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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는 믿음 (사 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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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하는데, 좀 이상한 방법을 써서 사원을 모집했습니다. 우수한 지원생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인터뷰를 한다고 해놓고는 아무 광고 없이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말 없이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여기 저기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시간을 안 지키지?', '왜 아무 소리도 없이 늦는거야?',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사람을 뭘로 보는거야?' 등등. 불평,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회사에서는 그 동안에 그 광경을 다 녹화, 녹음해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이유가 있겠지. 뭐.', '그럴만한 곡절이 있겠지. 뭐.'하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느긋이 기다렸는데, 그런 모습도 다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드디어 광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습니다'하고는 조급히 굴지 않고 아무 불평 없이 느긋하게 기다리던 몇 사람을 합격시켜 채용했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찾고 계시며 그런 사람에게 큰복을 주시고 큰그릇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본문 이사야 30장 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신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조급한 시대입니다.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줄 모릅니다. 전에 미국에서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흑인이 탄 차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니까, '빵! 빵!'하고 경적을 울렸더니 조금 있다가 그 흑인이 경적을 울린 한국인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중 전화에서 너무 오래 전화를 거니까 기다리던 여자가 좀 빨리 끝내라고 한 마디 했다가 칼로 그 여자의 배를 찔러 죽게 한 일도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가 조급함입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도 보면 한국 사람이 오면, '빨리 빨리'란 말을 다 할 줄 압니다. 비행기를 타고 식사를 나누어주면 외국인들은 뚜껑을 열고 시작하려고 할 때 한국 사람들은 화다닥 먹어 치우고 거두어가라고 합니다. 음식도 인스턴트 식품이 유행입니다. 라면도 전에는 물 붓고 5분, 3분 기다리라고 하더니, 지금은 1분 혹은 30초면 먹을 수 있게 만듭니다. 미국 사람들은 음식점에 가서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마냥 기다리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그렇게 조급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오래 오래 기다리시는 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뉴욕의 어느 목사님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쓰던 낡은 성경을 살펴보다가 특별히 손때가 많이 묻고 눈물 자국이 많이 있어서 보니까, 시편 37편 7절이더랍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그릇이 되고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1. 고난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난과 환난을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이 지루할 만큼 오래 지속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고난을 많이 참고 훈련을 받은 만큼 큰그릇이 되고 큰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했고,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고난으로 연단 시키지 않고 큰복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 8장 17절에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하나님이 때로는 낯을 가리우신 것 같고 또 나를 버리신 것 같고 저주하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끝까지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2. 기도의 응답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응답이 늦어진다고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Delaying is not denial)라는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기도가 끝나기 전에 응답해 주시는 경우가 있고, 어떤 때는 생각으로만 잠시 기도해도 응답해 주실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엄청 많이 기도하고 오래 부르짖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이 안 찼거나 더 육성이나 죄성이 깨어져야 할 부분이 있거나 어떤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고 기도한 것은 저금 통장에 저금해 두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므로, 10년 후이건 20년 후이건 때가 되면 가장 유익한 길로 응답해 주십니다. 오순절에는 10일 동안이나 참고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30분도, 1시간도 뜨겁게 기도해 보지 않고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있는데, 그렇게 조급해서는 큰 능력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낙망치 말고 항상 기도하라'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기 딸의 귀신들린 것을 고쳐달라고 애원해도 예수님은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어떻게 좀 대답해 주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이방인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주인의 음식을 개들에게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멸시하는 말씀까지 하셨는데도 그 여자는 와내지도 않고 낙심하지도 않고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으니 제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할 때에 예수께서 돌아서서 칭찬하시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고 즉시 고쳐 주셨습니다. 인내심이 클수록, 오래 기다릴수록 큰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말씀의 성취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입니다.