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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마리아의 송아지 (호 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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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발생적인 관계입니다. 자연발생적인 관계는 출생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어떤 관계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무슨 계약서를 쓰거나 도장을 찍지 않아도 태어나기만 하면 관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이 자연발생적인 관계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자식은 부모에게 무한정의 희생을 요구합니다.어렸을 때부터 장성한 사람이 될 때까지 온갖 투정이나 부족한 것을 다 돌봐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어리고 아무 것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언약의 관계는 서로의 헌신에 의하여 지탱됩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같은 것은 언약의 관계입니다. 부부 관계는 서로에 대한 헌신의 관계입니다. 물론 서로 사랑하고 약한 부분을 돌보아 주지만, 근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헌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서로 헌신적이지 않으면 그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관계를 헌신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고 책임은 지지 않고 무한정으로 용납과 희생을 강요할 때 그 결혼은 대단히 불행한 결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자연발생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출생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하나님과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헌신의 관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바로 이 관계를 오해한 데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내가 잘했거나 못했거나 무조건 부모님이 잘해주시고 편들어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낸 신앙이 바로 사마리아의 송아지 신앙입니다.

이것은 마치 송아지가 그들을 위하여 끝까지 희생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조건 잘되도록 해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의 특징은 송아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두 돌비의 신앙입니다.두 돌비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신앙을 눈먼 송아지의 번영신앙으로 바꾸었습니다. 자기들은 온갖 못된 짓을 다하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야 하고 그들에게 복주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헌신이 없는 번영신앙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의 집의 심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에게 사정없이 전쟁의 나팔을 입에 대고 불라고 명령하십니다.

1절,“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빨리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입에 대고 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집에 대적이 덮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약간 의역된 번역입니다.그대로 직역하면 ‘나팔을 네 입에 대어라.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 위에 있다.’가 됩니다.그런데 무엇이 독수리처럼 그 위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을 덮친다.’라고 의역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위에 떠 있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순간에 독수리가 내리 꽂히듯이 덮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집을 덮친다’는 말 속에는 상당한 아이러니(irony)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985168;어떻게 감히 윈수들이 여호와의 집을 덮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985168;너희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집이다.여호와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신앙이 대단히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너희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비꼬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을 벌리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입만 벌리면&985168;여호와’이고 만나서 이야기만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들도 이처럼 신앙 좋은 사람들이 모인 여호와의 집이 감히 원수들에 의하여 망한다고 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와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며 엉터리인지 한 번 좀 보라고 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느 대기업이 부도났을 때 그 사장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985170;자기는 자기 기업이 몇 번째 안에 들면 정부가 감히 부도가 나도록 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렇게 많고 신자가 이처럼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감히 멸망시키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히 여호와의 집을 멸망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여호와의 집에 독수리가 덮치듯이 대적이 덮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께 헌신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안은 조건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살아 남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가 아무리 자신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을 끌어 들여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신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 사람들이 위협을 하고 날뛰어도 내 신앙 양심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직장이나 학교 생활을 하다보면 술을 마시는 것이 무슨 신앙 고백 비슷한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 구별없이 술을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차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네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나타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무한히 많은 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주시지 않으면 없는 채로 살아야 합니다. 더 가지지 위하여 도둑질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거짓증거를 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최소한 의 것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세상적으로 잘 되거나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는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의 집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 때 그들은 이중으로 불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 알았는데 지켜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적을 불러 들이셔서 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2절,“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 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3절,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

그들은 이미 선을 싫어 버렸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원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구원하셨는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셨으니까 더 나를 축복하시고 잘되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제는 제발 자기 욕심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 공부합니까? 사람들을 더 복되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합니까?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주든 말든 내 마음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친절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만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의 은혜가 막혀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도 길이 없습니다.

2. 사마리아 송아지 종교의 특징

사마리아 신앙의 특징은 그들이 만든 송아지에 있었습니다.

5절,“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왜 사람들이 송아지를 좋아합니까? 일단 송아지는 순하고 인간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만 주는 이상 절대로 사람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배만 드려주면 해코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송아지 형상으로 표현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안에 있는 욕망이 표현된 것입니다.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은 권력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바벨론의 금 신상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섹스를 욕망하는 사람들은 섹스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아세라신이나 바알신입니다.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신을 만들어냅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일종의 돈의 신이고 번영의 신이었습니다.

특히 왜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을 거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계속 다윗의 집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안정시켜주시겠다는 귀한 약속입니다. 왕가가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안정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그런데 북쪽에 있는 열 지파는 우리에게는 그런 목자가 필요없다고 하면서 다윗의 집을 거부했습니다.

