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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보내 주소서 (사 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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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 원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 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이 땅에서 도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 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 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와 같 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낼 수 있 습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 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가장 단순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과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으로 우리가 항상 슬퍼하며 불평과 원망 가운데 이 땅 에서도 지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과 천국의 삶을 주셨건만 우리는 사탄의 속임 수에 속아넘어가 하나님이 주신 천 국과 그 천국에서의 삶을 잃어버리 고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천국을 빼앗기 위하여 한 일은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 르고 범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 탄은 누구보다도 죄의 삯이 사망이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사망으로 내 몰 기 위하여 그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 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던 것입 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 님을 거스르고 범죄케 하기 위하여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 리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죄 의 뿌리는 욕심이라는 사실을 강조 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려고 하면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천국의 삶을 살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극복 해야만 하고 죄의 문제를 극복하려 고 하면 우리 내면 속에 있는 욕심 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 다.

죄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 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구원 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아담과 하 와에게 말씀하신 것은 욕심을 버리 고 말씀대로 사는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악과 나무 열매는 그 어느 나무의 열매보다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보암직하 고 먹음직한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욕심 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있 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 리들에게 욕심을 다스리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언제 나 우리들에게 그 욕심을 채우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아 욕 심을 채우는 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는데 행 복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을 버리고 극복하는데 우리의 구원 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 고는 절대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욕심이 끝없이 우리를 범죄케 할 것이고 끝없이 우리의 삶 을 초라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버림'이고 둘째는 '씀'입니다. '버림'과 '씀'의 차이는 '벌음'에 있습니다. '버림'은 버리고 벌지 않은 것입니다. '씀'은 계속 벌면서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버림'은 버는 것을 부정하 나 '씀'은 버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불교적인 발상과 방 법이요 후자는 기독교적인 발상과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 교와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차이인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욕심을 내 는 것들을 부정하고 부인함으로 욕 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 러나 후자는 우리 인간이 욕심을 내 는 것들 다시 말해서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자리 같은 것들을 부인하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부정하 고 부인함으로 욕심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르게 하 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쓰고 사용하는 것을 통하여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 가 사찰을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 에 짓는데 반해 기독교는 세상 한 복판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서 우리 는 그와 같은 중요한 차이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심을 버 리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 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는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을 부정하지 않 습니다. 다만 버는 것과 이루는 것 의 목적을 구별합니다. 자신의 욕심 을 채우기 위하여 버는 것과 이루는 것은 부정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 여 바르게 쓰기 위하여 벌고 이루는 것은 긍정합니다.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써야 합니다. 비만은 건강에 가장 나쁜 것 중에 하나입니다.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 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 은 먹지 않고 살을 빼는 것입니다. 둘째는 먹을 것 다 먹고 열심히 운 동을 하여 빼는 것입니다. 많은 사 람들은 전자의 방법으로 비만의 문 제를 해결하려고 하나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을 빼는데 성공을 하였다고 해도 그것 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만보다 더 나쁜 허약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건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듯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벌고 그리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쓰는 것이 건 강한 삶을 위하여 중요합니다.

저는 승동 교회에서 처음으 로 담임 목회를 시작할 때 '돈 잘 쓰기 운동'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일년 예산이 7천만원이었을 때 돈 잘 쓰기 운동으로 모은 돈이 일년에 천만원이 넘었으니 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 운동에 참여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매달 백만원 이상 을 모아서 실로암 병원에 맹인 개안 수술을 하는데 보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달에 500원씩 회비를 작정하였는데 아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그 돈을 벌어야만 했는데 큰 아이는 이불을 펴는 것으로 500 원의 회비를 마련했고 둘째 아이는 손님들이 오실 때 신발을 잘 정리하 는 일을 하는 것으로 500원의 회비 를 마련했습니다.

그때 막내 아이는 네 살이 었는데 500원 회비를 벌기 위하여 뒷짐까지 지고 고민(?)하다가 결국 근사한 일을 찾아냈습니다. 저희 막 내 아이가 제안한 일은 '빈방에 불 끄기'이었습니다.

그 '돈 잘 쓰기' 운동이 지 금은 '이삭 줍기 운동'으로 발전되 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 은 어려서부터 '돈 잘 쓰기 운동'과 '이삭 줍기 운동'을 하여 오고 있습 니다. 제가 이 운동을 통하여 자신 과 아이들 그리고 여러 교우들을 가 르치려고 하는 것은 '바르게 씀'입 니다. 그 '바르게 씀'을 통하여 욕심 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욕심의 문제 를 해결함으로 사탄의 굴레를 벗어 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 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씀'을 위하여 '돈 잘 쓰기 운동'이나 '이삭 줍기 운동 '보다 제가 더 중히 여기는 일이 있 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 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더 러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름 대로 최선을 다하여 사과 한 알이 들어와도 그것의 십일조를 떼려고 합니다.

