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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 높은 곳에 서게 하소서 (사 33:5-6,15-16)

첨부 1


사람에게는 두 가지 길과 두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에 속한 길과 육에 속한 생명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길과 영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생명이요, 하늘에 속한 생명을 영적인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두 생명이 다같이 귀하지만 영적인 생명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잘 되는 길은, 영육이 다같이 잘 되는 길은 영적 관리를 잘 해야 하고 영적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육적으로 너무 예민하고 이해관계에 예민합니다. 흥분합니다. 긴장합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긴장합니다. 이것이 몸에 좋은지 나쁜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먹을 것이 없어지면서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어느 것은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고, 이것은 암 예방에 좋고, 이러고 저러다 보니까 우리는 정말 먹는 시간도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 인간의 육신의 삶은 그렇게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모든 삶도 우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좀 과하면 과한 대로 몸이 다 감당할 수 있도록 되어져있다. 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꼭 보호를 해주어야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어도 스스로 이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도 암에 걸려서 십이지장, 위장을 다 잘라내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 밑으로 바로 내려갑니다. 그런데도 이 분은 건강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모든 몸이 다 없는 것을 알고 이 전체를 자기 하나가 부담을 한답니다. “아, 내가 책임을 져야 하겠구나.” 그리고 전체를 감당한답니다. 쓸개가 없는 사람도, 쓸개 없는 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면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몸이 다른 곳에서 그 역할을 해 준다고 합니다. 간 기능도 그렇고 다 그렇대요. 너무 예민하게 이러면 어떻게 하나? 이
것 먹으면 안 된다. 이렇게 긴장하며 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 나쁜 것 먹어도 몸이 그걸 처리해 준다. 라는 거예요. 난을 잘 기르는 길은 전문가에 의하면 난을 미련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구, 빨리 물 주어야지.” 아침에 주고, 저녁에 주고 하면 뿌리가 썩어서 난을 잘 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이틀, 사흘에 다 죽어갈 것입니다. 이럴 때 한 번씩 주고 그래야 난을 잘 기른다고 합니다. 저는 한 십여 년 전에 지방에서 동백분재를 선물 받았습니다. 너무 귀한 것을, 아끼던 것을 목사님이 선물로 주어서 저희 집에 기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만 추우면 방안으로 들여오고, 조금 더우면 밖에 내어놓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봄이 되어 분재가 죽어버렸어요. 겨울을 못 나고 죽었어요. 나는 이것을 집사람 잘못이라고 이것 때문에 대판 싸움이 일어났어요. 도대체 뭐하는 거냐? 집안에서 왜 이렇게 추운데 들여오지 않았느냐? 왜 밖에 두었느냐? 이것 때문에 서로 얼마나 싫은 소리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집사람이 하는 대로 두었더라면 이 분재는 살았어요. 내가 이것을 죽인 거예요.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분에게 물어보니까 분재를 잘 기르는 길, 동백을 살리는 길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두어야 이 자연에 대해 적응하는데, 이걸 자꾸 옮기니까 적응을 못하고 감당 못해서 죽었다. 라는 거예요. 나 때문에 죽은 거예요. 집사람이 죽인 게 아니에요. 가만히 두면 잘된다는 거예요. 너무 과잉보호, 과민하게 예민한 것이 다 병이 된다는 거예요.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봄이 되면 제일 많이 사오는 게 뭐냐? 병아리를 사오는 거예요. 병아리가 일주일을 못 넘기고 다 죽는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너무 귀히 여기니까요. 학교 가면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니 병아리가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가만히 두면 살 텐데, 먹을 때도 옆에 데려다가 입 벌리고 집어 넣어주고 그러니까 못 사는 거예요. 가만히 두어서 자기가 먹도록 해 주어야 할 텐데, 데리고 이불을 덮고 자니까 이 병아리가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의 행복이 어디 있느냐? 건강이 어디 있느냐? 인간이 이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육적으로 너무 지나칠 정도로 보호하려고 하는 거예요. 조금도 안 추우려 하고, 조금도 안 더우려 하고, 조금도 손해나는 짓 안 하려고 하고, 손해나는 것 안 먹으려고 하니 몸도 마음도 육체도 다 망가진다. 라는 거예요. 