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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사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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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은 '종교를 약자의 넋두리'로 보기 때문에 종교라든가 신 앙이라고 하는 것은 약자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진실한 말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이란 약한 존재이며 영원을 목마르게 사모하 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두고 싶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나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전능자가 아니며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자도 아닙니 다. 육체도 정신도 모두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쉽 게 좌절하며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 슬퍼하고 비관하며 불의의 일을 당할 때에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것이 인생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성 공보다도 실패가 더 많은 것, 이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은 마치 전지전능자인양 또는 역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인간을 바로 보지 못한 자기 기만이며 하나 님을 향한 인간의 무서운 오만인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자도 전능자도 아닌 타의에 의해 이 땅에 왔다가 자기가 원하지 않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실패와 좌절이 거듭되고 그래서 낙심하고 비관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자신 의 모습을 솔질하게 인정하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물주 하나님의 존재를 알되 참되고 바르게 알아서 그 분을 믿고 의지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데서 인 생의 행복과 의의를 찾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원하는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행복하고 참되게 인도 해 주시는 거룩하신 사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의미를 잃고 불안과 좌절로 얼룩진 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인생을 구원 하시며 죄와 사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인생을 해방시켜 주시 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말하기를 '너희 눈을 들어 이 모든 것을 누가 창조 하셨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물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 느니라'(사40:26)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오'라고 읊으게 된줄 압니다.

히브리 사람은 하나님을 엘(EL) 또는 엘로힘(Elohim)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이러한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여호 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 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여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 라감과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9-31) 고 하였습니다.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에게 힘을 더해 주시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현장은 늘 인간에게 괴롬과 슬픔을 안겨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허탈과 절망의 늪에 깊이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힘과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용기와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믿는 자에게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문 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때는 약하지만 여호와를 앙망하고 그를 의지하 고 믿을 때 강하게 됩니다. 마치 백지는 그것만으로는 찢어지기 쉬운 약한 것이지만 그것을 벽에 붙인다든지 튼튼한 것에 풀로 붙여 놓으면 강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곧 강하다고 했습니 다. 크리스챤은 약하지만 강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번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업이나 진학에의 의지가 좌절되어 낙심한 사람이 있습니까? 여호와 를 앙망하십시요. 새 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모세나 바울같 은 위인들의 생애를 볼 것 같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경주장에서 실패의 쓴 잔을 맛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경험 중에서 절망하지 않고 여호와를 앙망한 까닭 에 인생을 보람있고 성공적으로 살아 후대에 사는 우리에게 큰 격려와 교훈을 주는 위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내가 약한 자리에서 실망하고 괴로워할 때 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낙심한 나에게 크게 도움 이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낙심해 있는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시는 자 리에서 이러한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 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 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 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 에게로 오리라'(요14:16-18) 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보혜사란 말은 원어로 파라크레토스라고 하며 이 말은 '옆 에 있어서 위로해주시는 분, 또는 변호하시는 분, 돕는 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 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항상 돕는 이로 나타나신다는 말씀입니 다.

여기 실패와 고난 가운데 실의와 좌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고 하면 여호와를 영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한 자는 그 실패와 고난과 괴 로움이 도리어 새로운 발전과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고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고 홀로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그 작은 실 패로 말미암아 더 큰 인생의 실패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 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에 기록한대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 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 여 선을 이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현실적으로 실 패한 것 같으나 그것이 도리어 나를 성숙한 경지로 향상시키는 하나님 에의 '디딤돌'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눈에 실패한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성공으로 가는 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은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감촉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눈물짜고 원망하고 낙심 하지 않습니다.

MRA의 창시자인 북맨 박사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가 무 엇인지 아느냐? 적게 생각하는 것이 큰 죄이다'라고 했습니다.

적게 생각하는 자, 그것은 역사를 긴 안목으로 보지 않고 적게 보는 자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 다.

시편 121편 1절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 하였습 니다. 그렇습니다. 눈을 들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십자가에 높이 달 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불가능의 가능을 믿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눈을 높이 듭시 다. 여호와를 앙망합시다.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가감과 같이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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