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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하고 격려하라 (사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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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로 쓰러져 의식불명인 형을 지키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말, 완벽한 성서 귀절,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의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침대 옆에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긴 침묵이 이어졌고, 돌아서서 동생과 악수를 했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손을 잡았고, 힘을 주었으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형이 죽고 여러 해가 흘러도 동생이 기억하는 방문객은 조용히, 진심으로, 꾸밈없이 위로하던 그 사람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정작 상대방이 바라는 건 조용히 들어주는 것과 잠시나마 안아주는 따뜻한 포옹이었는데도 내 말을 더 많이 하고 내 말을 더 들어주기를 원하여 상대방의 정신을 어지럽게 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봅시다.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러 왔으나 욥은 친구의 말이 오히려 고통이 되었습니다.(욥2:11) 우리는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내 주위에 내 작은 위로가 필요한 곳은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사업에 실패한 사람, 돈이나 권세가 없는 사람입니까? 어려울 때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가 가장 불쌍합니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전도서 4:1) 종말의 때는 삶의 패러다임이 너무나 급변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사업에서 실패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자녀들의 문제로 많은 가정들이 상처들이 입습니다. 영적 공허함으로 지친 사람이 많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삶이 편하게는 되었지만 거기서 오는 많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함께 삶을 나누지 못하고 마음의 깊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뼈와 관절의 심한 질환으로 언제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적응하지 못해 늘 소외됐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교훈과 격려였습니다. 아버지는 '너의 상처를 찬란한 별로 만들라'고 말하며 꿈과 힘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후에 영국외과학회 회장, 국제외과학회 회장을 지내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현대성형수술의 창시자인 해리 플래트 경입니다. 그는 1986년 1백세로 작고했습니다.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대학 졸업을 하루 앞둔 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졸업생을 위한 환송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대학총장인 존 호프만 교수와 함께 길을 걷게 된 데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총장 사택 앞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총장은 필 목사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게 ! 나는 자네를 참으로 좋아하네. 그래서 평소에 눈여겨보았었는데, 자네는 참으로 소질이 많은 사람이야. 장차 큰 인물이 될 걸세. 내 말을 명심하게.'
필 목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총장의 말을 머리에 되뇌었습니다. 대학졸업을 앞둔 마당에 총장으로부터 그러한 칭찬을 들었으니 누가 뭐래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겠는가 ? 그는 그 날뿐 아니라 평생토록 총장의 말을 간직했고, 또 그러한 인물이 되고자 애썼습니다. 한 마디의 격려가 그의 일생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일에 대한 성취 여부는 그 동기가 크게 좌우합니다. 대학 총장의 격려 한 마디가 그러했습니다.
한 사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마디의 격려가 아닐까요. 어릴 적 부모님의 따스한 한마디, 선생님의 신뢰 어린 격려 한마디로 인생의 좌표를 굳게 설정한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비록 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물결이 모여 큰 물결이 되고, 그 힘은 일찍이 꿈꾸지도 못했던 거대한 제방을 허물어뜨립니다. 부모와 선생님의 격려 한마디. 우리 인생 진로에 미치는 영향력, 참으로 지대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한 근원도 그때 그 분의 격려 한마디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너무들 각박하게 사느라 그 고마움을 잊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까? 위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이 명하신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고후13:11)
본문 1절에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우리는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위로하되 2절에 “정다이”말하라 하셨습니다. 위로는 던지듯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다정히 친절하게 전해야 합니다. 많은 말보다 함께 해주고 울어주고 정답게 감싸주는 것이 힘있는 위로가 됩니다.
위로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3절). 광야처럼 거칠고 메마른 심령으로는 위로할 수 없습니다. 남을 찌르는 비판이나 상처 주었던 마음으론 위로할 수 없습니다. 교만의 골짜기, 세상 자랑하는 마음도 낮아져야 하나님의 위로를 전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8절)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말, 내 경험, 책에서 본 내용으로 위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말라버리고 시듭니다. 영원히 남는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할 때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데드맨 워킹’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 팔리 신부와 검사 같은 ‘법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 헬렌 수녀와 같이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사형수 매튜와 같이 죄지은 인생입니다. 이중에 헬렌 수녀는 사형수와 같이했고 기도해주었고 살려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우리들 역시 헬렌 수녀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갈길 몰라 헤매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기도해주고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며 삽시다.
둘째,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롬15:5, 고후1:3,4)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본문 가운데 첫 절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근본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하였습니다
셋째, 우리도 다른 이에게서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고후7:7)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형제자매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과오 중 하나는 자기보다 어린 형제자매들에게 격려 받는 것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어린 형제이건 성장한 형제이건 다른 형제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다면 남을 격려할 밑천도,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격려하는 것이나 격려 받는 것은 둘 다 특권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남을 격려하는 것이나 남에게 격려 받는데 인색하거나 체면 차리지 말기 바랍니다. 격려와 위로는 성장한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닙니다. 사랑과 선행의 격려는 서로서로 하는 것입니다.
넷째, 서로를 온전케 하고, 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해주기 때문입니다.(고후1:6)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지휘자의 고백입니다.
