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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위한 기도인가? (욘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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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번 걸프전을 시작하면서 부시대통령은 온 국민에게 '나라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었다. 어떻게 보면 좀 잔인한 기도 같게도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의 호소에 공감했었다.

2. 우리는 지난주의 본문을(3:7-10)통해 니느웨백성들의 기도를 살펴보았다. 그리 고 그들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징계로 부터 은혜를 입었다. 니느웨성을 멸망시키려던 하나님의 계획이 취소 되었다. 그런데 그 동기가 단순히 그들의 기도 때문만은 아님을 살펴보았다. '혹시'라는 예외의 은총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한 니느웨 백성들의 믿음이 그들을 재앙에서 구원한 것이다.

3.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상상치 못할 일이 발생했다. 요나가 시험에 들었다. 우리 는 요나서에서 요나의 두 차례에 걸친 기도를 보게 된다. 그는 2장에서 고기뱃속에 서 수중기도르 드렸다. 하나님의 구원갈망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도였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요나의 두 번째 기도는 전혀 질이 다른 기도였다.

4. 요나는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불평했다. 우리는 기 도를 한다. 여러가지 형태의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줄 믿고 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혹시 나의 기도가 요나의 기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않는가? 요나의 기도를 통하여 나의 기도를 살펴보자. . 언짢은 마음으로 기도했다(1-2).

A. 본문

1.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

1)민족적인 이유때문 이었다. 당시의 앗수르는 내분과 권력 투쟁으로 이스라 엘과 같은 약소국들을 일일이 간섭하고 제압할 처지가 못되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요나가 활약했던 여로보암2세 때에 요나 자신의 예언대로, 잃었던 국토를 회복해서 민족적 사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왕하14:25). 그들은 이스라엘이 크게 흥왕할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라고 대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의 꿈을 달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앗수르의 멸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앗수르만 무너지면 그들의 대망은 달성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는 메시 지를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혀 뜻밖의 결과 가 주어진 것이다.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저들이 망하지 않게된 결과는 전혀 원하지 않는 사태였다. 결국 요나는 원수를 도와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 교회의 부흥은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웃교회의 부흥을 배아파 하지는 않 았는가? 지금 요나의 심정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우리 민족만 사랑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2)개인적인 이유에서 였다. 왕하14:25에 보면 그가 이스라엘의 국토회복을 예고한 것이 적중되어 그의 인기가 크게 올라가고 권위가 높아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가 되지 않았는가? 니느웨가 망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으니 말 다. 그러니 지금 요나로서는 자신의 위신이 크게 손상 다고 느꼈을 것이다. 3)신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값어치 없이 바겐세일 당한다고 느꼈다. 적어도 이스 라엘 선민들처럼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당 시의 모든 유대인들이 갖고있잇던 의식구조였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선 교가 필요치 않았다.

2. 그는 하나님을 알았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주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

1)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그러나 믿음은 없었다. 이것은 예수님 탄생 때 유대인들이 갖고있던 상태와 같았다. 말씀을 외웠고 어디서 날 것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탄생하신 예수를 영접은 못했다. 사실, 바로 아는 것은 믿음의 선행조건이다.

2)그는 지식을 악용했다.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지식은 없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방 인도 구원하신다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 지는 몰랐다. 자신의 구원은 당연한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자신의 죄를 몰랐 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섣부른 지식이 그를 망하게 했다.

B. 지금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기도하는가?

1. 요나가 니느웨의 구원을 싫어한 이유는 교회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들도 자신과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한 형제요 지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인간 차 별의 극치였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다. 모든 장벽을 허물 어야 한다. 장벽이란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 어떤 조건도 장벽이 되서는 안된다.

2.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는 안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중요하다. 이해 타 산을 떠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으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그릇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나 없으면 너 못살고, 너 없으면 나 못산다'는 정신을 갖자.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잡은 고기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물 이 찢어질 만큼 잡힌 고기는 자칫하면 배가 가라앉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옆에 있는 친구를 불러 자기의 것을 나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눠야 한다.

4. 기분나빠할 이유가 없다.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는 만큼 이웃교회의 부흥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적용에 대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예화를 개발하라) . 죽음을 구했다(3).

A. 본문

1. 그는 악감에 차서 '여호와여'하고 불렀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께 대들었다.

2. 내 생명을 취하소서 하고 요구했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요구했다.

3. 하나님이 이 놈 저 놈 모두다 사랑해 주시는 것이 못마땅해서 구하는 기도 였다. 이것은 어린아이라도 해서는 안될 무모한 기도 였다.

B.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는가?

1. 기도는 꼭 해야한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과 있어야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나처럼 그릇된 기도를 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제단에 제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다툰일이 있거든 먼저 화해하고난 후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무엇이 먼저 인지를 분명히 알 아야 한다.

2. 자신의 의를 강조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였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것 이 화근이었다. 요나가 선지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만일 그가 이방인이었다면 그는 그렇게 방자한 기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그래서 심령 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의에 주린자 되고 심령이 가난한 자 되자. 기도하기 전 에 먼저 자신의 상태를 살펴야 요나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3. 많은 사람들이 분신하였고, 자살하였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들을 안타까 와 했고,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저들처럼 자신의 영혼을 죽이 지는 않았는가? 내 생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 목숨이 누구의 것인데 함부로 죽인 단 말인가? 저 형제가 누구의 자녀인데 함부로 그를 미워한단 말인가? '나를 죽여 달라'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다.

결론

1. 그리스도인의 최대 목표는 선교다. 선교는 국내전도와 해외전도로 나눠서 진행 하되 모두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나만 믿으면 그만이다'라는 자세는 죄악이다.

2. 선교가 중요하다고 말들은 한다. 그렇다면, 정말 선교가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당 신은 특별히 선교헌금을 드렸는가? 만일 선교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따로 떼어서 선 교헌금을 드리지 않았다면, 그는 요나와 똑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 왜 저들도 사 랑 하십니까? 저만 사랑해 주세요'라고 떼를 쓰고있는 것이다.

3. 거리에서 차 안에서 전도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가? 창 피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창피할 수도 있다. 그들이 기독교의 가치를 떨어뜨리 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떼거지 쓰는 나를 깨우치시려는 하 나님의 손길이라고 느끼지는 않는가? 전도해야함을 알면서도 전도하지 않는 것은 곧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라고 떼를 쓰는 요나와 똑같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 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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