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호와를 앙망하라 (사 40:27-31)

첨부 1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 포로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잡혀갔습니다. 잡혀갈 때만 해도 다시 돌아오겠지 하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세월이 자꾸만 흐릅니다. 1년 10년 20년 30년 40년 고향 떠났을 때 30대의 팔팔했던 청년이 이제는 죽음의 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50년이 지나고 60년 흐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죽어나갑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는 것만이 두려움이 아니라 아예! 고향으로 돌아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적 상황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쳐갑니다. 이스라엘이 포기하게 됩니다. 변질되어 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에 귀화를 하고, 조국을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이젠 생각조차도 혈동과 조국을 지키기 보다 어떻게 해야 바빌로니아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하며 변질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가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사람에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이여!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였습니다. 앙망하라(waitupon)는 뜻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다린다, 혹은 바라본다, 사모한다, 의지한다 란 뜻이 있습니다. 믿고,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렵습니까? 지치셨습니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까?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습니까? 그럴수록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내 지식이나 내 지혜, 내 능력, 내 배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또 '앙망한다'라는 말은 '바라본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스테반이 순교를 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살 때나 죽을 때나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시 42:4에서도 '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베드로도 바다 위를 당당하게 걸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풍랑이 앞을 가로막자 순간 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물 속으로 빠뜨리게 한 것이 바람이었을까요? 풍랑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물 속으로 빠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고 풍랑이 거칠어진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의지하였더라면 절대로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 62편에서도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하나님만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또 10절과 11절에서도 '네 뼈를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네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였습니다.
골 3장에서는 '너희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흔들거리게 하는 환경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졸지 않으시고, 밤에는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낮에 해가 상치 못하며 밤엔 달이 해치 못하고 강물이 삼키지 못하며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였고 다윗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라' 왜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까?

1.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라, 혹은 갈망하라'하는 뜻인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을 사모하라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돈이나 애인을 사모한다고 하면 그것은 왜 사모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요,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그 돈이나 그 애인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요 의지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귀중히 여기고 의지하고 믿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먼 나라에 갔는데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필시 그 부부 사이는 금이 갔거나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남편과 아내로 비유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요 성도들은 그 신부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정상적이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요 그리스도와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갈급히 사모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부간에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금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곧, 예수님의 신부들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야곱은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한 사람이었고 에서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도리어 형만 못하고 도덕적으로 보면 아주 약삭 빠르고 간사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일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의 장자권도 빼앗고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아버지한테 축복기도도 받고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에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앙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퍽 대범하고 너그러워 보이고 남성적이었으나 동생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산 상속권이요 가정의 표요 축복의 열쇠가 되는 장자권마저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해 보이고 신사적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과 같이 그런 갈급한 마음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보면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간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인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시편 42편 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뜨거운 여름에 목이 말라 시냇물을 먹고 싶어서 찾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할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떠나서 터진 웅덩이를 파는 분은 없습니까? 요한복음 7장 37절에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마음이 있고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이지 그런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실 수가 없습니다.
팔복 중에도 첫째가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심령의 배고픔과 갈급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첫째가는 복인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 살았지만 만족이 없고 컬컬함을 느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마셨던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그 심령이 답답하고 갈급함이 있었으므로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 혹은 철야기도하고 싶은 마음, 금식기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다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1미리만 떨어져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도 피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여 항상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의지하고 않고 멀리 떠나는 것을 끌어 당겨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앙망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무능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무능함과 약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서는 살 수 없다고 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사모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의 병은 손만 얹어도 낫고, 손수건만 대어도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는데 자기 몸 속에 있는 병은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기도했을 때 응답이 오기를 '나의 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해 주신다'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가장 부족하고 약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제일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사모하게 합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시련과 고통과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출애굽기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에서 종노릇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왕을 만나서 핍박을 받고 사내아이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벽돌을 굽게 하고 매를 맞게 되니까 그제서야 그 곤욕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장 2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게 한 다음에 그 기도가 상달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는 신호인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낭패와 실망을 통하여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게 합니다. 사람이 실망을 당합니다. 사업에 실패를 합니다. 사랑에 실패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믿었던 것이 무너지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손들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모하고 귀중히 여겼던 것을 하나 하나 그 기둥들을 뽑아 버린 뒤에 실망과 낭패를 당하게 하시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마저 없어 보이고 하나님마저 나를 버렸다고 느낄 정도로 완전히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8절에 보면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 보면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지혜나 재산이나 사업의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일까요?

