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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믿어서 인생을 바꾸라!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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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께서 은행에 돈을 빌리러 왔습니다. 은행 대출 담당 직원이 이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영감님, 어디에 쓰시려고 대출을 받으려고 하십니까?' '경운기를 살려구' '그러면 담보는 있으신가요?' 담보라는 말이 생소했던 이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담보가 뭐유?' '저희가 돈을 빌려드리려면 그 정도의 값이 나가는 물건이 있어야 됩니다. 혹시 자동차가 있으세요?' '있수. 1970년산 포니' '할아버지 그것으로는 좀 대출 받기가 곤란하겠는데요' 잠시 생각을 하던 은행 직원이 할아버지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가축은 뭐가 있으세요?' '말 한 마리' '말은 몇 살이나 됐죠?' '글쎄? 그 놈은 이빨이 하나도 없는데…'

결국 은행 직원은 할아버지의 집을 담보로 돈을 대출해 주었습니다. 추수가 끝나자 할아버지가 다시 은행을 찾아왔습니다. '돈 갚으러 왔수' 돈을 갚으러 왔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은행 직원이 할아버지에게 한 마디를 건넵니다. '할아버지, 추수가 끝나셨으면 많이 버셨겠네요? 남은 돈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땅에다 묻어놔야지.' '은행에 예금하세요' '예금이 뭐유?' '예금이라는 것은 할아버지의 돈을 은행에 맡겨두시는 겁니다. 다시 찾아가실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해 드리지요.' 이 말에 할아버지가 은행 직원이 있는 책상 앞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담보 있수?'

누가복음 18장 8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패역하고 혼돈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에도 하나님은 눈으로 바라본 그대로 보고를 했던 열명의 정탐꾼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백했던 두 명의 정탐꾼을 쓰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하는 것도 눈에 보이는 대로 고백했던 빌립의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주님께 드렸던 안드레의 믿음을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이성과 과학과 경험의 지식을 십자가 아래에 다 묻어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뜨거운 믿음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 대하여 기뻐하시지 않고 그 사람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재능을 보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보고 쓰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높여 줄 수 있는 그런 믿음만 가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높이 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기회의 때는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도 그 사람 속에 믿음만 들어가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우리의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다'는 복된 삶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이 땅에 아직도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된 인생의 가능성을 하나님 안에서 열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환경의 변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인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역사하고 절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믿음의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과의 싸움입니다. 솔직히 오늘의 모든 업적은 어제까지의 불가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함을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게도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죄악은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샘솟듯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기쁨을 맛보십시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성령의 기쁨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의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라보면서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까 어느 듯 우리는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혈과 육이 내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입술에서 감사와 찬송이 사라지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낙심하고 있습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내 생명을 허락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전부를 얻어도 주님을 잃어버리면 전부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고, 우리의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내 안에 가득 품고 사십시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기적은 끝없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믿음의 기적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는 강한 기반이 됩니다. 믿음의 기적은 행동하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말씀했고 나는 믿었으니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기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서를 보게 되면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우리가 있는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도의 불행은 주님이 없음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이 없는 믿음은 거짓된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의 손을 굳게 잡으십시오. 스스로 일어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제발 여러분, 사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보십시오.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자기 선언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나의 나중이 지금보다 훨씬 더 창대할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고난과 역경의 삶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만 역사하면 단번에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을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가난과 굶주림과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복 받은 사람들, 복 받은 가문들, 복 받은 백성들, 복 받은 나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복과 번영을 이룩하며, 어떻게 죄악과 저주와 가난과 포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위대한 기적을 계획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꿈을 꾸십시오. 환상을 보십시오. 이상을 가지십시오. 기어이 내 시대에 나의 믿음을 통해서 내 가족과 내가 섬기는 교회와 우리 민족이 복을 받는 때를 이루게 될 것을 믿으십시오.