성경은 오히려 위대한 민족들은 오히려 육체를, 정신적으로 강건하기 위해서 오히려 훈련을 시키고 자극을 주고 어려운 일에 적응할수록 신체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강해진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영적인 삶에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고, 인간의 미래가 어디 있고, 영혼이 어디 있느냐? 라고 말하면서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정의고, 진실이고, 이런데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뇌물을 받지 아니합니다. 악한 자와 손을 잡지 않아야 합니다. 불의한 일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더럽고 추한 길은 가면 안 됩니다. 삶은 되는 대로 살고 아무 짓이나 다 하면서 그렇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육적인 일에는 관심을 많이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를 기르는데도 너무 과보호합니다. 과보호가 자녀를 잘 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청소년 문제가 어디에서 오느냐? 부모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콧물도 하나 안 흘리게 하며 요즘 기르고 있는 거예요. 침 하나도 안 흘려요. 감기 하나 걸리면 비상이 걸리는 거예요. 울음소리 하나 안 들리게 하는 거예요. 애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을 어떻게 아느냐? 우는 것 가지고 알아야 하는데 애 우는 소리 하나도 안 들리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감기 하나 들면 죽는 줄 아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감기 들리고, 아프기도 하고, 콧물도 흘리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하는 게 아닙니까? 많이 울수록 나중에 우리 임 집사님 같이 노래도 잘 하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길러야 하는데 아이한테 돈을 갖다 부어 가지고 아이를 금덩어리로 길러내는 거예요. 이게 잘 기른다
고 생각합니까? 훌륭한 어머니라고 생각하세요? 조그만 백 일도 안 되는 아이는 그냥 맨발로 걸어가야 좋은데 양말 신기고, 가죽구두 신기고, 애가 어떻게 살아요? 답답해서 못 살아요. 장갑 다 끼워서 나오는 거예요. 우리 모두 자유함을 얻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일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육적으로는 우리가 좀 편안하게, 적당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까? 꼭 최고로 입어야 되고, 최고로 잘 살아야 되고, 잘 먹어야 돼야 합니까? 저에게도 집사님들이 “목사님, 여기 살기 너무 좋습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여기 오세요.” 어디가 좋단 말이에요? 우리가 제일 좋은 곳이 좋다는 생각 가지면 안 돼요. 육적으로는 오히려 조금 낮추어 사는 것이 좋아요. 우리는 올라가야 하고, 우리는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영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돼요. 도덕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위로 올라가야 돼요. 어떤 분이 그런 말씀하세요. 우리나라에 외국 명품들이 엄청나게 팔려 나가는데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있는 명품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가짜보다 좋은 게 아니래요. 왜 그러냐하면 지금은 이태리나 프랑스에서 물건을 대체로 어디서 만드느냐? 중국에서 만들고, 인도네시아 등 값싼 시장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솜씨가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가 만든 것이 가격이 십분의 일도 안 돼는 것이 더 질기고, 바느질도 더 잘 하고, 디자인도 더 좋다는 거예요. ‘샤넬’ 하고 들고 다녀도 별 것 아니라는 거예요. 사용해 보면 속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훨씬 낫다는 거예요. 아멘도 안 하고! 꼭 명품만 좋아하고, 최고만 좋아하지 말고, 영적으로 명품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강건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우리는 영적으로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것은 육적으로 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강건하게 하고, 영적으로 깨어있고,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 개인적이나 가정, 민족이 당하는 모든 환란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느냐?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안보의 위험이 크다고 하지만 안보의 위험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을, 구약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안보 위험이 안보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배경이 있고, 뿌리가 있는 것인데 알고 보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잘못 되었을 때에 물질의 어려움이 오고, 가정의 어려움도 오고, 정치적인 어려움도 오고, 안보의 어려움도 오는 거예요. 