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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적인 하나님의 백성들 (마 25: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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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믿음생활이 성공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모두 모두 성공적인 하나님의 백성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 실패를 했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 종을 26절에서 보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했습니다. 실패의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인생이 악함이요, 또 하나는 내 인생이 게으름입니다. 품성이 악한 사람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매사에 게으름을 피운 사람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달란트를 주실 때 땅에 묻어두라고 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기억할 것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했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본문 말씀 중심해서 이 시간 세 가지를 묵상하면서 은혜를 사모하려고 합니다.
첫째 성공의 개념
정치인은 국회의원쯤 되고 장관쯤 되면 나 성공했네 할 것입니다. 사업가는 억대 부자 되면 나 성공했네 할 것이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고시에 패스하면 나 성공했네 할 것입니다. 물론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잠깐 있다가 시들어버릴 박넝쿨 성공입니다. 성공, 실패 판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하신다면 이 사람들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사 되고, 안수집사 되고, 장로 되면 나 성공했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계급이 없습니다. 달란트 차이만 있습니다. 직분을 맡을수록 겸허해야 합니다.

눅 17:10에 보면 도리어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욱 겸손하고 더욱 충성하고 그리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종이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사람을 쓰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마다 성공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성공할 수 있는 생각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말하는 성공의 개념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적극적인 사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적극적인 사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그것을 땅속에 묻어두곤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렇게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적극적인 사고를 주셨습니까? 활용하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성공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행여라도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못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교회에서 종종 있을 수 있는데 사탄의 입에서 나오는 속삭이는 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 생산적인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인생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 지혜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인생은 씨뿌리는 농부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에 비전을 두고 충성하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헌신적 활동입니다. 하나님은 장사하라 명령만 내리시지 않습니다. 장사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면 된다, 물론 말이 좋습니다. 그러나 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실제로 내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보면 I can not, 그것 아닙니다. I can do,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 있습니다. 성공이 무엇이냐를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바로 이것이 성공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 하는 것 성공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것 성공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된 종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모두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성공의 비결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6). 이 말씀 속에 성공의 비결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가서'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월을 아꼈다는 말입니다. 허송세월은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역사의 위인들은 저마다 5분은 길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5분 동안에 납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승리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었는데 5분을 길게 여긴 때문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마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때 나이가 젊었을 것입니다. 기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젊음을 낭비하지 아니했습니다.

기백을 잘 활용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 할 때에 일 할 줄을 알았습니다. 일할 때 일해야 합니다. 인생이 항상 일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인생의 나이는 항상 이팔청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시간을 자본으로 여길 줄 아는데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것으로 장사하여'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 장사는 모두의 생업이랄 수 있습니다. 농사 짓는 일, 고기 잡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수 생활일 수 있고, 교회에서 목회 생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와 같이 세 종류입니다. 그러나 세 종류뿐 만 아닙니다. 300 종이 넘을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음악일수 있고 사업일수 있고 예술일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 없는 인생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마다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장사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장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너무 과소평가한지라 한 달란트라고 고집하면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실패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소고는 소고대로 의미가 있고 장구는 장구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최소한대로 인생을 살아갈 때에 갑절 인생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산적인 삶을 살고 능동적인 소산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사업을 해도 줄여먹는 사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되로 배워서 말로 풀어먹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물론 다섯 달란트 가지고 또 다섯 달란트 남기는 일 쉬운 일 아닙니다. 죽도록 충성을 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린 대로 여기 '죽도록' 이란 말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뜻이요, 또 하나는 죽을 때까지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죽을 힘을 다하여, 죽을 때까지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공의 사례
인생이 무엇입니까? 저마다 성공하기를 염원하는 존재입니다. 또 승리하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이럴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힘도 있고 장기도 있고 지혜가 있어야 천하장사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할 만한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성공하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성공을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주님이 '사랑하는 그대여, 성공하라' 당부만 하십니까? 아닙니다. 성공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았다는 말입니다. '기뻐하라' 당부만 하십니까? 아닙니다. 기뻐할 수 있는 담력도 주셨다는 말입니다.

누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까? 욘 2:3에 보면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주께서 나를 바다에 던지셨나이다, 주의 파도가 나를 엄습하였나이다'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성공의 열쇠가 있습니다. 사실 주께서 요나를 바다에 던지셨고, 주께서 요나를 바다에서 건져내시고, 주께서 요나를 다시 니느웨 선교사로 보내신 것입니다. 만가지가 다 '주께서', 여기에 성공의 열쇠가 있습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도 귀하지 않습니까? 천하보다 귀한 그 영혼을 누가 구원할 수 있습니까? 서울대의 교수입니까? 하버드대학 출신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9).

요셉을 보십시오. 웅덩이 고난, 종살이 고난, 옥살이 고난을 겪은 고난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여, 부르짖는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고난보다 '주께서'를 앞장 세웠습니다. 그래서 국무총리가 될 수 있을 만큼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칼과 단 창과 긴 창을 가진 육중한 거인 골리앗을 작은 물 맷돌 가지고 넘어뜨렸습니다. 결국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다윗의 전법 때문입니까? 다윗이 지닌 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능력주신 자 안에서 해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다윗의 물 맷돌은 믿음의 물 맷돌이요, 그물 맷돌은 기도의 물 맷돌입니다. 다윗은 물 맷돌을 골리앗을 향하여 던질 때에 기도하면서 던지고, 또 믿음으로 던졌기에 골리앗 이마에 물 맷돌이 정통할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패하고 또 걱정하는 일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 속에서 큰 믿음을 나타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큰 믿음이 있습니까? 큰 지도가 있습니까? 믿음은 성공의 발판입니다. 기도도 성공의 밑거름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서로 뗄 수가 없습니다. 큰 믿음이 큰 기도 만들고, 큰 기도가 큰 믿음 만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에녹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였고, 노아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해 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엘리야의 사환이 말합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왕상 18:44). 엘리야는 이 작은 구름 그 속에서 큰 소낙비가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이 커야 합니다. 그래야 메마른 땅에 큰 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먼 곳에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큰 성공을 하려면 작은 실패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순간이 많은 세월을 만들고 미미한 일들이 내 인생을 결정할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기도하고 싶습니까? 기도하고 싶은 그 구름 한 점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응답의 신호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싶습니까?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싶은 그 구름 한 점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노크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때를 놓치지 말고 곧장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환란당한 성도가 있습니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시 50:15)를 붙잡아야 합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어찌 했습니까?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환란당한 욥이 어찌했습니까? 믿음으로 기도하고 환난을 성공으로 끌어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금식하며 부르짖더니 패망하는 조국을 건져냈습니다. 사무엘도 '하나님이여,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하소서'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사밧도 그리했고. 다니엘도 그리했고, 모세도 그리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둥병자 나아만은 이방사람입니다. 그가 이적적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나아만을 의사가 고쳤습니까? 나아만도 기도 할 줄 알았습니까? 아닙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더 빨리 들어주십니다. 성도 중에는 내가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배후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성도가 있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있던지, 아내가 있던지, 친구가 있던지 말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여 온 성도가 축복 받고 온 성도가 성공하고 또 이 새성전이 가득하게 넘칠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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