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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자가 천을 이루겠고… … (사 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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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가 천을 이루겠고…(사 60;1∼3, 19∼22 )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22절)

일당백(一當百)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100명을 당해낸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일당백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자라고 연습한 318명으로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함께 세 나라의 연합군을 물리쳤으니(창 14;1∼16) 아브라함과 그의 군대가 일당백의 사람들이요,가나안 땅을 평정한 여호수아가 일당백의 사람입니다. 나실인인 삼손 사사는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였고 기드온 사사와 많은 선지자들 역시 모두 일당백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 60장은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의 귀환 후에 자기 땅에서 누릴 번영에 대한 말씀인 동시에 메시아 왕국의 도래와 그 왕국에서 성취될 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는 말씀처럼 빛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운 세상에 임하실 것이고 그 분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게 하므로 모든 세상 사람들은 사면에서 모이게 될 것입니다. 열왕의 재물도 네게로 모일 것이고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될 뿐만 아니라 큰 번영이 이루어져서 “땅을 영영히 차지하게 될 것”(사 60;21)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둠을 비추는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불의와 세속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고 의롭게 사는 것은 바보들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열방이 빛으로 나오고 열왕은 비추는 네 빛으로 나오리라”(사 60;3) 했는데 이 예언은 거짓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빛을 받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비추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타락된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처럼 이 세상이 혼탁하고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교회가 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고 일어나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사야 60장의 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22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작은 자(미미한 존재)가 천을 이루면 됩니다. ‘일당천’의 사람이 되면 불의와 악이 없는 메시아의 왕국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일당천의 사람이 되려면 “여호와의 영광이 임해야 합니다”(사 60;2). 하나님의 권능의 신인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의 사람,일당천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삼손 기드온 다윗 엘리야 엘리사들도 성령이 임했을 때에 권능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사 60;22) 우리 모두 때를 만듭시다. 주의 성령이 임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말씀으로 사는 훈련,신앙훈련을 합시다. 그래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때 일당천의 사람이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그러면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임재 속에서 승리합시다. 천국을 이루어갑시다.
/이준성 목사(역촌성결교회)
여화와를 앙망하라(사 40:27-31)

31절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 포로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잡혀갔습니다. 잡혀갈 때만 해도 다시 돌아오겠지 하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세월이 자꾸만 흐릅니다. 1년 10년 20년 30년 46년 고향 떠났을 때 30대의 팔팔했던 청년이 이제는 죽음의 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50년이 지나고 60년 흐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죽어나갑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는 것만이 두려움이 아니라 아예! 고향으로 돌아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적 상황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쳐갑니다. 이스라엘이 포기하게 됩니다. 변질되어 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에 귀화를 하고, 조국을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이젠 생각조차도 혈동과 조국을 지키기 보다 어떻게 해야 바빌로니아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하며 변질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가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사람에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이여! '하나님을 앙망하라'
앙망의 뜻이 무엇입니까?
믿고,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렵습니까? 지치셨습니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까?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습니까?
그럴수록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내 지식이나 내 지혜, 내 능력, 내 배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앙망한다라는 말은 '바라본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골 3장에서는 '너희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흔들거리게 하는 환경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대통령의 말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하는 말 중에 '깽판' 이라든지 심지어 이러다가는 '대통령직 수행을 못해먹겠다'라고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이런 말로 인해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아니 대통령이 저러면 우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부시 대통령은 이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에 두렵기도 합니다.
상반기 경제 성장이 극도의 불황에 시달린다는 말에 염려가 찾아옵니다. 과연 우리의 내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사방에서는 전쟁이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입과 입으로는 공공연하게 다음의 전쟁은 시리아나 이란이나 우리나라에서 터질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노 대통령도 이번에 방미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는 말이 오히려 우리의 긴장감을 부추깁니다.
¼분기 경제 분야도 유래 없는 불황이라고 합니다.
교육분야에서는 전교조가 중심이 되어서 집단 휴가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이미 화물노조가 파업을 해서 한국의 수출 길을 다 막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했던 금융감독 위원장들이 줄줄이 교도소에 수감이 됩니다. 비서실장, 경제수석보좌관 이러다가 교도소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우리의 기초질서는 어떤 모습입니까?
