 세상은 교회와 성도가 바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성도로서의 본분을 잘 지키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 지켜야 할 마땅한 본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본문을 통해 성도의 5가지 본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기본적인 본분은 무엇일까요?

1. 성도는 기쁨과 즐거움의 진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성도의 삶은 기본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적 중의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정말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얼굴이 밝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처럼 밝게 사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왜 얼굴이 어두워집니까? 대개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로서 얼굴을 펴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마음이 예쁘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즐거워하면 실질적으로 얼굴도 예뻐 보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피부가 검은 흑인이었지만 마음이 예쁘니까 얼굴도 예뻐 보입니다. 그러니까 천 명의 처와 첩을 둔 솔로몬 왕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지 않습니까?

사실상 사람을 끄는 것은 예쁜 얼굴이 아니고 예쁜 마음입니다. 얼굴이 예쁘지만 마음이 추하면 그 예쁜 얼굴이 더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예쁜 마음을 가지면 말씨도 예뻐지고, 표정도 예뻐지고, 인상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추하면 표정도 이상해지고, 말도 이상해지고, 인상도 이상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 예쁜 마음을 가지려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속한 곳'을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왜 믿는 사람들이 기쁨과 즐거움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고 너무 세상적인 축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보십시오. 너무 세상적입니다. 그러니까 불행해집니다. 물론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필요한 것이 한이 없고, 너무 배고픈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적인 소원보다는 우리 주님을 크게 보고, 하나님 자녀 된 것을 감사하며 항상 밝은 표정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소중한 것이 되고, 주님이 소중한 분이 되지 않습니까? 주님을 가졌는데도 다른 것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의 얼굴이 어둡다면 우리로부터 무엇을 얻겠다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기쁨과 즐거움의 진원지가 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성도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성결한 삶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한 삶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죄를 적게 지으려는 노력일까요? 그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적게 짓는 것을 보고 '성결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 인간은 죄를 실행하지 않아도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결하다는 것이 생각으로 짓는 죄를 멀리하는 것을 말할까요? 물론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성결함의 모습은 그런 차원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차원의 성결함을 원하실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성결함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성결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는 것 같은데 교회 밖에서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 말씀을 보면 그런 모습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의 믿음이 바람에 밀려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결함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결한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생각을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시험은 대개 우리가 가진 믿음의 성결함을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가게에 불이 났소!' 그때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보여줄 때 하나님은 최종적인 선을 반드시 보장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성결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큰 시험이 와서 우리를 흔들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세상의 화려한 불빛에도 결코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그러한 성결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3. 성도는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8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이 구절을 우리는 기도와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사고가 많은 세상입니다. 내 배우자, 내 자녀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도를 안합니까? 기도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울타리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예방기도가 사후약방문 기도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기도를 절대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소리가 입에서 나가면서 우리의 귀에는 다시 들리지 않지만 어느 한 시간의 기도라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법은 정말 없습니다. 기도의 진짜 능력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해서 나타납니다. 그것을 모르고 눈앞으로 열매로만 생각하니까 기도를 경시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20년 후에 자녀의 생명을 지켜주는 힘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도가 꼭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만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열매 이전에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기도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하고 나면 아주 중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와 삶을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거룩한 지혜입니다.

오늘날 살다보면 얼마나 인내를 요하는 일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넉넉하게 인내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고독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으면 참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도 그냥은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으면 참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도 그냥은 참기 힘듭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으면 참을 힘이 생깁니다. 믿는 것은 결국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꿇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가 무엇을 무서워하겠습니까? 우리를 무서워하겠습니까?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성도의 기도를 막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막습니까? 일에만 몰두하게 하고 기도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는 이 마귀의 전략을 알고 무엇보다도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마귀는 기도가 없다면 어떤 유능한 성경연구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의 마땅한 본문이며 은총과 축복의 통로입니다.

