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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겔 3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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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이스라엘
오늘 광복 55주년 기념 예배를 남북한 교회가 함께 드리면서 성경에 기록된 통일 민족의 꿈을 가르치는 에스겔 37장의 장면을 우리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그 영광이 극에 달했습니다. 사람이 고통스럽고 힘든 것을 참기도 어렵지만 형통의 때, 풍요의 때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역사상 많이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부요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 르호보암 때는 기어코 국가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였습니다. 주전 721년 경에 북왕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입으로 무너졌고 나라의 뿌리가 뽑힌 채 백성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쪽 유대왕국을 향해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다윗을 생각하여 저들을 권고하노라. 내 신실한 종 다윗을 내가 기억하여 이스라엘의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기를 원하노라.” 똑같이 잘못했는데도 계속 깨우치고 경고하고 저들을 붙잡아 주시던 주님이 도저히 남쪽 유대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자 바벨론을 통해 유대 왕국을 치십니다. BC 606년 경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대군을 몰고 예루살렘을 침입해서 약탈하고 그 때 다니엘 등을 필두로 한 젊은 사람들을 볼모로 대거 잡아갔습니다. 나라 뺏긴 남쪽 유대왕국은 8년 후인 598년에 독립을 꾀하다가 다시 침략을 받아서 만 명의 이스라엘 귀족들과 지도자들이 함께 잡혀갑니다. 이 때 민족 지도자 중에 한명이었던 본문의 저자 에스겔도 같이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다음, 시드기야가 다시 나라의 권위를 회복하고 싶어서 남쪽 이집트의 군사력을 빌어 독립을 꾀했지만 결국 느부갓네살이 3년 동안을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함락시킬 때, 그 성의 기초인 주춧돌까지 모두 뽑히는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 때 그처럼 영광스러웠던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어 버렸습니다. 이 세 번째 행할 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전 세계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중 중요한 사람들은 다시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의 약속
두 번째 붙잡혀갔던 때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하신 것은 “너희 나라가 망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희 나라가 외교 때문에, 이집트라는 강력한 나라가 뒷받침해 주어서 너희가 섰던 것도 아니고 그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망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고로 너희들은 하나님께 돌아가라. 애굽을 의지하지 말아라.”입니다. 이것이 이 에스겔서 초반부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기 보다 눈에 보이는 이집트를 의지해서 독립을 꾀하다가 그 나라의 기초가 뽑히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라 뺏긴 이 백성들을 향해서도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계속 말씀해주셨습니다. 모압, 암몬, 에돔, 블레셋, 시돈, 두로, 애굽 등 이 나라들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34장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에게 회복을 주시되 “목자가 흩어진 양떼를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고 하시고 36장에는 어떤 순서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인가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청사진을 모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해야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36장 37,38절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7-38)

예루살렘을 옛날처럼 다시 회복시켜 주겠는데 그래도 이 백성이 그렇게 되기를 내게 구하여야 한다고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속에 이런 의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벨론은 이렇게 강성한데, 그리고 바벨론을 꺽을 세력이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회복을 얻는다는 말인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부르셨습니다. 그 골짜기는 마른 뼈들로 가득찬 골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합니다. 37장 3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3-6)

그래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랬더니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7-10)

하나님께서 죽은 뼈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힘줄이 붙고 살이 붙고 그 위에 가족이 붙고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에 이르는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전능한 자다. 내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런 일을 행하는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 그 때 마음 속에 이런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러면 어떤 회복입니까? 나라는 둘로 갈라졌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회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 앞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읽었던 이 성경본문을 또 말씀해주십니다. 1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겔 37:16-19)

