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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같은 세상에서 (마 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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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독교 신자들이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죄인인 나를 살리셨다. 그래서 저와 여러 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다는 의미는 영원한 것이다. 나를 살리신 주님은 구원자이시며 승리자이시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분들은 주안에서 즐거워 하라! 기뻐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시길 바란다.

성도 여러 분! 주일 아침에 여러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러 분이 주님을 따르는 것은 위험한 일을 자초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일이 평화롭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주님을 따를 때 세상의 그 어떤 소란한 장소보다 더 복잡하고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때가 많이 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를 때 내가 이기든지 아니면 패하든지 할 수 밖에 없는 싸움터에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 그래서 여러 분이 기쁨과 평강을 유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여러 분은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긴장하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다. 긴장하면 몸이 굳어진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이 곧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긴장의 상태이다. 여러 분이 긴장해야만 여러 분의 신앙이 성장한다. 여러 분의 가정이 튼튼해진다. 그리고 여러 분의 교회가 은혜롭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분이 항상 경건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러 분이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여러 분은 모든 일에 승리하실 것이다.

그러나 여러 분이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는 일 때문에 여러 분은 항상 즐겁지 않을 것이다. 궁핍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분은 수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다. 주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당하신 일에 대해 여러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또한 그 분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 임을 입증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시험이 닥쳐오면 미리 체념하고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주님께서도 시험을 당하셨는데...'. 이러한 말은 주님도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이 약하고 부족하셔서 시험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구원하실 백성들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주님은 공생애의 처음과 마지막을 마귀의 시험으로 시작하셔서 시험으로 마치셨다.

주님이 당하신 마지막 시험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면 본문에서 주님이 시험을 당하심으로 해서 우리는 무엇을 누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성도가 천국에 이르기 전까지 세상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분은 마귀가 주님에게 시험하신 세 가지의 내용을 잘 생각해보라! 마귀는 두 번에 걸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했다.

마귀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인지에 대하여 의심한 것이 아니다. 돌로 떡을 만드실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릴 수 있는 능력도 의심한 것이 아니다. 마귀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마귀는 주님이 잘못된 방법으로 능력을 사용하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귀가 주님을 시험한 것은 오직 주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 이제 마귀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뜨림으로 해서 하나님의 구속을 좌절시키려는 것이다.

마귀는 이 시험에 엄청난 내기를 걸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리스도가 시험에 넘어가기만 한다면 인류를 영원토록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마귀는 주님에게 시험을 통해 신적인 능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귀가 하는 짓이 얼마나 유치하고 가소로운 것인가? 마귀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도 마술사나 무협지를 연상하게 만든다. 주님은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면 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패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유치한 시험 거리를 가지고 와서 자신 만만하게 성자 하나님 앞에 와서 위세를 부리고 있는가? 그 이유는 주님께서 곧 새롭게 변화 될 인류의 대표가 되시기 때문이다.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은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욕망들이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 전체를 향하여 시험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 시험을 물리치셨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시험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단은 처음에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다. 마귀는 마치 영적인 양식을 주는 것처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왜 유혹에 넘어갔는가? 패배자인 하와는 사단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것이 이유이다.

두 번째로 마귀는 주님에게 육신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여러 분! 이것이 신자가 승리하는 비결이다. 우리는 하와와 같은 자세를 취하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하와가 사단과 나눈 대화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미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 대한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와는 인간의 지혜를 잣대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재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물질의 문제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돌 밖에 없는 광야에 서 있다면 누구든지 저 돌들로도 떡을 만들 수 있다면..하는 바램을 가질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회의를 가졌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회의나 철학적인 사고는 오히려 좌절감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형편에 직면하게 될 때에 스스로의 지혜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만큼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인간의 지혜는 일시적으로 모면하는 것을 찾고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회복이며 해결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실 때 여기에 주님의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사단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고 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다. 주님은 신명기8:3절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이다.

여러 분이 바로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 신자들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시 말씀하신다. '너희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고 마시며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두 번째 시험은 주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시편91편 11절을 인용하면서 뛰어 내리라고 명령을 하였다.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공생애 시작부터 마귀에게 치욕을 당하고 계신다. 감히 마귀가 또 다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님에게 명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님은 논쟁을 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은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물리치셨다.

여러 분! 주님이 올라가셨던 성전 꼭대기는 120미터나 되는 높이이다. 오늘도 여전히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높은 곳에 올려 놓고 시험을 한다. 이 시대는 사람들에게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실적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통해 보람을 갖고 성취감을 갖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여진다. 경쟁을 해야만 하는 구조가 모든 낭만적인 것들을 빼앗아 갔다.

세상은 한결같이 마귀가 주님에게 했던 것같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만일 네가 사장이거든, 네가 실력이 있으면, 네가 경력이 있으면, 네가 정말 이 회사의 직원이 &47580;다면, 이 정도는 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매일 전쟁을 치루며 산다. 우리는 자주 피곤하다는 말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이유가 더 많다. 여러 분이 이 삶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면 성경에 있는 무기를 사용하기 바란다. 에베소서 6:16절은 말씀한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주님께서 두 번째 유혹을 당할 때 신명기 6:16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만약 여러 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받을 때 성경 말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행동할 때 이미 실패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여러 분의 믿음과도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모든 일에 첫 번째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실패의 길로 들어 선 것이다. 세상이 내게 능력 발휘하기를 요구할 때 자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자기를 과신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잠언3:7에서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했다. 그 지혜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언2:7)라고 하였다.