아직도 자동차 안에서 길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눈에 뜨입니다. 먹다버린 과자봉지들 아이스크림 껍질들이 바람에 뒹굴고 있는 모습들은 어느 곳에서나 보게 됩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살려고 바르게 살려는 것이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시 42편에서도 신앙 인들을 향해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도다 우리가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는 세월을 한탄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불안하고 염려하면서 얼굴만 붉힌다거나 비탄에 빠진 채 신음만 할 수는 없습니다.
시 42:4에서도 '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베드로도 바다 위를 당당하게 걸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풍랑이 앞을 가로막자 순간 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물 속으로 빠뜨리게 한 것이 바람이었을까요? 풍랑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물 속으로 빠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고 풍랑이 거칠어진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의지하였더라면 절대로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 62편에서도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하나님만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또 10절과 11절에서도 '네 뼈를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네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라'
왜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까?
그것은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이었던 전경환씨가 새마을 운동의 본부장으로 있을 때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수갑을 차고 수감이 되자마자 그 집 문 앞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 거리 질 않더랍니다.
이게 사람의 모습입니다. 달면 삼키려고 하고, 쓰면 뱉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로 변하질 않습니다.
낮에는 졸지 않으시고, 밤에는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낮에 해가 상치 못하며 밤엔 달이 해치 못하고 강물이 삼키지 못하며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지키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다윗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앙망하는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은 어떤 역사를 나타내실까요?
31절을 보십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첫 번째> 새 힘을 얻는다' 어떤 새 힘입니까?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다'
저는 내일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떠납니다. 비행기를 보세요!
수백명을 태웁니다. 엄청난 화물을 싣습니다. 그 비행기자체 무개만도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트 여객기는요 30초만 지나면 땅에서 하늘로 쏴악 솟구쳐 올라갑니다.
육신도 이렇게 높이 높이 올라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염려와 걱정과 불안과 근심 속에 깊이깊이 빠져서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아직도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다 잘된다는 자기자만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돈이면 다다'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돈이면 다됩니까? 그렇다면 왜 4천억원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럭대었던 사람들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입니까? 소망의 성도들이여!
하나님을 앙망하세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나의 인생을 맡기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처럼 하늘을 솟구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타보셨나요?
땅에서는 먹구름이 깔리고 번개천둥이 치고, 캄캄해도 비행기로 올라가면 그곳엔 찬란한 햇빛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는 그 잘난 세상의 것들을 분토처럼 다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독수리처럼 솟구치게 해서 모든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당당하게 우리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하나님을 앙망하다가 염려과 근심의 사슬이 끊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독수리와 같은 새 힘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앙망하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런닝머신에서 2㎞를 달린 후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냥 가슴이 꽝꽝 뛰고 뒷머리가 어지럽고 겨우 런닝머신에서 2㎞를 달렸을 뿐인데도.. 그런데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얼마나 힘든 일들이 많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달음박질하는 우리를 보고 사방에서 우겨 쌈을 당하기도 할 것이고, 답답한 일을 만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쓰러뜨리려고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0년 목회를 뒤돌아보면 정말 이런 일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제 목회 일지에는 어려웠던 일도 적어 놓았고 새 힘을 얻었던 일들도 기록해 놓았는데 지금도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들을 적어 놓은 것을 잘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어려웠던 것들이 떠오르면 앞으로 남아 있는 목회에 또 그런 일들이 터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웠던 기록을 읽지 않는다고 어려운 일들이 터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해야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았던 사도바울은 아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나를 인도하신다고 하였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사방에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으며
70번씩 7번이라도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달리는 인생 속에서도 승리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는다 할 것입니다.
다시 31절을 보세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걸아 가도 피곤치 않다' 하였습니다.
여기 '걸어간다'라는 말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밥하고, 학교, 직장 보내고, 시장 가서 찬거리 사오고, 또 저녁하고, 그 귀찮은 설거지하고 1,2년 지나고 보면 계속 계속 이런 생활을 하면 인생이 무미건조해 집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땅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것이 바로 이 무미건조한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 보세요. 하나님을 앙망해보세요.
언제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고, 딴 생각이 나고 짜증이 납니까?
옛것은 지나고 새것이 되게 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계속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면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의의 면류관, 수정강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어찌 우리가 따분해 질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사람보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마세요.
여건 때문에 우울해 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앙망하여 새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독수리처럼 이 땅에서의 염려와 걱정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인생 70이요 80을 살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곤비치 않는 성도들 매일의 생활에서 짜증이 아니라 찬송하며 기쁨으로 하루 하루를 승리하는 소망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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