저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욕심을 버리고 바르게 씀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 생 활을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 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낙하산을 타는 특전대원들 이 낙하산을 타기 위하여 훈련을 하 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높이가 약 10미터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높이는 우리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 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점 프를 할 수 있게 되면 비행기에서도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십일조가 우리 인간이 돈에 대하여 가장 공포를 느끼는 액수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0미터 높이에서 뛰어 내릴 수 있으 면 비행기에서도 뛰어 내릴 수 있듯 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가능하다 면 드디어 비행기에서 점프하기 보 다 더 어려운 욕심으로부터의 점프 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 니다.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이 전혀 엉뚱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 다. 저는 정말 온전한 십일조 생활 을 통하여 욕심을 버리는 훈련이 되 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이제 어 느 정도 십일조 훈련이 되었습니다. 십일조 훈련의 목적은 십일조에 있 지 않습니다. 그것은 특전대의 점프 훈련이 점프 훈련 자체에 있지 않고 비행기에서의 점프에 있는 것과 마 찬가지입니다.

점프의 높이를 나름대로 높 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십일조 생 활이 아니라 십이조 생활, 십이조 생활이 아니라 십삼조 생활로 훈련 과 운동의 강도를 높이려고 나름대 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와 같은 것이 아 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산 안 남기기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내 몫으로 주셨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 고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제 신앙의 높이가 정말로 유산을 안 남길 정도까지 되게되면 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산을 안 남길 것을 결심하게 되면 유산을 많 이 남기기 위하여 물질의 종 노릇 하는 어리석음을 부리지 않게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제가 그와 같은 삶을 사는데 까지 발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나름대 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 님께서 저에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 은 둘째치고 그와 같은 삶을 생각하 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해 지는 지 모릅니다.

돈을 바르게 쓰는 훈련을 통하여 제가 동시에 훈련하고 연습 하려고 하는 것은 명예와 권력에 대 한 욕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돈 을 부정하고 부인하지 않듯 명예와 권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합니 다. 할 수만 있다면 바른 길과 방법 을 통하여 명예와 권력도 얻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몸 된 교 회를 위하여 바르게 잘 쓰고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먹든지 마 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강의하던 모든 것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으로 제 삶의 목표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욕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 다. 그것에 얽매여 그것의 종노릇하 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의 목 표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에 두고 싶습니다. 죄 된 육신을 벗 기 전까지 그것은 아마 불가능하겠 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 여 그 믿음의 경주를 해 보고 싶습 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하나님 나 라에서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 목표를 향하여 달 려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입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실패 하면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러나 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싶습니다.

나와 사람들이 욕심내는 모 든 것들을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아니하고 주를 위하여 쓰고 싶습니 다. 그러므로 내 평생의 소원은 하 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물질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우리를 구원의 삶 에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지위와 권세를 누린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 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악한 것이 되어 훗날 하나님께 심판 받을 때 그 명예와 권세가 나 를 고발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은 하 나님께 심판 받기 이전에도 내 삶의 발목을 잡아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 하고 답답하고 기쁨이 없는 삶을 살 아가게 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지 못하는 많은 물질과 명예가 멍 에가 되어 나를 짓누를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를 부인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지 않고 이 땅에 살면서도 그와 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하는 삶을 살아 그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누가 우 리를 위하여 갈꼬?'하며 자신의 모 든 것을 주를 위하여 쓰면서 살 사 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물 으심과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 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대답 하고 헌신할 이사야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오늘 이 하나님의 부 르심과 물으심 앞에 응답하시겠습니 까? 저는 전혀 강요받지 않은 제 자 유스러운 의지와 판단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물으심에 응답하 겠습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교인 들 중에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쓰 임 받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고대하고 기도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하 여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물질 과 명예와 권세와 자리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는데 쓰 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소망 하며 사는 사람을 우리는 소명인 이 라고 부릅니다. 욕심을 통하여 우리 는 점점 쓸모 없고 쓸데 없는 사람 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소명을 통하 여 우리는 점점 쓸모 있고 쓸데 있 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부질없는 것 에 욕심이나 부리며 쓸모 없고 하찮 은 삶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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