또한 이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언2:20)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아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욥에게 하신 말씀을 들려 주신다.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욥40:9). 그러므로 일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40:29)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다.

여러 분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분명하게 모시기를 바란다. 마귀는 주님에게 세 번째의 유혹을 한다.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다. 마귀가 주님께 보여 준 영광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예루살렘성의 왕좌였을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낮고 천한 마구간으로 오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과 물질이었다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부나 세리들이 아니였을 것이다. 인기나 명예였다면 예수님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마귀는 아마도 마지막 유혹을 할 때 숨겨 둔 비장의 카드를 제시했을 것이다. 마귀는 주님에게 골고다로 향하는 언덕 길을 보여 주지 않았다.

십자가의 비참한 모습과 고통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려 주지 않았다. 마귀는 주님께서 가셔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을 세상의 영광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사기를 치는 것이다. 마귀는 은근히 주님에게 십자가의 길을 버릴 것을 유혹한 것이다. 굳이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도 그 일을 마귀가 대신 영화롭게 해주겠다고 하는 약속이다.

성자 하나님의 사명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었다. 마귀가 하는 말은 무엇 때문에 인간 같은 것들을 위해 비참하게 대속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죄는 그대로 놔두고 예수 너는 영광만 받으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마귀의 수중에 그대로 남겨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이 유혹은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다. 네가 신자라고 해서 꼭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느냐 라고 물어오고 있다. 마귀가 주님에게 십자가를 포기하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남을 위해 희생도 하지말고 손해도 보지 말라고 유혹한다.
우리 마음 속에 꼭 그렇게 손해 볼 필요가 있느냐고 속삭인다. 그러면서 지혜롭게 선택하라고 충고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세 번째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온다.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혹을 받으면서도 행복해 한다. 곧 그렇게 되리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유혹이 있을 때 그렇게 될 것 같은 길이 훤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번째의 시험이 올 때는 주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단아 물러가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오늘날도 여전히 사단은 우리를 이 세 번째의 유혹을 계속하고 있다. 물질적인 것, 성적인 것, 권력으로 우리를 속이면서 세상을 다 주겠다고 꼬드기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짧으니 모든 것을 즐기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단이 하자는 대로 하면 우리는 그 대가로 우리의 영혼을 팔아야 한다. 만약에 여러 분의 마음 속에서 세상의 방법대로 끌려가고 있다면 모든 것이 잘못되기 전에 예수님과 똑같은 방법으로 물리쳐야 한다.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다. 마귀는 주님을 시험할 때 '만일 내게 경배하면'이라고 했다. 우리가 심각하게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마귀는 이미 두 번의 유혹을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이 말의 의미는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내게 경배한다면'이라는 뜻이다. 마귀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리스도인들인 것은 나도 알지만 그러나 만일 내 방법대로 하면 내가 성공의 지름길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갖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 번째의 유혹에서 많이 넘어지고 만다.

이 세 가지의 유혹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성공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순서와 과정이 올바른지를 생각지 않는 풍조이다. 그래서 잘못된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매일 뉴스의 내용이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 마음 속에는 늘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가 크든 작든 그것을 해결하려면 세상적인 방법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지혜와 경험을 따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마귀는 주님을 시험할 때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당신 예수 믿는 사람 맞아!'. 예수님은 이런 말을 들으시고도 결코 범죄치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말을 들 때 더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말 때문에 더 싸움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분! 그리스도인이 겪는 시험과 연단과 영적 전쟁을 치룰 때는 무조건 이기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딱 세 마디로 요약되어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단의 온갖 달콤한 제안을 물러가라고 큰 소리로 외친 후에 오직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기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무기를 항상 사용하길 바라신다.

이제 우리를 위해 승리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란다. 주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사용하신 성경 구절들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은 신명기 6:13절의 말씀이다. 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6:16절의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는 말씀은 신명기 8:3절에 있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신명기의 말씀만 사용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번 시험에서 실패했던 내용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패한 사실을 사단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새로운 의지를 강하게 보여 주시고 계신 것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광야에서 실패 했지만 예수님께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태어날 피조물들은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도 여러 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광야와 같은 곳이다. 여러 분도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실패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그 모든 실패하였다. 마귀가 유혹한 것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욕망을 품을 때 마귀는 신자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방법을 가지고 가까이 온다. 주님은 승리하셨다. 주님이 승리하신 장소가 어디인가? 그 곳이 광야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승리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광야와 같은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승리한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 주님은 광야로 성령에 이끌려 가셨다. 우리도 성령으로 인도함 받지 않고는 이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없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여러 분이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 주님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단을 이기셨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신적인 능력을 과시해서 사단을 이기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사단을 이기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길 밖에는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사단에게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절대로 우리의 인격을 내세워서, 높은 도덕적인 자질과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떠난 것은 말씀의 능력 앞에서 물러 갔던 것을 기억하라! 여러 분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라! 그 다음에 여러 분이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라!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적인 자원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생각해 보라! 그 답을 주님이 광야에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얻기 바란다. 마지막 절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을 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는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신다.

오늘은 기드온 주일이다. 오늘은 성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주일이다. 성도 여러 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이 되시길 바란다. 하나님 만을 믿고 의지하며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물리쳐서 항상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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