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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채소와 믿음 (단 0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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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다니엘은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라도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사람입니다. 많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은 단호하게 거부할 줄 아는 젊은이였습니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어제 했던 철석같은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사람들, 상황의 추이를 보아가며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사람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 우리가 뉴스에서 늘 보고 듣는 소위 높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일반시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과 용기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명분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낮은 도덕적 수준과 비열한 행동이 합리화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소신이 있었고, 그 신념과 양심에 따라 행동할 줄 알았던 다니엘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라는 최상급의 특권을 아무런 미련없이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쓴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또한 진짜 위험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생각이 고귀하고 결단이 아름다워도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결단도 그런 장애물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환관장의 승인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다니엘은 자신을 총애하는 환관장을 어느 정도 의지하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지요. 그 환관장에게 부탁하면 그 정도는 이해하고 허락해 줄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관장으로서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허락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 여기에 문제가 발생했고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렇게 대단하고 아름다운 다니엘의 결단이 실행되지도 못하고 그만 사장(死藏)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만일 다니엘의 결단이 허락받지 못한다면 예상되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결단을 포기하고 자신을 더럽힌다고 생각되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든지, 아니면 그 결단에 따라 끝까지 왕의 진미 먹기를 거부하다가 왕명 거역죄로 붙들려가 죽든지 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과라고 하면 왕실의 특별장학생 그룹에서 쫓겨나 전쟁포로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정도겠지요.

그렇다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째로, 일단 그 주장을 철회하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대처방법이 효과적이고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일단 충돌을 피한 다음에 시간을 두고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섣불리 과격한 행동을 했다가는 아무것도 이루거나 얻지 못하고 끝장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다니엘로서는 그렇게 되면 일단 자신을 왕의 음식으로 더럽히지 않을 수가 없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결단을 스스로 범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다니엘로서는 취할 수 없는 대처방법입니다.

아니면 둘째로, 자신을 스스로 vegetarian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뜻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고기를 먹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거나 구토를 한다거나 하면 채소를 먹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다니엘의 고민은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다니엘의 결단을 실행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죠. 예를 들어 술을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회식을 하면 꼭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다니는 사람이 술을 먹기만 하면 그 회식자리에서 토하고 난리가 난다면 아무도 그 사람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술을 먹지 않겠다는 소정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를 보고 자신의 결단에 의해 술에 대한 유혹과 강압을 견디고 이겼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vegetarian이기 때문에 왕의 진미를 안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결함을 지키기 위해 안 먹겠다는 것입니다. 안 먹는다는 것 자체는 같을지 모르지만 그 동기와 이유에 있어서는 천양지차입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면서 vegetarian이기 때문에 못 먹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거짓을 만들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 위기에 대처한 방법은 위험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정면돌파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해서 될 일도 아니고, 적당히 꾸며 넘길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우선 테스트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환관장이 다니엘의 결단을 허락할 수 없는 이유는 다니엘에게 왕의 진미를 꼭 먹여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환관장의 관심사는 다니엘이 잘 먹고 영양을 많이 섭취해서 건강하고 모든 학문과 훈련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이 건강하고 살도 빠지지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든 아니면 채소와 물만 먹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10일 동안의 시험기간은 다니엘의 건강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면서 동시에 음식의 차이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만약 10일 동안 채소와 물만 먹고도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는 다른 젊은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다니엘의 결단은 허락될 것이고, 만약 그 10일 동안에 다니엘의 체력이 떨어지고 살이 빠진다면 다니엘의 결단은 없던 일이 되든지 쫓겨나든지 하게 되겠지요.

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채식의 효과와 장점 등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을 만나보면 고기를 먹는 우리가 염려하고 의심하는 것처럼 체력이 딸린다거나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이 훨씬 건강하고 깨끗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원래 우리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 사람들의 수명은 900년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글쎄 900년이나 살았다고 하면 지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만... 그러던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진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에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이 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게 된 것이 수명의 단축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했어도 900년이나 살았다는 것은 채식이 우리의 건강이나 영양에 충분하다는 반증이 되겠지요?

자, 그러면 다니엘이 10일 동안 채식을 했기 때문에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하고 안색도 좋았을까요? 채식주의자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쓴 다니엘 자신의 포인트도 그것이 아닙니다. 환관장이나 다니엘은 왕의 진미보다는 채소만 먹는 것이 건강과 영양에 불리한 요소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다니엘이 10일 동안 채소와 물만 먹음으로써 채식의 탁월한 효과와 장점이 증명된 것이었다면, 당연히 환관장은 다니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젊은이들도 채식만 하도록 메뉴를 바꿨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다니엘의 체질이 채식에 맞는 것이었다고 억지로 꿰어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다니엘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모두 같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글쓴이의 포인트는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변변찮은 채소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채식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고, 채식이 왕의 진미에 비해 열악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는 것이지요. 다니엘 역시 처음에 이 제안을 하면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거기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만약에 채소만 먹어서 살이 빠지고 힘이 떨어지게 되었다면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을 수 있다, 혹은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끌려가 목숨을 잃든가 아니면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왕의 진미는 먹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다니엘의 행동을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채소만 먹어도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결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그렇게 오해하는 수가 많아요. “주여, 믿습니다. 주시옵소서!” “시험에 합격할 줄로 믿습니다.” “사업에 성공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실은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산정해 놓고서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걸로 믿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것을 믿음이라고 혼동하는 수가 있단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런 기준으로 믿음이 없다는 말을 남발하기도 합니다.

만약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이 좋으면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면, 세상에 믿음 안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아무리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고 기도해도 남북통일이 내일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다른 사람들 공부할 때 기도만 한다고 합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믿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믿음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는 분명히 믿었으니까 내 책임은 없단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믿었는데도 그것을 이루어 주지 않으신 하나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 당연히 기도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마음대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이루어 주실 수도 있고 안 이루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그것도 믿음이겠지요.

다니엘의 믿음은 채소만 먹어도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하나님이 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지 안 해 주실 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해 주셔도, 즉 특별장학생 자격을 상실하고 노예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불성실하지 않겠다는 소신입니다. 즉 하나님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데다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내가 결정하고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나님의 결정에 나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모험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지금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채소만 먹어도 다른 소년들에 비해 살이 빠지거나 체력이 딸리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목숨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지 안 해 주실 지는 모릅니다. 해 주시면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 해 주시더라도 불만은 없습니다. 안 해 주실 지도 모르니까 그냥 왕의 진미를 먹으면서 조용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안 해 주실지라도 안 먹고 하나님의 처분에 운명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나의 운명을 맡기고 환관장에게 그렇게 제안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행동인 것입니다.

채소만 먹으며 지냈던 10일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또 불안하고 걱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그들은 위대한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 나아 보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채식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간섭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승리한 것입니다. 결과를 떠나서 하나님의 손에 그들의 운명을 맡기는 위대한 믿음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이 젊은이들처럼 채소만 먹으면서 견디는 10일의 기간을 보내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정말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응답만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여러분 역시 참으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여러분의 운명과 미래와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10일이 지나고 그들의 얼굴이 다른 소년들보다 더 윤택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을까요? 그리고 그 후로는 얼마나 자신 있게 채소를 먹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충실하고 순종하려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믿음의 승리와 기쁨을 충만히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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