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나아갈 때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고 나서 자그마치 25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자기 몸은 100세가 되어 고목 나무처럼 되었고 사라의 몸은 꽃이 떨어져 말라버린 나무같이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 되니까, 잠깐 조급한 인간적인 생각으로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게 했는데, 그것이 이스마엘이며, 그 결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분쟁이 생기게 되었고, 그 후손 중에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악독한 사탄의 사자도 생겨나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말씀대로 아들 이삭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십일조 생활을 할 때 어떤 이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그 달부터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축복하시는 기적을 체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불필요한 지출이 줄어들게도 합니다. 택시 업을 하는데 딱지 떼는 일이 없어지고, 사고를 막아 주시고, 불황 중에도 사업이 더 잘 되는 축복을 눈으로 보게되는 체험을 하게되고, 어떤 이는 늘 잔병치레를 많이 했는데 병원이나 약국에 가는 일이 줄어들게 되는 체험도 합니다. 또 어쩌다 형편상, 십일조를 떼어먹을 때 즉각적으로 징계를 받고 손해보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돌보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십일조를 하는데도 경제가 풀리지 않고, 더 손해를 볼 때가 있고, 망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 때에 하나님과의 물질 관계가 바로 되었는가 회개할 것을 찾아보아야 하지만, 잘못된 것이 없는데 연단이 계속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 빚을 져도, 굶어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나아갈 때 마침내 '바로 이것이로구나'하고 축복을 깨달을 때가 옵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중단해도 좋은 때가 있습니다. 더 기도할 필요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령 기도하다가 눈물이 쑥 나온다던가, 불로 응답이 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질 때는 응답 받았다는 뜻이므로 중단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하워드 위트만(Howard Whitman)이란 사람은 '인생은 기다리는 기간이다'(waiting period)라고 하면서 '어린아이들은 자전거 탈 때를 기다리고, 청소년은 자동차 몰 때를 기다리고, 의학도는 면허 받을 때를 기다리고, 젊은 부부는 자기들의 새 집을 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예술은 단번에 배워지지 않는다(The art of waiting is not learned at once.)'라고 했습니다. 인생도 기다리는 기간이고, 신앙 생활도 기도하며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잠시도 마음놓고 해이해 지기를 원치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기다리는 생활을 원하십니다. 에멀슨(Emerson)이란 사람은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기다리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4. 믿음은 사람을 소망 중에 기다립니다.
비록 소망이 없는 사람같이 보여도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 노인 목사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보면 손자하나 키우는데 밖에 나가 놀다가 들어와서는 할아버지를 발길로 툭툭 걷어차면서 '이놈, 이놈'하고 게다가 별 욕을 다 하더랍니다. 웬만하면 귀싸대기를 후려칠 것 같은데 웃으면서 그 손자를 얼싸안아 주더랍니다. 그것을 보고 '아니, 천하에 저렇게 무례한 놈, 할아버지를 발길로 차는 놈을 그대로 두십니까? 그런 놈을 사랑하십니까?' 했더니,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얘가 지금 '이놈' 소리가 무슨 소린지, '님'인지 '놈'인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딴에는 내가 웃어주니까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러는 겁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스러우니까, 철들 때까지 참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제가 부목사 생활할 때 제 동생이 해병대 제대하고 와서 술, 담배 먹고 깡패 노릇할 때 부모님도 못 데리고 있고, 형님 누님도 못 데리고 있으니까, 저희 집에 왔는데, 하루도 편안하게 밥 먹는 법이 없었습니다. 밥상을 둘러엎고, 욕을 하고. 그 뿐입니까? 돈 안 준다고 미국에 있는 우리 맏딸이 세 살 때, 등덜미를 잡고 마당에 집어던진다고 위협을 하질 않나, 두 발목을 잡고 재래식 화장실에 거꾸로 변통에 넣었다가 꺼냈다가(닿지는 않게) 하면서 아이를 학대합니다.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서 죽는다고 웁니다.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부모님도 단 몇 달을 못 데리고 있는 걸 저희가 4, 5년 동안을 데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속을 썩혔겠습니까? 저는 성질이 불같은 데다, 목사가 늘 싸울 수도 없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가 저 자식을 낳기를 했습니까? 내가 맏아들이길 합니까? 왜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 집사람은 워낙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은 데다 매일 놀라니까 심장병에 걸려서 지금까지도 그 여파로 심장이 안 좋고 혈압이 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내쫓지 않고 참고 기다렸더니 대 교회 목사가 되었고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미리 고통의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저희 자식들은 속 썩히는 일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시던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도 그 집에서 제일 많은 사랑과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의 기둥과 같은 나사로가 병들어 곧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도, '죽을 병이 아니라'고만 하시고, 나흘을 기다렸다가 죽어 장사지내서 냄새가 날 때 가셨습니다. 그 때 누이들은 원망하면서 '지금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젠 장사지내서 썩어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요한복음 11장 15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병상에서 고쳐주신 것 보다 죽어서 무덤에 있을 때 살려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1장 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망 없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참 믿음이며, 참 사랑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성도가 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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