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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사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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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여름 우리 나라에 사라호 태풍보다 더 무섭던 루사 태풍이 몰려오던 그 시간, 그 날에 저는 군산 아래 있는 고창까지 고기 잡으러 갔었습니다. 정말 바람이 얼마나 위용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을 그 날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자동차가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것 있잖아요. 그래도 4시간을 걸쳐 기어이 거기까지 남가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 지역에 많은 목사님들도 저희를 기다렸습니다. 이미 약속된 일이었습니다. 그 바닷가에는 고기가 많기 때문에 그물로 바닷가에서 고리를 몰아와 가지고 몇 양동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려간 다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그 지역 사람들이 오늘은 큰일난다고 나가면 큰일난다고. 큰일날게 뭐 있느냐고. 다 태풍이지 않겠냐고. 그리고 내려갔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요 파도가 모래가 날아와서 몸에 박히는 거예요. 그래도 기어이 300m되는 그물을 치고 그 파도가 치는데서 고리를 잡아 꺼냈습니다. 물론 새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 태풍에 무슨 고기가 잡히겠어요. 그러나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는 이미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고기를 잡는 것보다 몇 백 배 더 큰 고기를 잡아 왔습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장애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우리 앞에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입니다.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우리는 적어도 태풍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면 우리는 태풍 속에서도 즐겁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니면서 말할 수 없는, 태풍보다 더 무서운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나를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이, 비웃음이, 환난이 있어도, 저는 거기에 굴복해본 일이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저의 친구들도, 어려움 속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우리가 흘린 많은 눈물들 기쁨이 되었고, 우리가 얻어먹었던 많은 욕이 영광이 되었고, 우리에게 몰아닥쳤던 매맞음과 고난들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게 되었고, 실로 말할 수 없는 영광을 가져다주었지만, 예수 믿는다고 해서 오는 핍박 조그만 어려움, 오히려 죄악의 태풍에 이끌려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 멸망과 저주의 태풍에 밀려서 인생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아가야 되고, 이겨야 되고 극복해야 되고, 넘어서야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우리에게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핍박이나 칼이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몰라도, 하나님이 내편에, 내 옆에 계시는 것을 아는 이상,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의 생각은 바뀝니다. 마음은 편안합니다. 담대해 지지요. 여유도 생기고, 기쁨과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염려가 다 떠나갑니다. 왜 부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변합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변하고 마음도 변합니다. 길이 변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귀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1903넌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지요. 1903년에 출발해서 1908년까지 최초로 자기가 만든 비행기를 가지고 12초 정도 하늘을 나는 일에 성공을 합니다. 12초를 날았지만 이것이 몇 년 가지 않아서 1917년에는 이미 세계가 비행기를 갖게 되고, 1차 대전에 비행기를 폭격기로 사용하게 됩니다.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것이지요. 라이트 형제가 발명했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고, 비웃었지만 빠른 속도로 이것이 실험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0세기에 있었던 백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비행기 만드는 것을 우습게 여겼던 유럽의 나라들은 퇴보합니다. 그때까지 영국은 배로 온 세계를 다스렸는데, 비행기가 나오면서 배는 쓸모 없게 되고 배를 가졌던 강대국들은 퇴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만들 때는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2020년이 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업의 95%가 없어진다고 하는 기사를 며칠 전에 보았습니다. 새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부산이 신발공장으로 계속 머물러 있다면 부산은 끝났을 것입니다. 빨리 변해야 됩니다. 신앙은 변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빨리 변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신앙은 보자기를 뒤집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럽고 추했던 내 모든 보자기. 밑에 있는 것을 쏟아 붓고, 새로운 것을 가져다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는 것이 신앙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변해야 됩니다. 생각이 변해야 됩니다. 밝아빠진, 내 속 깊은 곳에 있는, 내 양심 속에 감추어져 있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교회는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불의한 길은 뒤집어엎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며 정욕과 죄악의 모든 어두웠던 삶을 뒤집어엎고,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새로운 삶이 바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우리는 과감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술하여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했던 모든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아버지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담배를 피운다고 야단을 쳤다고 50m위에서 떨어졌어요. 자살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자동차 위에 떨어져서 죽지 않았대요. 정말 놀라운 일이예요. 담배 피우는 것, 부모님이 이것을 뒤집지 못합니다. 이미 피우기 시작한 것, 뒤집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예