무슨 말입니까? “막대기 두 개를 취해서 하나는 먼저 망했던 북쪽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또 하나는 남쪽 유대라고 써라. 그리고 그 둘을 네 손에 쥐어라 그러면 네 손에서 하나로 이어지리라. 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이 무슨 장냔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이 손으로 붙잡을 때 여호와 내 손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놀라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통일 독일의 교훈
이 메시지를 자기 메시지로 받았던 민족이 있습니다. 독일 민족입니다. 독일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다음,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되었습니다. 동독은 인민 공화국인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고 연합군이 차지했던 서독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때 독일 교회는 ‘우리는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나눠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총회가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동독의 정권 담당자들이 매년 모이는 총회의 회의를 못하도록 여행의 자유를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서독의 교회는 국경지역에서 전화코드를 뽑아놓고 회장 선거를 하고,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분단을 용납할 수가 없다. 하나된 것을 우리 교회는 지켜야 된다.’ 동독에서 종교세를 폐지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성도가 헌금을 해서 교회를 유지하지만 독일은 모든 국민이 종교세를 냅니다. 그 종교세에 의해 교회가 운영됩니다. 종교세를 폐지하는 것은 교회의 재정적인 루트를 봉쇄하고자 하는 계책이었습니다. 이 때 서독 교회는 ‘우리 교회는 하나다 동독 교회의 모든 부족한 재정을 우리가 채운다.’ 그리고는 서독 교회가 동독교회의 재정 전체를 부담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교회만은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에서 조금씩 동서독의 교류가 증진되었습니다. 먼저 서신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서독 교인들은 동독의 사람들의 주소를 조사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부활절 카드를 보냈습니다. “이 땅에 구세주 오신 날이 25일, 성탄입니다.” “그 분께서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우리 죄악을 모두 해결하신 다음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은 계속 카드를 보내고 친척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부활절 선물을 보내면서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을 직,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선포했습니다. 자유가 더 진전이 되어서 자동차로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동독과 서독의 경제 격차가 1:4였습니다. 그런고로 동독 사람들이 서독에 돈을 가지고 오면 그 돈이 너무 쓰임새가 없었고 도무지 여행할 수 있는 돈이 안되었습니다. 그러자 서독교회들은 모든 교회가 문을 개방해서 동독의 여행자들이 오면 침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교회마다 누구든지 가면 받아들이도록 했고, 아침을 주고 점심 샌드위치를 싸주는 일을 전 독일 교회가 행했습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에 라이프찌히에서 동독의 교회들이 저녁에 촛불행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교회로 촛불을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을 켜서 들고 들어가서 “하나님, 이 땅에 다시 통일을 주시옵소서. 교회가 하나된 것처럼 이 민족이 하나되게 해주시옵소서.” 저들이 눈물로 기도했고, 그리고는 그 다음 달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햇는데 기어코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붙잡은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 의해서 통일 독일을 주신 것입니다. 당시 세계는 ‘독일만은 이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원흉 독일을 다시 통일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변 국가의 공통된 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합의된 의지를 뚫고 도무지 힘쓸 여유도 없이 갑자기 통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냥 통일 된 것이 아닙니다. 독일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붙잡은 그 손을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같이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
그러면 우리 한국 교회는 그간에 무엇을 했는가? 한국 교회는 우리 나라가 민주화와 인권회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는 주로 독재에 항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주 사태를 맞이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민주화와 인권이 회복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분단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권과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저 무시무시한 북한 공산당이 일으킨 6.25 같은 전쟁을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권은 제한을 받아야 되고 민주주의는 유보되어야 한다고 모든 핑계를 돌렸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빨갱이로 감옥에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극대화가 광주사태로 붉어지자 한국 교회는 그 때부터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분단 극복 없이는 민주화와 인권은 공염불이라는 생각을 갖고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 문제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1년 한반도 통일 문제연구원을 만들고 운영위원들을 두어서 계속해서 의논하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많은 기독교 진보 인사들이 감옥에 갇히는 불행한 사건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남북한이 가장 예리하게 대치해 있었을 그 때, 모든 남북한의 교류가 끊어져 있을 그 때, 1986년 9월 25일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 기독자 대회를 결행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니까 세계 교회협의회의 초청을 북에서도 받고 남쪽에서도 받아서 글리온에서 처음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1988년 11월에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일컬었지만 교회 없는 도시였던 평양에 봉수교회가 하나님 앞에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한국 교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을 채택해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통일에 대한 이런 견해를 가졌다고 천명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선언문에 기초해서 통일 문제의 발전이 지금까지 그대로 되어지고 있고, 그것이 올 해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까지 가는데 지침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 한국의 양대 큰 기독교 세력인 진보계열과 보수계열이 서로 만나서 통일 문제만은 힘을 합하자고 해 ‘남북 나눔 운동’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남북나눔운동 사무총장으로 오늘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1993년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숙제를 주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어서 ‘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북과 어떻게 교류를 시작할 것인가?’를 여러 루트로 알아보았습니다. 사회주의 붕괴로 말미암아 이미 북에서는 그 때부터 식량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북에서 식량을 달라는 요청을 듣고 한국 정부 당국자들에게 의논했더니, “북의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남쪽 식량 안받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 주었는데 받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모르는 거지요”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간섭을 안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주에서 쌀을 사서 북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쌀을 보내는 광경을 계속 촬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통일된 다음에 “남쪽놈아, 너희들 우리 굶어죽을 때 잘 먹고 잘 살았지?” 그러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우리가 얼마나 주려고 노력했는 줄 아느냐”는 증거로 삼으려고 사진을 찍다가 중국 공안원들에게 붙잡혀서 곤욕도 치루고 또 도망가다가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180도로 구르는 위험도 겪었는데 참 감사한 것은 한 사람도 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저희들이 북으로 식량을 보낼 때 돈이 30만불이 필요하면 외환 사용 승인이 안났기 때문에 1인당 환전할 수 있는 한도액인 $10,000씩 30명이 각자 환전해서 북경 공항에 내려서 그 돈을 모두 걷고 그 사람들 다시 저녁 비행기로 보내고 그 돈으로 쌀을 사서 보냈습니다. 북한 동포들, 굶겨 죽는 것 싫어서 저들 음식 보내주다 감옥 갇혔다 그러면 괜찮지만 홍정길 목사가 외환 승인 사용 불법으로 해서 감옥에 갇혔다는 말은 듣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국가법에 허용되는 범위로 그 일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공소시효가 다 지나서 지금은 문제 삼아서 저를 못잡아갑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법을 어겼거든요. 사실 어긴 것도 아닌 것이 우리는 헌금만 하고 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열 두 차례 보내니까 그 길이 뚫리더라구요. 그 다음에 한국 정부에서 북을 도울 수 있는 창구로 적십자사를 선정해 보내는 일이 구체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민간단체 가운데 북을 돕는 것의 70%를 한국 교회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는 이 손 축복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통일을 위한 기도
그러면서 우리들이 깊이 명심해야 될 것 있습니다.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 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북한 동포들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저들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장벽을 허는 가장 중요한 키는 사랑입니다. 저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금부터 해야 됩니다. 얼마 전에 북의 중요한 인사 몇 사람을 미국에 초청해서 미국 곳곳을 구경 시켜줬다고 합니다. LA, 그 화려한 라스베가스, 멋있는 뉴욕, 아름다운 워싱턴 등 다 구경 시켜줬는데 별로 이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이 없더래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서 감격한 곳이 한 곳 있다고 합니다. 그곳은 랑카스터라는 곳인데 메노나이트 교파 사람들이 삽니다. 이 메노나이트 교파는 지금도 18세기 복장을 그대로 하고 같이 공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동차로 꽉찬 나라 미국에서 아직도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롱불을 켜며 서로 사랑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 거기를 둘러보더니 이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러더래요. “충격이다. 우리가 그처럼 염원했던 그 곳이 이 세상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있다.”