나는 우리나라의 어려움이 경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기도할 때 정치, 경제 안정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저는 이 나라가 어떤 면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리가 더 고상하고, 개혁하고, 정신적으로 우리가 높은 곳으로 나아갈 때 이 나라의 문제는 해결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 그런 면으로 흐트러져 있습니다. 퇴폐문화가 너무 이 나라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더 무서운 문제예요. 이스라엘을 가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얼마나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민족입니까? 세계를 상대해서, 저 아랍의 70개국하고 싸워도 이 한 나라가 이깁니다. 미국 말 안 듣습니다.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랍이 회의는 해도 공격은 못 합니다. 그러지 말라고는 해도 절대로 싸움 걸지 못하는 것은 걸면 백발백중 전 아랍이 다 쓰러집니다. 몇 번이나 경험을 해서 다 안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이 어디 있습니까? 영적인 힘이에요. 정신적인 힘이에요. 전 이스라엘 국토에 골프장이 2개 밖에 없고요, 술집 하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답답해하는 줄 아십니까? 소금물은 먹을수록 더 답답합니다. 죄는 짓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짓고, 술은 먹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먹는 것이지, 이만큼 먹었으니 됐다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40년 동안 술독에 빠졌지만 그 술독에 더 빠져 들어가지 ‘나 이만큼 먹었으니 끝내야 되겠다.’는 사람 이 세상에 하나라도 있어요? 죄는 점점 더 우리를 목마르게 할 뿐이에요. 로마에 관광객이 일년에 1억 명씩 오지만 술집이 없고요, 네온사인 하나 없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나라에 문제가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이라고 하는 분이 세겜이라고 하는 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믿지만 실질적인 그의 삶은 세겜 이라는 곳에 머물러서 얼마나 영적으로 낮은 곳에 살았습니까? 도덕적으로 낮은 곳에 살았습니다. 가정이 풍랑이 일어나지요. 어려움이 얼마나 일어납니까? 견딜 수 없습니다. 가정이 붕괴되게 되었습니다. 큰 위기가 왔습니다. 그 때에 창세기 35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주시는 말씀이 뭡니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수습하느냐? 뭐라고 하셨어요? “너는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어요. 너 위치에서 올라가라. 너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가정불화가 어디에서 납니까? 가난해서 가정불화가 생깁니까? 정신적인 병이 들었어요. 정신적으로 가난하니까 가난을 못 이기는 거예요. 질병입니까? 자녀입니까? 아무리 가정에 억만 금을 가져다가 주며 보십시오. 여러분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아래에 있는 사람은 가정불화가 그칠 날이 없어요. 모두 성령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민족의 힘은 지하자원이 아닙니다. 땅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 정치 다 비슷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강건할 때 다 소화하고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모든 것 다 이만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도덕이 지금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신문에 보신대로 지리산 반달곰이 지금 붙잡혔어요. 신문에 철조망에 있는 것을 찍었어요. 이 지리산 반달곰을 왜 잡았어요? 왜 가두었어요? 높은 곳에 있어야 할 반달곰이 내려와서 암자를 습격하고, 꿀통을 뒤져서 꿀을 다 먹고, 염소를 막 죽이고 하니까 가두어 버린 거예요. 높이 올라가야 되는데 1000m 아래로 내려오면 안 되는데 점점 내려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내려오면 붙잡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붙잡혔어요. 큰 시험 당했어요. 롯이라고 하는 분은 소돔으로 내려갔다가 소돔성에서 다 잃었어요. 어떤 분들은 출세하고 돈 벌면 지위는 높고 자동차는 높습니다. 음식 문화도 높였습니다. 모든 것 다 높이고 친구들 사귀고 다 높였습니다. 아주 유명한 권력 있는 분들만 사귑니다. 그러나 어두움의 문화는 낮은 곳을 찾아갑니다. 나중에 보면 그 높은 곳에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아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거하지 않습니다.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낮은 곳에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지요. 낮은 곳에 있으니 모르는 거예요. 없는 하나님을 온 인류가, 온 세계 과학이 가장 발달한 민족이 몇 천년동안 믿는 것, 여러분! 하나님 안 계시는 것을 믿을 수 있어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올라가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올라갈 때에 이 민족의 앞날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합니까? 영적 높은 곳을 찾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가정이 되길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높은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도덕 수준을 높이십시오. 여러분의 이상과 꿈을 높이십시오. 봉사를 낮은 곳에서 하지 말고 높은 곳으로 봉사를 이끌어 내십시오. 미국에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사모님은 결혼 전에 그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는 미남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부자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가문 좋은 남자도 원치 않습니다. 지식 많은 남자도 원치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믿음 좋은 남편을