수님만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안 피우는 사람으로 담뱃대를 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예수님에게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저주를 뒤집을 수 있는. 축복으로 뒤집을 수 있는.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격도 뒤집어엎고, 취미도 뒤집어엎고 우리의 모든 삶을 새사람으로 가져다주는 줄 믿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로워지면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변하지 않고 세상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행복의 조건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가 뒤집어지고 나면,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민비나 장희빈을 만나도 가
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천하에 없는 천사를 만나도 내가 뒤집어 지지 아니하는 한 그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악인을 만듭니까? 누가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까? 나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새로워지면 이 세상 다 바꾸지 않아도 나만 변하면 변화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부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가대 찬양처럼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넘치는 주의 사랑 놀라운 주의 은혜 날마다 경험하며 주께 감사합니다.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 나와 같이 걸어가며 나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손길로 나 잡아주시는 축복의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어떤 집사님은 교회는 나와도 아직 거듭나지 않아 담배를 늘 피우고 다녔어요. 담배를 못 끊었어요. 이 집사님이 시골에 사는 집사님 집에 며칠 가 있는데, 집사님이 대접을 영 엉터리로 하는 거예요.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고, 불만이 가득 찼어요. 사흘째 되는 날 말을 했어요. 집사님, 성경도 안 읽으세요. 손님을 대접하고 아브라함은 천사를 대접했다고 하는데, 천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고. 그러니까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담배 피는 천사는 처음 봤다고 하더래요. 몰래 피우는 것을 본 거예요. 담배 냄새가 퐁퐁 나는데, 모를 리가 있어요. 자신은 끊을 것을 안 끊고, 자기는 뒤집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해주기를 바라고, 나를 천사로 알아주길 바라니 될 리가 있어요. 예수를 믿고 우리가 심령이 새로워지면 내가 천사가 아니라 그 집을 내가 천사처럼 받들고 섬기게 되어져 있어요. 모두를 보는 눈이 바뀌어지는 것이지요.
찰스 콜슨이라고 하는 미국 닉슨 대통령의 법률 고문입니다. 보좌관입니다. 법률고문은 더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분은 최고의 지성이구요. 이 분은 성격도 아주 철저했다고 합니다. 머리가 비상했다고 합니다. 지독할 정도로 냉철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여기까지 올라가면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지
요.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 미국의 보좌관은 세계의 보좌관이예요. 그러나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세계의 꿈은 올라가는 것이고,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지요. 올라가고 올라가고, 더 잘되고, 더 높이 되고, 그러다가 모두 다 떨어지는 것 아니예요. 더 올라갈 곳이 어디 있고, 더 가질 것이 어디 있어요. 모두 다 가는 것 아닙니까?
며칠 전에도 우리 나라의 큰 재벌, 비행기 회사 회장님이 떠나가듯이, 그 많은 비행기 두고 떠나가듯이, 사람은 가야하는 것입니다. 무한히 가지고, 무한히 있고, 무한히 소유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떨어졌습니다. 감옥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는 심한 절망감에 괴로움과 좌절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성으로도 지성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가지를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상원의원으로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이 전도하러 왔습니다. 저는 미국 상원의원들 가운데 정말 예수 잘 믿는 의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이렇게 믿음도 좋구나, 목요일마다 모여서 성경공부 하구요. 어떻게 그
럴 수 있어요. 그리고 전도하며 다니구요. 상원의원 중 한 분은 법원에다 자기가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하구요, 예수 믿으면 사랑이 넘치잖아요. 미국 법에는 그런 조항이 있대요. 그런데 법원에서 결정을 안해주더래요. 그렇게 전도했는데 나중에 콜슨이 예수를 영접하고 새로워 졌어요. 똑같은
감옥인데 백악관보다 더 좋은 거예요. 이상한 거예요. 철조망이예요. 갇혔어요. 그런데 어두움이 떠나가고 빛이 찾아오고 속상하고 절망스러웠던 모든 마음들이 이렇게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위로의 주님이 같이 하는 거예요. 사랑의 주님이 함께 하는 것을 경험하는 거예요. 예수는 누가 믿든지 이 경
험은 똑같이 해야 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 사람은 변했어요. 남의 빨래 다 해주고 청소 다 하구요. 자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주님을 만나니 예수님을 만나니 마음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예수를 믿고 새롭게 되니 기쁨이 넘쳐요 어둠 걷히고 새 날이 되니 행복이 넘쳐요 예수 안에는 안식이 있어요 평안이 넘쳐요 마음문 열고 주를 맞으세요 기쁨이 넘쳐요
그래서 이분이 쓴 책이 전 미국을 강타하는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born again 이라고 해서 거듭남의 축복을 이 기쁨을 누리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도가 되고 교도소 선교를 앞장서서 하면서 수많은 범죄를 줄이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입니다. 나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능력으
로 변화된 사람은 다른 사람도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옥에 있는 사람을 건져낼 수는 없지만, 감옥 안에서 천국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어두움의 길을 쫓아가는 사람을 능력으로 붙잡을 수 없지만, 성령이 나와 함께 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오늘 많은 저주아래 있는 사람을 건져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귀히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돈이 최고요, 권력이 최고요, 세상의 것이 최고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 주님의 축복이 영원하신 것입니다. 최고 중에도 최고인 것입니다.