그런고로 우리가 63빌딩으로 자랑 못합니다. 코엑스로 북한 사람 감동 못시킵니다. 우리가 저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피흘려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나갈 때 저들에게 사랑의 생명은 부활할 것입니다. 저들과 오랫동안 묵혔던 증오의 벽은 헐어질 것을 믿습니다. 미움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이외에 미움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보복은 보복을 낳습니다. 미움은 한없는 미움을 낳는 법입니다. 의심은 한없는 의심을 만듭니다. 믿음이 모든 의심의 종지부라면 모든 미움의 마침은 사랑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가 입니다. 사랑할 수 있으면 반드시 북의 동포들을 감격으로 만날 줄로 믿습니다. 한국 정부가 북을 향해서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또 큰 기업체들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교환했기 때문에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못하는 것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 속에는, 그 프로젝트 속에는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비록 적은 것 가졌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함으로 나갈 때마다 저들이 50년 동안 얼은 마음이 녹을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통일의 영광의 날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한 주간 동안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 현장을 보면서 분단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내내 울어야 될지 모릅니다. 이런 슬픔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맙시다. 두 막대기를 믿음으로 붙잡읍시다. 내 손은 힘이 없지만, 나를 붙잡고 계신 주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입니다. 그 손안에서 저들이 하나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우리 손으로 붙잡은 그 두 막대기에 통일의 영광을 이 민족 앞에 펼쳐주시기를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다같이 오늘 이 시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합의한 남북 공동 기도문을 같이 읽겠습니다.