원합니다.” 영적으로 높은 자리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 결혼관도 이런 높은 결혼관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미래도 우리의 삶도 이런 곳을 찾아 나갈 때 우리는 조금 없는 어려움, 조금 가난함, 조금 시험 드는 것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높은 곳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를 받기 위해서 높은 곳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저주와 슬픔이 없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없습니다. 그런 것 하려면 여기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는 불의와 죄악을 쫓는 자들이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멸망과 사망을 벗어나서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목표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는 이 세상의 낮은 곳에 있는 이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멀리하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온갖 음란과 방탕과 술 취함과 술수와 원수 맺고 당을 짓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높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에게로 나오는 줄 믿습니다. 제가 어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삼익 아파트에서 내려오는데, 자기는 이미 가정이 끝나서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자살하기 직전에 내려오는데, 우리 교회에 몇 년 전에 포스터가 붙었는데 ‘세상을 이기는 삶’ 이 붙었더래
요. 세상을 어떻게 이기느냐? 괴로운 이 세상, 세상이 이렇게 싫은데 세상을 어떻게 이기냐? 이래 가지고 나왔어요. 나와서 은혜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어요. 세상을 정말 이긴 거예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못 이겨요. 높은 곳에서 이기는 거예요. 모든 어려움은 낮은 곳에 기체가 흔들리는 거예요. 마음이 흔들리는 거예요. 여러분, 비행기를 타 보신 분은 잘 아실 거예요. 비행기는 낮은 곳에서 뜰 때가 어려워요. 그래서 20분, 30분까지는 모든 직원, 승객, 스튜어디스, 기장 다 긴장하는 거예요. 다 붙잡아 매고, 말도 안 하고, 의자도 전부 세워 가지고 긴장하는 거예요. 내릴 때도 똑같아요. 긴장하는 거예요. 내릴 때가 됐습니다. 전부다 몸을 동여매는 거예요. 긴장하는 거예요. 왜 그래요? 내려오니까 그래요. 비행기 사고가 90%가 전부 낮은 곳에서 생기는 거예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문제가 안 생기는 거예요. 어떤 분은 고공증이 있어서 높이 올라가면 겁내는 분이 있어요. 아이고, 높이 올라가면 미국 사람들은 그냥 다 자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나라 경제가 내려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에요. 도덕적으로 내려가는 게 무서운 거예요. 영적으로 흐트러지고 내려갈 때가 나라가 흔들리는 거예요. 우리의 어려움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지난번에 일본에 가서 놀란 것은 일본 동경 시내 땅값이 10분의 1로 떨어진 거예요. 세상에. 그렇게 떨어져도 일본사람들이 안 흔들리는 거예요. 말도 하나 안 하고, 표현도 하나 안하고, 우리는 조금만 떨어져도 아이구, 어메야, 온 나라가 눈꼽만큼만 떨어져도 그러는 거예요. 우리 모두 이런 일에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고, 그러나 영적인 일은 민감해야 돼요. 이것은 내 영혼이 사는 길이요, 영원히 사는 길이요, 모두가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교회 나와서도 낮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민들레와 같이 낮은 곳에서 뿌리내리구요,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이건 왜 그러냐? 아직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도 애굽의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쫓아가고 이중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에요. 교회 와서 이중적인 믿음을 가지면 이중적인 생활을 하면, 영적으로 연약해지는 거예요. 낮은 시험이 많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것을 하나하나 끊기 위해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할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철학은 간단합니다. 육적인 것은 적당하고 영적인 것은 최선을 찾고 잘 믿으려고 하고 입는 것은 적당하고 먹는 것 적당하고 항상 적당한 선에서 우리를 찾아야 해요. 우리 사는 집도 적당하면 되고 자동차도 적당하면 되는 거예요. 아멘도 안 하네. 할렐루야!
