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2가지 소원 (막 10:35-52)

첨부 1


오늘은 종일 2가지란 화두가 중요합니다. 낮예배에는 '2가지 소원'이란 제목으로, 저녁에는 '2가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원을 말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주님, 영광의 자리에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소경 바디매오는 간구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소원을 물으신다면 어떤 소원을 아뢰겠습니까? 갑자기 생각이 아직 안나나요? 사실 소원이란 목숨을 걸만큼 큰 것이어야 합니다. 종종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마....' 그러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소원하면 잔잔한 희망 사항을 얘기하지요. 그래서 소원이 너무 많기도 하고 자꾸 바뀌기도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문간방에 살았었는데 이 문간방이라고 하는 것이 참 고단한 자리예요. 안 채에 사는 주인 가족들이 밤늦게 드나들면 일일이 문 열어 주어야하고, 더구나 주인 아저씨가 술이라도 먹고 밤 늦게 대문을 차면서 문 열라고 하면 술주정 다 받아주면서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문간방에는 부엌이 따로 없어서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연탄 화로가 전부인데, 거기서 밥을 하고 거기서 반찬이라도 하려면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지요. 거기다가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모든 삶을 노출시켜야 하기에 상하는 자존심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지요.

거기에 한달은 왜 그렇게 빨리 오는지... 그래서 '1년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전세라도 살았으면...' 그것이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러다가 전세라도 살 모양이면 '이제는 15평 자그마한 규모라도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소원이 바뀌잖아요. 집을 얻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용이 달라지지요. '좀 괜찮은 빌라나 새로 지은 맨션 아파트 25평이면 좋겠다....' 자꾸 소원이 달라지는 거예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소원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냥 바램이지요.

정말 내 인생을 걸고 주님 앞에 딱 한가지 '이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신의 남편을 두신 아내라면, '주님, 내 평생 소원은 우리 남편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남편을 두신 분이라면 '주님, 저희 남편이 성전의 기둥되길 원합니다...' 이런 영적인 소원도 괜찮구요, 아니면 불치의 병을 가진 가족을 위하여 치료의 은총을 구하거나 , 정말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 나누며 살기 원하는 물질 축복을 받고 싶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모두 다 소중한 소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그룹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했을 때, 요한과 야고보는 영광의 자리를 소원했고, 소경 바디매오는 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요한과 야고보에게 아주 놀라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영광의 자리도 좋지만 그 자리에 가려면 내가 마시는 잔을 마셔야 하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대답이 나왔어요. '할 수 있습니다 ! '

주님이 말씀하시는 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이 되도록 간구하시는 주님의 고통스런 기도 내용 속에 잔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주님은 절규하섰습니다. 결국 잔이란 십자가를 지는 사명이었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 것은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너도 질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주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대답이 나온 것입니다. '질 수 있습니다. ! ' 하지만 우리는 제자들의 삶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후 군병들에게 나아가 잡히셨을 때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쳤지요.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질 수 있다고 쉽게 대답을 한 그들은 도망을 치는 일에도 쉽게 동참을 했어요. 결국 그들의 소원은 목숨을 걸만큼 심각한 고민과 기도 끝에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주간, 우리 모두는 당진에서 전교인 수련회를 가졌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지금까지 일곱 번의 수련회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월요일은 날씨가 좋아서 수영도 하고, 족구도 하며 농장 마을에서의 화기애애함이 어디에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좋았지요. 그런데 화요일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밤 중에는 폭우로 변했어요. 황토방에서 자던 여선교회 회원들은 빗물이 새면서 혹시나 하는 염려로 대피를 했는데, 그곳이 바로 남자 숙소였답니다. 어려움이 생기니까 남자 숙소로 막 쳐들어 오는데 참으로 용감했지요. 하지만 선잠을 깬 남자 성도들은 싫은 기색없이 오히려 여성들의 이부자리와 짐들을 날라주며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 좋게 그들을 섬겼어요.

저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우리 홈페이지에도 영상과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올렸습니다 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기쁨으로 성도를 섬기는 분들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 동안 좋은 콘도나 대학 수련관 같은 좋은 시설에서 편안하게 있을 때에는 별로 섬길 일이 없어서 맹숭맹숭했는데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온 성도가 하나가 되는 기회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할렐루야 !

주님께서 나의 잔과 나의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을 때, 너무나 쉽게 대답하는 제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소경 바디매오에게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

그는 세 가지 복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그의 삶을 짓누르던 죄의 문제를 해결받은 줄 믿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그가 이제는 당당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보기를 원하는 문제가 해결된 줄로 믿습니다. 육신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세째는 52절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말씀처럼 '그가 보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길에서 쫓으니라' 고 한 사실입니다. 길에서 쫓았다는 말은 은혜 받은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제자의 길을 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그룹은 영광의 자리를 구하다가 주님으로부터 큰 충고를 받았고, 또 한 그룹은 믿음으로 구한것이 인정받아 구한 것 이상으로 은혜를 입고 제자의 길을 가는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제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부끄러운 충고를 받았고, 제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인정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룰 뿐 아니라 제자의 길을 간 줄로 믿습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에게 2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43-45절에 보면,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종이란 헬라어 '둘로스'의 번역인데 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가지 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섬기는 일입니다.

요즘 우리 크리스챤들은 섬긴다고 하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섬긴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행동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주인과 관계된 일이나 사람들을 위해서만 섬기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종은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마치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얼음 냉수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종의 고민이요 숙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섬길 수 있다고 하는 것,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하지만 그 섬기는 일이 의무적이거나 부담스럽다면 섬김에서 나오는 온유함, 신실함, 그리고 넉넉한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수련회 둘 째날, 한밤중에 내린 폭우는 1분이 멀다하고 천둥번개를 동반하였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한 장로님은 대형 파라솔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여성들을 안전하게 숙소로 이동시켜 주셨고, 다른 장로님들도 일부 천막을 친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짐을 옮겨 주었습니다. 사실, 천둥번개가 칠 때 대형 파라솔을 들고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지요. 제가 그 장로님에게 '지금 천둥 번개가 치는데 이 대형 파라솔을 들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파라솔은 쓰지 마세요' 그래도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비를 맞으며 수고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제 말을 안 들어 미웠을텐데 그날은 이쁘기만 하였답니다.