<2000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교회 공동기도>

역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 민족사와 함께 고난당하시고
민족분열의 설움과 함께 신음하신 주님
장장 55년을 타에 의하여 강요된
민족분열의 가슴 아픈 역사를 돌이켜보며
주님의 십자가, 민족구원의 십자가를 바로 지지못한 우리들
죄 많음을 고백하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십자가의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신 주님!
저희가 이 나라 무거운 역사의 짐을 피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경쟁과 속임수, 증오와 무관심으로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온
야곱과 에서를 다시 만나게 하신 주님.
시기와 미움으로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과 다시 만나게 하신 주님
형제가 언제까지 눈을 부릅떠 총부리를 겨누어야 합니까?
이제 더 이상 자기의 정당함만을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말만을 늘어놓지 말게 하옵소서.
긍휼을 베푸시어 우리 민족이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걷게 하시옵소서.

분열의 역사를 하나로 엮고 계시는 주님
화해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갈라짐을 주장하기보다는 하나됨을 애쓰게 하시고
통일의 주인으로 우리 민족을 내세워
오늘 저희들을 갈라놓고 있는
온갖 유형무형의 장벽을 들어내고
폭약과 공해로 썩은 땅을 갈아엎게 하시옵소서.
남과 북의 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게 하시옵소서.

고아와 과부들의 한을 기억하시며

나그네 된 자들의 지친 삶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주님이시여
이 겨레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있다고 하여 없는 이를 억울하게 만드는 일 없게 하시고
높다고 하여 낮은 이를 억누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강하다고 하여 약한 이를 겁주지 않게 하시고
지식있다 하여 못 배운 이를 업신여기는 일 없게 하시옵소서.
잘 살기보다는 옳게 살기를 힘쓰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까지 맡아 지신 주님을 본받아 섬김의 길을 가게 하시옵소서.

이름 없는 이와 냉수 한그릇을 나누는 작은 일
그러나 그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
동족을 내 몸처럼 여길 줄 아는 사랑의 영을
저희 겨레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흩어진 혈육들이 서로 만나고 조건없이 서로 도우며
통일조국의 기치아래 공존, 공영, 공리를 실천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낡은 것들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이념의 노예로 살았던 옛 사람, 낡은 생각을 벗어 던지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새 천년, 새 세기에는 남과 북의
형제 자매가 얼싸안고 기쁨 나누며 평화와 통일의 새날을
활짝 열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삼천리 이 강산에 구원과 평화, 하나됨의 씨를 키워가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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