그러나 영적으로는 적당하면 안 돼요. 영적으로는 높이 올라가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살아보면 육적인 것은 대단한 것 같아도 살아보면 다 그게 그거예요. 제가 1985년 해외 집회를 처음으로 괌에 가서 했어요. 괌에 갔다가 이 세상에 괌같이 좋은 곳이 어디 있나? 환상적이에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일본 사람을 비롯해서 동남아의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곳이 괌이에요. 우리 괌에 최 목사님이 그 곳에서 제일 큰 교회를 맡고 계시거든요. 우리교회 부목사님으로 계시다가 그 곳에 담임목사님으로 계시는데 이번에 휴가를 왔어요. 오시더니 하시는 말이 괌이 그렇게 좋지만 2년 동안 사니까 별로라는 것입니다. 일주일 관광객이 볼 때는 대단한데 2년을 지나니까 괌도 별로 갈 데도 없고, 섬이고 또 관광객이 즐기는 것을 현지인이 하는 것도 아니고, 길도 꼬불꼬불하고, 쭉 뻗은 길이 없고, 2년 만에 돌아와서 인천 공항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들어오니 가슴이 확 뚫린다고 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는 것 같다 그러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한 달만 있어봐라. 한 달만. 서울 몸서리 낸다.” 세상이요. 잠깐 보면 굉장히 좋은 것 같아도 가보면 그래요. 결혼식이 너무 좋은 것 같아도 사흘만 지나 봐요. 대학에 들어가는 거 울고불고, 야단이지만, 들어가 일 년만 있어 봐요. 머리 길게 기르고, 담배 피고, 힘이 빠져 가지고, 이 세상에 좋은 것이 어디 있어요? 영적으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영적인 것을 쫓아 힘쓰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있습니다. 한 번쯤은 우리가 다 이 책을 읽어보았을 거예요. 멕시코 해
변에서 조각배를 타고, 조그만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갑니다. 조그만 소년하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데 40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노인 혼자서 바다에서 끊임없이 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립니다. 드디어 83일 만에 바다에 큰 고기가 떠오릅니다. 흥분하고 감격합니
다. 결국 고기를 잡게 되는데, 생명 걸고 몇 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여서 고기를 잡아서 배에 매고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오다가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많은 상처를 입고, 이 노인이 기진맥진하며 겨우 살아서 돌아와 보니 고기는 이미 다 뜯겨 버리고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습니
다. 뒤따라 오는 고기들에 의해서 다 뜯겨지고 나중에는 빈 배, 빈 몸, 상처밖에 없고 결국에는 집으로 혼자 들어가 쓸쓸하게 잠을 자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이 육적으로요. 저도 우리교회도 별의별 유명한 사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영광을 누리려고
몸부림 쳤지만 지나놓고 보면 다 헛된 거예요. 지난주에 제가 우리교회 장군 출신들하고 식사를 했어요. 우리교회 별이 하늘에 별만큼 많습니다. 반짝반짝. 그 별 얻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별 몇 개씩 다는 것이 간단한 일입니까?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별도 다 떨어져 나갑니다. 잠깐이에요. 얼마나 힘들여 잡은 큰 고기이지만 지나고 보면 다 나가는 거예요. 몸이 아프고 병들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 걸고 너무 고기 잡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멀리 바라보고, 믿음 지키고, 양심 깨끗하게 관리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관리하고 자녀들도 믿음
으로 잘 기르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끝까지 살아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온 모든 성도들. 이 세상 살면서 영적으로 무 관심하는 성도가 없게 하여 주시고, 항상 영적으로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고 사모하는 복된 성도들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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