'나는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나보다 훨씬 먼저 바이올린을 시작한 동년배들에 둘러싸여서 교내 교향악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악보를 읽는 법은 알았지만 좌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손가락은 모두 엄지손가락처럼 여겨졌고 활을 켤 때마다 기관차가 브레이크를 잡는 듯한 쇳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집에서 눈물겹게 연습했습니다. 두 마리의 애완용 고양이가 집밖을 돌아다니며 시끄럽다고 울어댔습니다. 나는 제2의 바이올린 주자석에 얼굴을 묻고서 '희망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었습니다. 어느 날 오케스트라 단장이 나의 실력을 점검해 보기 위해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눈물을 찔끔거렸습니다. 그는 조용히 기다리다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연주를 잘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도 알아. 그리고 나는 네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단다. 너는 아주 빨리 향상되었구나,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렴. 나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확신을 심어주는 그 말이 동기가 되어 나는 계속해서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5년 뒤에 나는 고등학교 교향악단의 수석 주자의 위치에 앉았습니다. 내가 동년배들의 말에 굴복했다면 그렇게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고 나를 격려해 준 사람이 상황을 바꿔 놓았습니다.' 상대방을 세워주고 적극적인 자질을 기르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후13:11)
다섯째, 위로는 용기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월터 스콧은 어린 시절 '멍청한 아이'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열등생들이 쓰는 종이모자를 쓰고 교실 한 구석에서 침울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스콧은 문학에 관심이 있어 좋은 시를 보면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가 열세 살쯤 되었을 때 유명한 문필가 모임에 참석했는데 여기서 그의 운명이 변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로버트 번즈가 우연히 스콧의 시 암송을 듣고는 '꼬마야, 너는 언젠가 영국의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 라고 칭찬했습니다. 번즈의 칭찬을 받은 이 '열등생'은 그때부터 용기와 꿈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 1800년대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시인, 소설가, 법관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용기를 복돋워 주는 말은 한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
여섯째, 위로는 상한 심령을 치료해 주기 때문입니다.(사61:1)
휘튼 대학의 교목인 레로이 팻 패터슨 목사님이 어느 날 프로 야구 팀을 위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목사님은 한 선수가 대단히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내 며느리가 아주 열성적인 야구팬인데, 수년 동안 당신을 좋아했었답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그녀는 정말 알고 싶어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놀란 그 선수가 대답하기를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오늘 아침 막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선수의 실력을 칭찬하면서 프로 야구에 계속 남아 있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음 주 그 선수는 야구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목사님께 편지해 왔습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바로 격려의 말이었습니다.
일곱째, 신앙 생활에 열심을 더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행16:40)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작은 마을에, 벤 후퍼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체구가 몹시 작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은 자기 자녀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벤 후퍼와 함께 노는 것을 원치 않았고, 친구들도 그를 놀리며 멸시하였습니다. 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벤 후퍼는 그때까지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젊은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교회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배 시간에 좀 늦게 예배당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축도 시간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 나오곤 했습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주일, 벤 후퍼는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잠시 감동에 젖어 있는 사이에 예배가 끝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벤 후퍼도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면서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벤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 하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환한 얼굴로 벤 후퍼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알겠다. 너는 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어!”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당황하여 빠져나가는 벤 후퍼의 등을 향해서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월이 흘러 벤 후퍼는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주지사 벤 후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그 날이 바로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말씀의 위로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므로 환난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살전3:2,3),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영혼이 소성케 해줍니다. (애1:16)
여덟째, 성도간에 사랑을 돈독히 하고 사랑과 선행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고후7:5-7)
성경에 보면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룻을 위로하고 기쁘게 한 보아스(룻2:13)와 환난 당한 성도들을 위로한 디모데와 바울의 모습(살전3:3) 등에서 성도간의 사랑과 위로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장 많이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근심 걱정이 없는 자가 아닙니다. 그런 자는 이론으로 알고 있을 뿐 피상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허다한 쓰라린 일을 겪고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의 경험을 통하여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의 그 많은 환란과 고통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받은 위로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미국에 뷸라라는 한 성실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갑자기 급성 관절염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몸은 손을 쓸 새도 없이 굳어졌습니다. 오른쪽 손가락의 신경만 왕성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하늘과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전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뷸라는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상의 환자들과 가족, 친구를 잃고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의 전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육체의 장애가 오히려 봉사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너무 깊숙히 감추어 놓았을 뿐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아홉째, 위로는 새 힘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사40:28-31)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것도 특정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고루 재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모나리자’는 밀레의‘만종’과 함께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그가 스케치한 비행기 모형도가 인류가 하늘을 나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의 천동설을 뒤집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 그는 인체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의학자,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낸 발명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스케치했던 자전거 모형도는 현대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폐달과 체인의 모양까지 갖추고 있고 치밀하게 계산된 잠수함 설계도는 수많은 해양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빈치도 어렸을 때는 고아라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는 소극적인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했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힘없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키웠던 할머니는 다빈치가 집을 나설 때마다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여주었다고 합니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던 날까지 그 말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인정해줌으로써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위로와 격려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윌리엄 버클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최상의 의무 중에 하나는 격려의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정열에 찬물을 끼얹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절망시키기는 더욱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좌절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격려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한마디의 칭찬이나 격려의 말로도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위로와 격려는 좌절의 사막에서 헤메이는 사람에게 유일의 오아시스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멀리하고 거부할 때 그에게 찾아가 삶의 소망과 의지를 불어 넣어줄 때 그는 소생할 수가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에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진맥진해서 이제는 더 이상 걸어가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실패하여 넘어져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 버림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격려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옆에서 격려해 주면 얼마나 힘이 됩니까? 여러분 중에 상처받은 심령이 격려를 받아 새롭게 다시 소생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격려 받아 복되고, 이웃을 격려해서 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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