&985168;우리는 너무나도 똑똑하기 때문에 다윗 같은 목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라를 떼 내어서 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결국 금송아지 신앙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 미련해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자기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목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알기는 알아도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는 못된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멋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 자신을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 두어서 복종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성경 지식만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인 지도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목자가 되어서 하루 하루 매 순간을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교회로 모여서 충고하고 감독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이상한 정욕에 빠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순한 송아지로 만들어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눈만 껌뻑거리고 내버려두는 신으로 전락을 시킨 것입니다.

오늘 교인들이 좋아하는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간섭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미 서울의 강남의 유명한 교회들 중에는 심방을 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자기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격려나 해주고 자신들의 삶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나의 생활에 파고 들어서 나의 계획을 흔들고 내 생각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4절,“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저희가 또 그 은,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곳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참된 신앙의 목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왕이 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지도자가 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지도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을 설득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향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화학 실험을 해 보면 촉매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촉매를 넣으면 반응을 가속화시켜서 반응이 촉진되게 됩니다. 그런 것을 촉매 내지는 카탈리스트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에도 턱이 있어서 좀처럼 극복이 되지 못하고 주저앉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도와서 그 한층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영적인 리더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리더들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울 때 더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불행은 리더가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은 거의 논스톱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가로막고 서서 아예 믿음을 써 볼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게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도자를 세우게 하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세울 때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없는 것 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우상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6절,“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

이것은 참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기술자의 작품입니다. 그것을 만든 기술자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왜 네가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면 위에서 시키는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헛된 것을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7절,&985170;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바람을 심었는데 거두는 것은 광풍입니다. 시작할 때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순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점점 바람이 세게 불더니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헛된 것을 의지하면 그 결과가 광풍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립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면 철저하게 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는 말은 배타는 사람들은 많이 실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배를 타고 출발할 때에는 잘 출항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 가면 어떻게 됩니까? 태풍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갇히게 되고 나중에는 거의 다 죽게 되고 맙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상은 죄를 제어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오케이이고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브레이크가 파멸된 자동차처럼 가속을 내다가 결국 대형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는 말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대형사고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미리 미리 조심을 하기 때문에 속도가 잘 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형사고를 잘 당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죄를 지적당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책망하지 않고 언제나 복을 주시는 마음씨 좋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설교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형사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자기 중심의 신앙의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중심의 신앙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교적인 관계로 나라를 지탱하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없는 종교 의식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들의 불신앙 외교를 살펴봅시다.

8-9절,“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이제 열국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같도다. 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홀로 처한 들나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아무 소용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깨어진 질그릇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혼자 미쳐날뛰는 들나귀는 누가 데려다가 일을 시키겠습니까?

하나님이 백성들이 말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은 아무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일이라도 제대로 알아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못난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어글리 크리스챤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멋있다는 것입니다. 신사적이고 매력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챤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크리스챤은 마치 맛잃은 소금과 같아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그릇을 말합니다. 주로 그런 그릇은 개밥 그릇으로 사용하지요.

그들이 아무리 인정받으려고 해도 이스라엘을 좋아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에게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매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그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매력도 찾을 수 없고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홀로 처한 들나귀입니다. 그는 친구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혼자서 돌아다니고 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시시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타락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욕이 발동하면 또 어디론가 뛰쳐나가야 합니다. 공동체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공동체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속에 불덩어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복을 주시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시하다고 하면서 자기 발로 차 버리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여기서&985168;값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다’라는 것은 의역입니다. 이 의역때문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문은 연애하는 자를 ‘고용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늘 앗수르를 사모하고 좋아하더니 자기들이 어려울 때 구해달라고 앗수르에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고용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됩니까? 10절, “저희가 열방 사람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 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께서 고용된 자들을 다시 모으시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으신다는 것은 더 급하고 바쁜 일을 터뜨려서 앗스르나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돕지 못하는 사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은 돈대로 들지만 도움은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뒤에서 이들이 망하도록 조종을 하십니다.

14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여기서 ‘불’은 분명히 앗수르를 의미합니다. 물론 성을 쌓고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985168;자기를 지은 자가 누구냐?’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은 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은 성을 쌓기 전에 누가 자기들을 지었으며 자기들이 무엇때문에 존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가장 안전한 성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성을 쌓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거룩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과 거룩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동네 북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나가면서 한 대씩 두들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985170;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죄를 위하여’라는 것은 진정으로 죄를 회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만든 제단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속죄제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감사의 제사요 서원의 제사들입니다. 에브라임의 만든 많은 제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기 중심의 제사였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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