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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 5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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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X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신세대, 또는 신인류라고 불렀는데 점점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기성세대와는 너무 다르게 변화한다고 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라고 X세대라고 불렀습니다. X세대는 다른 사람이 입은 옷은 절대로 안 사 입고, 다른 사람이 마시는 음료수는 절대로 안 사 마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세대입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종일 컴퓨터에 붙어 앉아 인터넷에 몰두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기성세대는 일반적으로 '쉰 세대' 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쉰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특별히 40대를 가리켜서 '낀 세대' 라는 말로 특징 지우고 있습니다. 40대를 '낀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30대와 50대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입니다. 50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세대입니다. 적당히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서열에 따라 승진을 하고 평생직장으로 보장을 받는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40대는 자기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가 갑작스런 시대의 변화를 맞은 세대입니다. 시대가 변하자 영어와 컴퓨터로 무장을 한 30대가 무섭게 치고 올라옵니다. 이제 와서 영어를 배운다 컴퓨터를 배운다 난리를 떨어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저도 40대에 속하지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 영어회화를 배우는 친구들은 미국 이민을 간다거나 아니면 미국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부러 영어를 배우겠다고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일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시대가 변하니까 50대처럼 이미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또 30대의 변화무쌍한 삶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둘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낀 세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40대는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남자들의 40대 사망률이 세계 1위라고 하는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40대 남편을 두고 계신 주부님들은 깊이 생각하시고 그동안 소홀히 한 것이 있으면 깊이 반성하시고 남편에게 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있을 때 잘하십시오.

비단 40대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심한 스트레스 가운데 살아갑니다. 제가 예배 끝나고 인사를 나누는데, 여러분 얼굴을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피곤에 지친 얼굴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시간에 주무시는 분에게 절대로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피곤하면 그러겠나, 아버지 집에라도 와서 편히 쉬어야지.' 그러고 넘어갑니다.