첫째, 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나의 인생을 맡기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처럼 하늘을 솟구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타보셨나요? 땅에서는 먹구름이 깔리고 번개천둥이 치고, 캄캄해도 비행기로 올라가면 그곳엔 찬란한 햇빛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높은 건물도 높은 산도 아무 것도 아니고 작게 보입니다.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는 그 잘난 세상의 것들을 분토처럼 다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독수리처럼 솟구치게 해서 모든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당당하게 우리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곤비하고 피곤하여 넘어져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새 힘을 주십니다. 마릴린·몬로같은 돈 많은 세계적인 여배우가 왜 자살을 했습니까? 헤밍웨이 같은 유명한 사람은 왜 자살을 했습니까? 세상 것은 사모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더 큰 낭패와 실망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자는 점점 더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다가 염려과 근심의 사슬이 끊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독수리와 같은 새 힘입니다. 독수리처럼 이 땅에서의 염려와 걱정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해야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았던 사도바울은 아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나를 인도하신다고 하였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사방에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으며 70번씩 7번이라도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달리는 인생 속에서도 승리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는다 할 것입니다. 31절의 '걸어간다'라는 말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밥하고, 학교, 직장 보내고, 시장 가서 찬거리 사오고, 또 저녁하고, 그 귀찮은 설거지하고 1,2년 지나고 보면 계속 계속 이런 생활을 하면 인생이 무미건조해 집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땅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것이 바로 이 무미건조한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 보세요. 하나님을 앙망해 보세요. 언제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고, 딴 생각이 나고 짜증이 납니까? 옛것은 지나고 새것이 되게 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계속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면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의의 면류관, 수정강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어찌 우리가 따분해 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셋째,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고 할 때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 되었는데,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나니까 형과 사랑으로 만나는 문제해결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넷째, 구원을 얻습니다.
이사야 45:22에 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사람은 간절히 앙망하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죄인 음부 탕녀 부랑자라도 자기의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어 있고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모해서 나오는 자를 절대로 내어쫓지 아니 하십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이 밥상을 대하듯이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적으로 볼 때 훌륭해 보여도 구원을 못 받습니다.
다섯째,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롬10:11)
이사야 49:23에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사모하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멀리 할 때는 이방 민족을 들어서 자기 백성을 쳤습니다. 그리고 수치를 당한 다음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탕자의 비유 말씀 가운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 없이도 잘 살 것 같아서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난 결과 옷은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 돼지 먹이로 배를 채우며 돼지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벗겨버리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키우고 새 옷을 입히고 내 아들이라고 다시 존귀한 자리를 주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믿음이 식어지고 세상으로 자꾸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실패와 낭패를 당하여 수치와 욕을 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버리워 발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신자들이 믿음이 식어져 맛을 잃어버려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말은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상 2:30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순간순간 앙망하며 마음 속에 주님을 늘 찾고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고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며 도리어 존귀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거름더미와 같이 시시한 데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고 '물 떠난 고기가 살지 몰라도 나는 주님 떠나서는 못삽니다' 하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이 들어 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살아나갈 때에 생각마다 주님을 사모하고 말마다 주님을 증거하고 걸음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이 변치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시25:3)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34:5)
여섯째, 천국을 소유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 가운데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 했습니다. 이 '가난하다'는 뜻은 무엇인가 하면 배고픈 사람이 몹시 배가 고파서 밥 한 술이라도 얻어먹고 싶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는 자는 결국 천국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도 못 받고 천국에도 못 들어갑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잘 살아서 하나님 없이도 산다는 사람은 하나님이 때려서라도 가지고 있던 것 다 없어지고 건강이 없어지고 물질이 없어지고 명예와 존귀가 다 없어진 다음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귀영화가 있고 몸이 건강하고 돈벌이가 잘 되어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앙망하나이다. 하는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일곱째,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신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려면 사모하는 마음이 불타 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l:4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성령)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사모하고 기다리고 바라보라 그렇게 할 때에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사모하며 기다리고 열흘동안 준비하며 기도하다가 마침내 성신의 불세례를 받고 방언이 나오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분명하게 체험하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런 체험이 없이 교회에 나오면 형식이므로 기분 나쁘고 수틀리면 그만 두고 예배당에 나와 앉아도 졸음이나 오고 확신이 없고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신을 받고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가지면 그 이상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 말씀도 많이 보고 그러다 성령을 받게 되는데 그 때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신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그저 줄 테면 주고 말테면 마시오' 하는 자는 결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무디'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못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설교를 하고 나면 어떤 부인들은 꼭 '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줄께요' 하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설교하고 나면 은혜 받았다는 말을 할 때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하면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인데 여기 무디도 자꾸 기도해 주겠다는 말에 나중엔 화를 내자 '당신의 설교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 다음부터 자극을 받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에게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신의 불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어찌나 사모했던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할 정도로 사모하며 오래 준비기도를 하던 중 하루는 뉴욕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서 부랴 부랴 친구집에 찾아가 방을 빌려 가지고 엎드려 기도하는데 기도가 잘 나오더니 마침내 강한 불이 임하는데 어찌 뜨겁고 강한 능력이 나오는지 이젠 너무 뜨거워서 죽을 것만 같아 '주여 그만 주시옵소서 그만, 그만…' 할 정도로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무식한 무디를 따라갈 전도자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그 설교는 다 틀리고 목소리는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키는 작고 보잘 것 없는데 그런 강한 성신의 능력을 받고 세계적인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모하고 매달리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도 못받고 왔다갔다하면 이것은 꼭 예수 믿는 것이 호랑이 꼬리를 붙잡은 것 같아서 안 믿자니 꼭 지옥이 있는 것 같고 낮에 나오라 밤에 나오라 또 이런저런 헌금 남들 하는데 안 할 수도 없고 귀찮고 신앙 생활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고 나면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사모하게 됩니다.
성경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말씀하셨습니다. 마른 땅과 같이 갈한 심령이 되어서 은혜를 사모할 때에 성신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는 비록 도적놈 같은 사람이라도 깡패 부랑자 창녀라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축복을 주십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새 능력 받습니다.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천국을 소유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앙망한다는 말을 성경에서 한 구절 더 찾아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2)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영국의 유명한 스펄전 목사를 회개시킨 구절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갈망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갈망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리듯이 갈급한 심령이 되어서 은혜 받고 성신 받고 다 축복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