솔선수범하며 희생하는 장로님을 바라보는 모든 성도들의 눈가엔 빗물이 아닌 물기가 서려 있었고 그 분의 안전을 위해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전에도 우린 장로님들을 좋아했지만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좋아하며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광야는 사랑입니다'라는 설교집의 제목처럼, 고난의 시간이 왔을 때 은혜 공동체는 더욱 더 사랑과 섬김의 위력을 발하는 줄 믿습니다.

두가지 소원을 우리는 생각합니다. 제자 그룹은 영광의 자리를 원했고, 성도의 그룹은 소박한 마음의 소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소박한 꿈속에는 주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담겨 있은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인정하셨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바디매오의 치유는 곧 그가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는 동기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마음의 소원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이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만한 그런 소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소원이 이루어 졌을 때, 더욱 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소원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뉴욕 곰탕집'을 운영하시는 장로님이 계셔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김유봉 장로님'이 그 주인공인데 1976년도에 홀홀 단신 미국으로 떠나 어렵게 도착하였지만 할 일이 없잖아요. 결국 곰탕집 종업원으로 들어가 그릇을 닦는 일부터 시작했답니다. 열심히 하니까 주인의 눈에 들어 차츰 주방 일을 하게 되었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 재능을 인정받아 주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중 뉴욕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의 주례 인연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의 신앙은, 그저 외로운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신을 사랑해 주시고 좋은 배우자까지 연결시켜 주신 목사님이 고마워서 다니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부흥회를 참석한 그는 큰 은혜를 받고 새로운 맏음의 길을 가데 되었습니다. 부흥회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셈이지요.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그 부흥회에 참석하고 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두 가지 소원을 약속 드렸답니다. '하나님, 제게 사업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제 사업장을 선교의 장소로 쓰겠습니다. 또한 물질의 복을 주시면 이익금으로 교회 개척을 위하여 100만불을 드려 뉴욕의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쓰겠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성도들께는 많은 도전이 되는 부분이지요. 여러분의 사업터는 선교의 장소로 쓰여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잘 만들어진 선교단체별 전도지들이 여러분의 사업장에 비치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모든 거래가 끝났을 때 마지막으로 전도지를 주시면서 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까? '제가 나가는 교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나가는 교회의 목사님은 이런 분이신데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런 권면을 드리면 손님이 떨어질까봐 부담되어 전도는 커녕 전도지도 갖다 놓지 못하고 있다고 부끄러운 고백을 하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그러셨다면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의 용기와 주를 향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고 여러분의 사업장이 전도의 장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김유봉 장로님의 2가지 소원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100만불이면 우리 돈으로 12억인데 제가 생각해도 '이 분이 너무 세게 나가지 않았나? 10만불만 해도 큰 그릇인데 100만불이라니...' 하지만 김장로님은 2가지 소원을 하나님과 약속한 후 열심히 살아가던 중, 독립을 하여 곰탕집을 내게 되었는데 이름을 '뉴욕 곰탕집'이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일하는 그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고, 소문이 나게 하셨습니다. 시편 128편 2절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19편 2절 '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나중에 그는 뉴욕에서 가장 번화하다고 하는 32번가로 옮겨 6층 건물을 구입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늘 기뻐하며 감사한 가운데 살던 그는 목사님의 광고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성장의 복을 받았는데 이를 감사하여 00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였습니다. 개척되는 교회를 위하여 땅을 사야하고 건축도 해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광고를 듣는 순간 김장로님은 이제 내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고 확신하고 선뜻 100만불을 헌금하여 개척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

사람들이 장로님에게 찾아와 묻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무었입니까?' 전 그 분의 고백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평신도도 이렇게 멋있는 고백을 할 수 있구나....' 성공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김유봉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성공하는 신앙인의 자세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헌신을 작정하고 성가대나 교회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분들이 어느날 '저 이제 그만해야 되겠는데요'하며 뒤통수를 긁적 거립니다. '제게 새로운 직장이 생겼거든요. 제가 그전에는 바쁘지 않아 봉사하기가 좋았는데 앞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제겐 아주 이상한 소리로 들립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단의 봉사의 자리가 직장이 없을 때, 실업자일 때 임시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이란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업의 경우에도 I.M.F 같은 환경을 만날 수도 있고, 수출이 잘되어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24시간 공장을 돌여야 할 때도 만날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데..... 바라기는 성도들의 삶이 환경에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에 지배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0절에 보면,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를 구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늘 영광 좌우편에 앉는 것을 원하나다면, 그것은 내가 해주기 보다는 너희가 그것을 얻을 것이니라' 주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얻으라' 이 말씀은 곧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의미겠지요.

전쟁에 나가려면 무기가 있어야합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서, 천국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도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다름 아닌 섬김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자세와 섬김이라고 하는 무기는 닫혀진 마음을 열어주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섬김이라고 하는 무기는 강팍한 마음도 녹여주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도 섬김이라고 하는 무기는 그들를 온유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는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기적인 소원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에 해로운 소원이라면 아낌없이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두 제자는 그들의 욕심으로 인하여 다른 제자들의 눈노를 샀습니다. 41절에 보면, 열 제자가 듣고 분히 여겼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을 업 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구원받을 내 이웃을 위하여 진정으로 섬김의 도구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