오늘 이 시대는 무서운 경쟁시대입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잠깐 어디 갔다오면 벌써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요즘 우리 모두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단어가 하나있습니다. 어떤 젊은 여가수가 부른 노랫말입니다 '바꿔 바꿔, 몽땅 바꿔.' 사실 이것만큼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이 없습니다. 언젠가 어느 재벌그룹 총수가 '마누라 빼놓고는 모두 바꿔라.' 그래서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보통 스트레스를 주는 말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할 줄 모르면 바꿔라, 외국어를 할 줄 모르면 바꿔라,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내 책상이 남의 책상으로 바뀌어버릴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항상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몇 가지 증세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증세가 없는가를 스스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불안입니다. 그런데 이 불안은 이유를 모르는 불안입니다. 특별히 걱정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걱정이 쌓이는 것입니다.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기(杞)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매일 나무 밑에 앉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아니, 자네는 매일 그렇게 앉아서 무슨 걱정을 하고있나?'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대답하기를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기인우천(杞人憂天)', 즉 '기나라 사람이 하늘을 걱정함'이라 해서 '기우(杞憂)'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특별한 이유도 없으면서 공연히 잠자리에 들어서 이런 저런 걱정을 하는 분이 계시면 이러한 불안증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좌절입니다. 이것은 어떤 일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해가 날 때가 있고 비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부정적인 면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세탁소를 하고 한 아들은 우산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비가 오면 세탁소 하는 아들 걱정, 해가 나면 우산장사 하는 아들 걱정에 평생을 걱정하다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어떤 일을 항상 안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러한 좌절증세가 나타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갈등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언제나 선택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하는 어느 가전제품 회사의 광고처럼,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집사람 여동생이 자동차를 새로 구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동차가 최근에 가끔 신문에 나오는 급발진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자동차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가는 현상입니다. 왜 그런지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도 모릅니다. 수만 대에 한 대 꼴로 그런 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하필이면 그 차가 나한테 걸릴게 뭡니까? 그래서 제가 해결을 했습니다. '한번 급발진 사고가 난 차는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더라. 그러니 언제 급발진 사고가 날지 모르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미 사고가 나서 다시는 안 나는 것이 확실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낫지 않느냐.' 그렇게 은혜롭게 끝냈습니다. 지난 번 서울에 가서 만났더니 '형부 말만 믿고 탑니다.' 그러더군요.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던가?' 이러고 살면 평생 불만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선택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믿고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나는 왜 이렇게 선택을 하는 것마다 잘못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분이 계시면 이러한 갈등의 병에 걸리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에게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55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칼을 피해서 도망 다닐 때에 지은 시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4년 동안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선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리기 위해 계략을 꾸몄습니다. 누군가가 왕에게 재판을 해달라고 찾아오면 도중에 자기 사람을 보내서 '왕에게 가보아야 소용없다. 왕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압살롬에게 가보아라. 압살롬은 네 말을 들어줄 것이다.' 이렇게 꼬여서 압살롬에게 데리고 옵니다. 그러면 압살롬은 일어나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왕자가 자기를 붙들고 입을 맞추니 이런 황송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압살롬은 참 겸손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우리들을 존중해주고 우리들의 억울한 일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 이렇게 소문을 내었습니다. 압살롬은 이렇게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성경은 이를 가리켜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 하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4년 동안 애를 써서 백성들의 민심을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압살롬은 드디어 쿠데타를 일으켜서 예루살렘에 있던 아버지 다윗을 죽이러 달려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급히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사무엘하 15장은 다윗이 도망가는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 맨손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던 다윗, 더욱이 그가 왕이 되어서는 주변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를 이루었던 다윗이 아들의 칼을 피해 목숨을 건지지 위해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던 부하들마저도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 편에 섰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중한 병에 들어서 누워있는데 다윗의 가까운 부하 하나가 병 문안을 왔습니다. 시편 41편은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라고 표현했습니다. 병 문안을 와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병 문안을 온 것이 아니라 다윗이 언제 죽는가를 보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악한 병이 들었으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하였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바로 앞의 13절 이하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구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이렇게 서로 다정하게 지내던 가까운 친구가 나를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목숨을 같이했던 부하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광야를 헤매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압살롬의 부하들이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상황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과 좌절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본문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가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의 군사들은 여전히 다윗을 찾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과거완료형으로 이야기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실 리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들으신 줄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으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앞에 놓고 이렇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지금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죽은지 사흘이 되어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나사로를 앞에 두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죽었던 나사로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이것만은 꼭 들어주십시오.'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시 한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감사하십시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비록 이렇게 쫓기는 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다시 왕의 자리에 앉게 하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배신하고 나를 죽이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물리치시고 내 생명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런 믿음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기도를 통해서 이 믿음을 갖게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미국 선교사가 전도를 하러 다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하던 시기라 미국에서 지프차를 한 대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여기저기 전도를 하러 다니는데, 한번은 시골길을 가다가 할머니를 한 분 만나게 되었습니다. 허리가 꾸부러진 할머니가 머리 위에는 잔뜩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차를 세우고 할머니에게 타시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몇 번을 사양했지만 선교사가 하도 권하는 바람에 고맙다고 하고는 차에 올라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선교사가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가 짐 보따리를 그대로 머리에 이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할머니, 무거운데 그 짐을 내려놓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니, 차를 태워준 것도 고마운데 짐 보따리까지 올려놓을 수 있나요.' 그랬답니다.

우리는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도 하나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손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무거운 짐 보따리는 머리에 이고 계십니까?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왜 염려하고 근심합니까? 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지 못합니까? 내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듯이, 우리의 염려도, 근심도, 우리의 미래도 다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치 아니하시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형편과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네 짐을 내게 맡겨라.' 말씀하십니다. 인생 길을 걷다가 내 등에 얹혀져있는 짐이 너무 무거울 때 그 짐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내 이 무거운 짐도 맡아 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주님의 날개 아래 안식을 얻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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