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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심판의 세 가지 속성 (겔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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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심판의 세 가지 속성(겔 5:1-4)
 
심판이나 형벌의 대상이 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심판, 혹은 형벌이라는 말 앞에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심판을 당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현대에는 이러한 인간의 욕구가 더욱 강력 하며져서 심판이 없는 종교, 인간을 벌하지 않는 신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향이 자주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죽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히 9:2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작정 경시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을 명확히 알고 형벌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본문에 기록된바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칼로 치고 불사르는 등 에스겔의 일련의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진 성격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강조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요?
 
1. 지극히 공의롭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첫 명령은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울(모젠)'은 흔히 천칭이라 부르는 무게를 다는 도구입니다. 이 말은 '무게를 달다'는 의미를 가진 '아잔'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아잔'은 '깊이 숙고하다', '귀를 기울이다'(신 1:45;시 77:1)라는 의미를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달아(미쉬칼)'은 '솨칼'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말은 본래 상거래 시에 어느 한 쪽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정확하고 철저하게 측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이를 종합해 볼 때 자른 머리털을 저울에 달라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심판은 이와 같이 철저하게 살피시고 깊이 숙고하신 끝에 결정하신 지극히 공의로운 판결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공의롭습니다(렘 11: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추호의 죄도 용납될 수 없으며 합당한 값을 치루어야 함을 기억하고 범죄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입니다.
 
2. 심히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또 저울에 달아 나눈 머 리 털과 수염을 불사르고 칼로 치 고 바람에 흩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불사르고(리럴그, 바아르)'는 '불로 완전히 소멸하다'(삿 15:5), '잔인하게 먹어버리다'(출 22:5;사 3:14), '제하여 버리다'(신 17:12)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칼로) 치고(나카)'는 '심하게 상처를 내다'(아 5:7;호 6:1), '쳐죽이다'(민 35:17;왕하 12:21), '뽑아내다' 등의 의미를, 그리고 '흩으라(자라)'는 '퍼뜨리다', '없애버리다' 등의 의미를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흩으라'는 본문의 명령은 완전하게 소멸시켜 버리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과 이 상징의 성취인 예루살렘 멸망시의 참혹했던 상황은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들에게 발하실 진노와 나아가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써 시행될 우주 만물에 대한 대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도 그 심판을 감당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심판에서 자기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3. 자비롭습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세번째 명령은 터럭 중 일부를 옷자락에 싸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싸고(추르)'는 먼저 '포위하다'(왕상 16:17), '대적하다'(신 20:12), '괴롭게 하다'(신 2:9) 등의 의미와 함께 이와는 조금 달리 보호의 의미가 강한 '바위틈'(사 2:10), '피난처', 혹은 의지할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반석'(삼하 22:3; 시 18'2)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보다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터럭을 싸는 도구인 '옷자락(카나프)'이 '새의 깃털 있는 날개' 등 연약한 것을 감싸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사실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 거민 전체가 멸망당해야 하나 그 가운데 일부를 건져내셔서 구속사를 계속해서 진행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로 두렵고 지극히 공의로운 심판이지만 이렇듯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감싸고 있는 이상 성도는 감사하며 안연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직 공의만을 기준으로 하여 만물을 심판할 때 그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포자기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공의와 함께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한 공의와 극심한 두려움과 함께 자비는 심판을 통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이 세 가지 모습 중 한 가지가 우리에게 더욱 강조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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