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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단 05: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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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단 5:25-31)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 왕조가 몰락하는 과정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침공해오자 계백장군은 자기 손으로 모든 가족을 먼저 죽인 후 전장에 나갑니다. 그리고 황산벌 싸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꺼져가는 나라의 등불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백제가 당나라의 소정방에게 함락을 당하자 의자왕을 모시던 삼천궁녀가 모두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참 가슴을 아리게 하지 않습니까? 공민왕의 개혁의지와 정몽주 같은 충신의 기개에도 불구하고 고려왕조는 이성계의 배신과 야망 앞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천하의 패권을 놓고 한고조 유방과 다투던 초패왕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채 애첩과 함께 자결함으로써 한 시대의 종말을 장식합니다. 이런 마지막 장면은 애절한 사연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하기도 하지요.

오늘 우리는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밤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최초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바벨론의 위용과 권세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벨사살 왕과 다니엘이군요. 정복자로서 다리오 왕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 왕조의 마지막 밤을 맞는 궁궐의 모습과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바벨론 왕궁의 마지막 밤은 떠들썩한 잔치로 시작되었다가 경악과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의 현장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침내 다니엘이 벽에 쓰인 글자를 읽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카운트

벨사살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세 가지로 진술됩니다. 첫째는 메네, 즉 하나님이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카운트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꿈의 실현입니다. 거대한 신상의 머리는 금이었고 그 다음은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다니엘은 이것을 언젠가 바벨론의 시대가 끝나고 그 다음 나라로 주권이 넘어가게 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었습니다. 강력하고 영원한 세계제국을 꿈꾸던 느부갓네살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와 시대를 주관하신다는 선언이었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바벨론이나 로마와 같은 인간의 나라와 문명도 끝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반을 지배하던 소련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보았지 않습니까? 전도서 기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 3:1)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과 국제질서도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것처럼 우리 시대 역시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에 따라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들에 자라는 풀도 때가 되면 시들고 꽃은 떨어집니다. 하늘을 나는 새나 사나운 들짐승도 언젠가는 목숨이 다해 죽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인간의 목숨은 대단히 짧고 무상한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얻으려 애썼던 진시황이 겨우 나이 50에 죽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평소에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멀리 있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실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그것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죽음입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언젠가 그 죽음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 마지막을 향한 하나님의 카운트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치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지나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카운트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았다가는 벨사살과 같은 최후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카운트가 끝났을 때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고, 그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지옥불의 형벌을 당하거나 또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총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저울

벨사살에 대한 두 번째 심판의 메시지는 데겔, 즉 그가 저울에 달려서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려면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체중검사지요. 몸무게가 규정치에 모자라면 불합격 판정을 받아서 군대에 갈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벨사살이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형편없이 부족해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벨사살은 바벨론 제국을 다스릴 왕으로서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준과 판단으로는 유능하고 훌륭한 왕이었을지도 모릅니다(물론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과 판단에 의해서 보니까, 즉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니까 형편없이 모자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는 벨사살만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저울은 마지막 심판 때만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늘 하나님의 저울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저는 우리교회의 목사로서 하나님의 저울 위에 올라갑니다. 저울에 수치가 나오겠지요? 아, 이거 교회를 위한 비전이 형편없이 모자라는구나. 교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작구나.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시간이 기준에 못 미치는구나. 결과가 다 나오겠지요? 물론 이것이 마지막 심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저울에 나타난 수치를 보고 어떤 면을 보충하고 어떻게 더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지를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또한 가장으로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무엇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또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그 저울에 올라가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그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 저울에 나타나는 수치는 몇 점인가요? 자신이 스스로 한번 점수를 매겨보세요. 합격입니까? 불합격입니까? 하나님이 점수를 매기신다면 몇 점이나 주실 것 같습니까? 점수가 얼마나 모자랍니까? 그 모자라는 점수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보는 것은 매우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울에 올라가서 형편없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모자라는 부분을 깨닫고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예비고사라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수능시험 같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예비고사를 치루기 전에 모의고사를 몇 번이나 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임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실 모습을 향해 변화되어 간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여러분, 종종 저울에 올라갈 때가 있으시지요? 특히 자신의 몸무게에 관심이 많은 분은 저울에 올라가는 횟수도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울에 올라갈 때마다 동시에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는 연습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관심이 많고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보는 횟수도 많을 것입니다. 모의고사를 많이 쳐보고 준비를 잘 하면 본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는 연습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자격과 자질을 갖춘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서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에 빼앗기는 직분

다니엘이 전하는 세 번째 심판의 메시지는 나라를 메대와 바사, 즉 페르시아에 넘긴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결론이지요.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카운트가 끝났습니다. 즉 바벨론이 존재해야 할 기한이 찬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나라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벨사살이 형편없이 자격미달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로 주권이 넘어가게 되겠지요. 다니엘이 누차 선포했던 것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이제 바벨론을 폐하시고 페르시아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룟 유다를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사도의 하나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직분입니까? 그러나 그가 합당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행 1:20) 되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직분에 합당하지 못하게 행할 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직분을 다른 사람이 취하게 하십니다.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면서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그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번 은혜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사랑받았다고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간직하고 그 사랑을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직분 맡기셨을 때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그날 밤 바벨론 제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역사가 크세노폰에 의하면 바벨론 사람들이 흥청망청 술에 취해 있을 때, 고레스 휘하의 메대와 페르시아 연합군은 바벨론 도성의 자연방벽인 강물의 수로를 바꾸고 얕은 수로를 통하여 성안으로 쳐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브리야스라는 사람이 궁으로 들어가 왕을 살해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하늘을 찌를 듯하던 권세의 바벨론이 이렇게 허무하게 망하고 말았군요. 바벨론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 힘이 있다고, 돈이 있다고 뻐기고 목에 힘주고 제멋대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일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늘 기억하십시오.

어쨌든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득세하게 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역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신다는 것이 다니엘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보호 속에 안전하고 평안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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