성경을 보십시오. 창조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는 신구약 성경이 기적을 빼버리면 믿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기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믿음'입니다. 신약성경에서만도 믿음이라는 헬라어 '피스토스'라는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믿음을 뽑아내고 나면 텅 빈 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서 핵심 정신인 믿음을 빼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인이 아니라 정신나간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께 요청했던 이 간구를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우리 주님께서도 의심하는 도마를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를 잘 믿어서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최고의 전략은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서 인생의 성공을 꿈꾸는 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평상시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쩌면 평온할 때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더 낭만적일 것입니다. 풍랑이 없을 때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훨씬 더 풍경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어나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비가 내려서 큰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안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성공을 꿈꾸기 전에 먼저 믿음의 성장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을 이루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자연스럽게 인생의 성공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 앞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산'은 바로 우리의 환경과 인생의 문제를 말합니다. 인생의 한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믿음이 겨자씨만큼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사용해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한 겨자씨 만한 믿음만 사용해도, 그런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엄청난 당신의 믿음을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미 태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사용할 수록 커집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커지면 인생이 커집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인생을 역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업그레이드시킬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유월절 행사 때마다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아니마밈'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600만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죽어나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 당하던 유대인들이 작사 작곡해서 부르며 위로를 받았던 노래입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하여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자신의 동료들이 가스실을 향해서 끌려가는 모습을 볼 때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 노래 뒤에 한 절을 더 넣어서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한 외과의사는 절대로 그 마지막 가사를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확실히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앞둔 시간이지만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해가면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끝까지 버티고 견디면서 믿음으로 섰습니다. 마침내 그는 죽지 아니하고 수용소 문을 나오게 됩니다. 나오면서 그는 마지막 절을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너무 서둘러서 믿음을 포기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는 자가 많다' 이 사람이 바로 '의미 요법'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건강을 잃거나 물질을 잃어버리면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면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명예와 권세를 잃으면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이나 물질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물질이 부족해도 건강을 잃어버려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세상의 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보다도 더 멋있고, 더 가치 있고, 더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켓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사 변화를 일으켜 주신다' 그는 이 대목을 들을 때에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체험을 하고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우리의 심령 가운데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령의 체험을 하는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 여정을 걸어가면서 때때로 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막다른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믿음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문제를 먼저 봅니다. 환경을 봅니다. 인간적인 해결책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할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그래서 믿음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현실의 문제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매일같이 보고 듣는 것이 현실에 부딪히는 한계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뿐이지, 암 환자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나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에 관한 소식뿐이지, 분열된 교회가 사랑으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눈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다 기적을 체험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의 한계에 갇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과 환경을 지배하고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찾으라고 하십니다.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찾으면 찾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누가는 그의 서신에서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하십시오. 찾으십시오. 그리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믿음이 없으면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 앞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 찬송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뜨거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을 이야기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이 있었는데 4층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5층은 술집이었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주일 저녁예배, 수요일 저녁예배, 철야를 드리려고 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교회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아주 분위기 있게 노래를 부르면 위층에 있는 술집에서도 분위기 있게 합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이번에는 아주 웅장하게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라고 노래를 부르면 위에서도 웅장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도무지 예배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한 달을 작정하고 술집 좀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작정하고 기도한지 25일이 지났는데 술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5층에 있는 술집만 새까맣게 타고 4층에는 예배당과 식당이 있었는데 커튼 하나도 안 탔습니다. 술집 주인이 아래층에 있는 목사님이 술집 없어지게 해 달라고 작정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불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경찰서에 고소했습니다.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술집 사장의 이야기는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조사 계장의 이 말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내가 술집 없어지게 기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내가 기도했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이 말에 조사 계장이 이렇게 반문을 합니다. '목사님, 이상하네요. 술집 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조사 계장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목사의 기도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상한 믿음의 양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여기에는 잘 믿어서 인생을 바꾼 한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서 소리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러면서 딸을 고쳐 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한 말씀을 하시면서 아주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어떻게 거룩한 은혜를 이방의 개 같은 사람에게 주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어떻게 개 같은 너에게 은혜를 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쯤 되면 이 여인이 맥이 빠져서 돌아 갈 만도 할 것입니다. 개라고 하는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는 분노와 원한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 여인에게는 얼마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그 순간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본문 27절의 말씀입니다.

2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개 취급을 당해도 좋으니 그저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달라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크게 칭찬하십니다. 28절을 다시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보십시오. 이 여인의 믿음이 딸아이를 고쳤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이 무너진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이 여인의 간절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자신과 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여인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인생을 바꾸는 동력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이 여인은 과부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했습니다. 병을 앓는 자녀를 둔 어머니입니다. 더욱이 그 딸은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아마도 이 어머니는 딸의 치료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돈도 많이 썼을 것이고 약도 많이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지칠 때로 지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이 들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다른 지방에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다윗의 자손인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딸은 영영 소망이 없다고 하는 절박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 인생에도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 만이 나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일으키는 비결입니다. 길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사모함을 가진 사람만이 은혜를 받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도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습니까? 이 여인에게는 그런 확신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믿음과 확신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주 앞에 나오십시오.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을 가지고 주 앞에 나오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내 아픔을 씻겨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의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들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믿으십시오.

'Your God is too small' [너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 인생의 크기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얼마나 크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크신 분으로 인정하십니까? 우리의 인생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출발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도 더더구나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제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아무런 역사도 이룰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한 분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이성적인 논리에 하나님을 가두어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의 분량만큼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조그마한 유리잔과 같다면 그만큼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이, 우리들의 믿음이 바다와 같은 큰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큰 믿음이 큰 역사를 이룹니다.

양치기의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나 목동생활을 하다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역대상 29장 11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 위대한 고백이 다윗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주 앞에서 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장 2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믿음의 주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믿음의 원천이요 주인이요 우리에게 믿음을 나눠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보면 믿음이 옵니다. 태양을 등지고 있으면 태양은 보이지 않고 내 앞에 그림자만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등지고 서 있으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슬픔과 걱정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고 태양만 나타납니다. 그것이 믿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비입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이요, 바라봄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오늘 이 시간 주님을 부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함을 얻을 것입니다. 가나인 여인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인생을 바꾸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함을 얻으리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함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원을 얻으리로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중에서 30%인 6천만명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결과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루바야에 가면 예배당 좌석수만도 2만5천 석이 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인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님이 큰 믿음을 얻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의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연약한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 목사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비웃는 손가락질은 견디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 바라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이 온전하게 건강해진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하길 한달 두달 석달….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리라' 넉달이 지났을 때 아침에 기도하러 방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 앉아서는 '아버지!'하고 부르더랍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목사님은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계가 없는 믿음의 능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님은 그 아들과 함께 제한이 없는 축복, 한계가 없는 기적을 맛보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는 결코 제한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너절너절하게 믿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인생도 너절너절하게 삽니다. 우리 모두가 잘 믿어서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고, 그래서 인생에서 성공하는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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