며칠 전 미국에 중동의 공주가 다녀갔대요. 중동은 공주도 많고 왕자도 많습니다. 그래서 공주, 왕자라고 속으면 큰일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장가를 많이 가니까, 자녀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맨하탄에 와서 하룻밤 자는데 3000달러 나가는 방들을 모조리 싹 쓸더래요. 한 달
을 지내고, 함께 한 사람들은 200여명이고, 그들이 하는 일이 다 다른데, 들어갈 때 신발 놓는 사람, 나갈 때 신발 돌리는 사람, 다 직업이 다르대요. 와이셔츠 다리는 사람, 겉옷 다리는 사람, 안에 것 챙기는 사람, 겉에 것 챙기는 사람, 목욕하면 닦는 사람, 미는 사람, 전부 다 다르대요. 세상은 있으면 할 일이 뭐냐. 그것 조금 높이는 거지요. 먹는 것 조금 높이고, 입는 것 조금 높이고, 밑에 사람 좀 늘리고, 그거예요. 타는 것 조금 높이고. 그러나 심령은 변할 수 없어요. 죄에 길에서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멸망에서 영생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참 기쁨을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여, 내 신발 돌리는 사람 하나 세우는 것보다는, 내가 낮아져서 저 연약한 사람의 신발을 돌려놓을 수 있는. 이 정신을 가진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 믿으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쓰셨던 이사야 라고 하는 귀한 하나님의 사자가 은혜 받는 광경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으로, 우리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사야6:1-4 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 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아멘. 웃시야는 유대나라의 10대 왕 입니다. 이 왕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 잘 살다가 나라가 평안하고 온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국가의 위상이 지위가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중에 교만하지 않습니까. 영적 교만이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버리시므로 이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지요. 지도자는 건강해야 되고 지도자는 안정이 있어야 하지요. 이렇게 되는 온 나라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리고 떠나가니깐 온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정신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빠졌을 때에 이사야는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권력을 쫓아가다가 권력이 떠나가니, 부귀영광을 따라가다 떠나갈 때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래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오게 됩니다. 물론 그가 올 때는 외롭고 허무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가지려고 왔지만. 교회는 들어올 때는 그렇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들어와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는 왕족 이였습니다. 웃시야를 높이 보는 한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웃시야가 있는 한 하나님의 계심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웃시야가 주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는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누구든지 은혜를 받을 때에 첫 단계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첫 발걸음이 웃시야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만의 웃시야가 있습니다. 물질에 웃시야가 있습니다. 권력의 웃시야가 있습니다. 지식의 웃시야가 있습니다. 행복의 웃시야가 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가 떠나갈 때 사랑하는, 믿었던 남편이 떠나갈 때, 아내가 떠나갈 때, 외로워서 웃시야가 죽고 나니 견딜 수 없는 허무함과 좌절감으로 아버지께 나오는 것입니다. 건강에 웃시야가 떠나갈 때 여기에 나옵니다. 지식의 웃시아가 무너져야 주님께 나옵니다. 사실, 지식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지식이 있다고 죄 사함이 주어지는 것 아닙니다. 지식은 진리는 아닙니다. 지식은 미래를 향해 어떤 보장도 없는데도, 사람은 그것을 믿기 마련인 것입니다. 조그만 웃시야만 있어도 사람은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우리의 행복을 주는 것 아닙니다. 기쁨을 주는 것 아닙니다. 천국 문을 열어주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지식으로 천국 문을 가로막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가 이 웃시야가 떠나간 다음에 우리는 영적 문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이 광경이 우리가 보아야할, 누려야할, 우리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과정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웃시야가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성전에서 첫 번째가 하나님이 높이 들리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높으십니다. 웃시야가 높은 줄 알았지만. 비교할 수 없
이 높고 높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높으신 것입니다. 바로의 자리도, 웃시야의 자리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만이 영원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본 것이 무엇입니까?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가득한 곳입니다. 교회는 주의 옷자락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가 주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은혜를 받고, 주의 옷자락이 우리를 덮으면서, 내
허물이 덮여지는 것입니다. 머리털보다 많은 죄악이 우리의 상처가 우리의 허물들이 옷자락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입니다. 오늘 독창 허 집사님이 해주셨던 것처럼, 부모님의 사랑의 옷자락도 좋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옷자락도 있고 권력의 옷자락도 있지만, 그 옷자락은 우리