4. 성도는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가정은 사실상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큰 의미에서 교회도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교회생활도 사실상 그것이 바로 천국생활입니다.

가정과 교회! 이 둘은 땅에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천국공동체입니다. 이 가정과 교회가 평화로우면 그것은 어떤 소중한 보약보다도 보약입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어려운 환경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환경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한 환경은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하나님이 주신 분복인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자유는 얻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가정은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특히 남성에게는 3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는 책임감입니다.

성경은 남자에게 말합니다. '모든 책임을 떠 맡으라.' 바운즈는 말합니다. '모든 남자는 가정의 책임적인 도구들이다.'라고 말입니다. 남편은 경제적, 도덕적, 신앙적 책임을 지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2) 둘째는 자상함입니다.

남편은 손이 큰 남자가 되어야 하고, 통이 큰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보살피고, 베풀고, 칭찬하는 마음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외유내강해야 하지만, 남자는 외강내유해야 합니다.

3) 셋째는 확고한 중심입니다.

남편은 변덕이 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도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 비위 맞추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특히 남편을 존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제대로 하는 것이 뭐 있냐?'라는 말은 남편에게는 치명타입니다. 가정에서는 서로간에 자존심 지켜 주도록 힘써야 하겠지만 특히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 없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꼭 기억할 것은 헌신하려는 마음입니다. 가정은 행복을 채굴하는 곳이 아니라 행복을 저축하는 곳입니다. 얻으려는 사람, 주장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정과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헌신하고 베풀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정과 교회는 천국이 됩니다.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의 일이었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스타디움을 확장하기 위해서 인부들이 지붕을 헐었습니다. 그런데 지붕을 헐어보니 벽에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채 살아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전에 공사했던 사람들에게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3년 전에 박은 못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인부들은 어떻게 3년 동안 도마뱀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중단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공사를 중단하고 지켜보니까 한 구석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나오더니, 그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3년 동안 친구를 위해서 하루에 서너 차례 먹이를 물어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부들은 사랑과 헌신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랑과 헌신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를 만들기를 원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부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미나에 가서 좋은 말 많이 들으면 됩니까? 다른 오묘한 방법을 생각할 것 없습니다. 사랑과 헌신이 있으면 됩니다. 성도는 사랑과 헌신으로 가정과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5. 성도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가끔 믿는 성도 중에 믿음을 오해하고 땀을 흘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놀고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열심히 땀을 흘려야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람직한 인간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믿는 사람으로서 바른 인간상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단테는 신곡이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지옥을 9층 3단계로 분류했는데, 거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정신이 똑바르지 않습니다. 믿음은 똑바른 정신을 반드시 수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그 작품에서 제일 위 단계에는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가 있습니다. 신세를 졌으면서 '언제 졌더라!'라고 오리발 내리는 사람이 거기에 있고, 절제하지 못해서 많이 먹고 숨을 헐떡이는 사람도 거기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단계에는 예수님을 믿다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있고, 지옥의 제일 아래 단계에는 남을 때리는 사람과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똑바른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정신이 비뚤어질까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정신이 비뚤어질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의 의미, 그리고 땀의 의미를 모르면 정신이 비뚤어집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은 똑바른 정신을 반드시 수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의 정신을 바르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기도를 합니까? 기도도 일을 안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도 놀고먹으려는 심리가 담긴 기도제목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에게 복권 심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복권을 사고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복권 당첨을 위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권은 아니더라도 그런 유사한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되지 않는 순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땅, 내일에 대한 약속은 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잉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여호수아의 책무와 땀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약속하시고 마련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그 약속된 것을 소유하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약속된 내일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난주일 예배에 말씀드린 대로 바로 발바닥으로 밟는 일입니다. 즉 우리의 사명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구체적인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약속된 축복은 잘 익은 열매처럼 우리의 무릎에 그냥 던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땀을 흘려 약속된 축복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으로 주어진 다섯 가지 성도의 본문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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