를 다 덮지는 못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옷자락으로 덮었다가도, 조그만 허물이 있으면 허물을 들추어냅니다. 주님의 사랑의 옷자락만이 우리를 다 덮어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영원 하시도다. 주의 사랑이 오늘도 여러분을 옷자락으로 덮어 주실 줄 믿습니다. 성전은
교회는, 주의옷자락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옷자락이 우리를 덮는 시간이예요. 이것을 우리가 알고 나와야 되요. 상처 입은 내 마음 더러워진 내 몸과 마음. 어느 것도 다 덮어 주시는 주의 옷자락이 가득한 곳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절 3절 (천사들이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당연히 오늘 입교 세례 문답을 받은 모든 사람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교회는 거룩한 곳 이예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섬기는 곳입니다. 교회가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드릴 때, 아버지께 나올 때, 항상 두려움으로 나와야 합니다. 스랍과 같이 나와서 섬겨야 합니다. 천사들이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었어요.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내 얼굴을 드러내면 안됩니다. 내 얼굴을 가리어야 됩니다. 헌금할 때도 봉사할 때도 섬길 때도 얼굴 들어낸 사람은 교회에서 시험 듭니다.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는 교회에 오래 있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 이름만 높이고. 거룩하게 그를 섬기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어저께 장관으로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하는데. 목사님, 저는 성가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제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누구든 간에 만군의 여호와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떤 사람도 자기 얼굴을 들어낼 수 없습니다.
제가 순천에 집회간 곳에서 건축헌금을 하는데, 교회에 내는 번호는 전부 자기 이름을 지우고, 두 개를 적어서 교회에 내는 것은 이름 없이 나는 얼마 하겠다. 100% 이름 없이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만 이름을 가지고 약속을 하는 거예요. 금년 연말까지 내가 얼마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감추어야 합니다. 작가가 자기 이름을 다 감추고, 작품만 내어놓듯이 우리 하나님 앞에 위대한 거룩한 예배를, 여호와의 이름만 드러내는 거룩한 영광을, 내 얼굴을 가리울 때만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 발을 가리었습니다. 교회는 발을 가리우는 곳입니다. 발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더러워진 발. 나를 드러내면 다 추해집니다. 대단한 것 같아도 내어놓으면 사실은 별 것 아닙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영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내 발을 가리우고, 예배 드리고 발을 가리우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날개로 날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늘, 하나님 앞에 대기하여 있는 믿음의 자세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를 함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도들만이 교회에서 거룩하게 영원히 보존되고, 또 영원히 거룩한 나라에 들림 받을 줄 믿습니다.
5절,6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이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첫 번째 이사야의 경험은 성전에 대한 경험입니
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경험입니다. 무슨 경험입니까. 천사가 화저로 불길이 이글이글 하는 화저를 가지고 내 입을 지지면서 이사야를 정결하게 했습니다. 깨끗하게 했습니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죄인인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도' 교회는 죄인으로 남
아서는 안됩니다. 의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죄인으로 들어와서 정결함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숯으로 자기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여야 합니다. 죄는 사해야 합니다. 죄는 벗어야 합니다. 어떤 학자는 죄는 지을 때는 아침이요 죄가 가는 곳은 캄캄한 밤이
라고 했습니다. 모두다 철모르고 지을 때는 죄 짓고 항상 아침같이 밝게 사는 것 같지만은 죄가 이끄는 곳은 서향으로 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캄캄한 지옥으로 멸망으로 불행으로 100% 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숯불만이 부저만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생명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은혜의 길로 나아가게 할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앞으로 나와 정결함을 얻은 자의 행복 이 행복만이 빼앗길 수 없고 이 행복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옷자락이 가득한 것도 경험하고 거룩함도 경험하고 영광스러움도 경험하고 하나님의 높으신 것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죄가 사하여 지는, 내가 거듭나고 새로워지는 정결해지
는 이 깨끗함의 과정을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나를 향하여 박수하고 거룩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거룩하다 인정해 주지 아니하면 안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주의 거룩한 나라의 일꾼으로 우리를 들어 쓰실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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