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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때의 징조 (막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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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곳곳에서 기초가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윤리적 기초가 무너지면서 가정이 깨어지고, 경제적 정의가 무너지면서 사회가 혼란과 무질서로 방향을 잃은 듯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말세가 되었다'는 표현으로 이 시대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듯 말하곤 합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마지막 때의 징조는 이러하니라'고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1992년에 잘못된 한 선교 단체에 의해 마지막 끝이 다가왔다는 선동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던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휴거' 소동이 소동으로 그쳐져 다행이지만 그로인하여 종교계의 신뢰성에 흠이 가고, 말세에 대한 인식도 많이 왜곡되는 아픔을 겪는등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시대의 진정한 마지막 때는 언제이며,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은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를 말씀을 통해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7절과 8절에 보면, 주님께서도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 하며 미혹하겠으며,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을 때가 바로 마지막 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이후 마지막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세번째인 예루살렘 성전이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에서 주님께서 성전에 대한 평가를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요한복음 2장 20절에 보면 무려 46년 동안에 걸쳐서 지어졌는데, 그동안 솔로몬과 바벨론 포로 이후 재건되었던 성전보다도 더 크고 화려하게 헤롯왕이 지었지만 주님의 평가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더구나 주님은 헤롯왕이 지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큰 건물'이라고 하심으로서 바르지 못한 의도로 지어진 것을 간파하셨습니다.

46년 동안이나 지어진 큰 건물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무너질 수 있을까? 오히려 제자들은 1절에서 주님께 반문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지금 남아있는 당시의 성벽의 일부를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며 시시때때로 그곳에 가서 눈물로 기도하며 소원의 쪽지를 성벽 바위 틈에 끼워넣고 있습니다만, 정말로 엄청난 규모의 돌들을 가지고 쌓아올린 이 성과 건물들이 무너지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건물의 외형적인 규모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그 동기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헤롯 왕은 그런 면에서 엄청나게 큰 성전을 짓기는 했지만 우리가 확신하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행위보다 담겨진 동기와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속에 내 희생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담겨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 의 성전보다 훨씬 더 화려하여 성전 위의 돔을 황금으로 덮어 쓰워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큰 건물'을 받으실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33절 부터 37절까지 무려 세 차례에 걸쳐서 거듭거듭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 깨어 있어라.' 주님은 진정으로 우리가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의 삶이란, 먼저 마지막 때의 징조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7절과 8절을 보면,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하지 않는 절제되고 담대한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겠고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겠지만 이는 재난의 시작'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최근의 세계 동향은 자연재해와 전쟁의 뉴스들로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독일에서는 유사 이래 처음겪는 대 홍수 때문에 여러 문화재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물에 잠기고 도시들이 엘베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위력있는 태풍 '루사'으로 인하여 상상도 못할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과 경남북 내륙 지방에는 산사태로 인한 도로와 철로의 유실, 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다리의 붕괴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수 백명의 인명 피해와 가옥과 재산의 피해는 이미 5조원을 넘었다고 하여 68년도의 태풍 '사라' 때의 피해보다 훨씬 더 큰 재난을 겪게 되었다고 재해대책본부는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접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말세구나. 말세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한 여름에 때아닌 폭설이 내리고, 한 겨울에 홍수가 터질 수 있는가?' 하며 망연자실하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점점 더 이 세상이 과거와 같은 시스템이 아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5-6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신앙에 있어서도 마지막 때는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이단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성도들이 전도하는 일이 사실은 열심이지 못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도의 열심을 갖는 집단들이 있습니다. 이단들은 어쩌면 그렇게 열심으로 전도하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때의 이단의 기승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 내가 그로라' 이렇게 메시아임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겠다는 것입니다. 미혹이 증가하겠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7-8절에 보면 전쟁과 기근과 자연적인 재해가 상상을 초월하는 곳곳에서 일어날 때 다시 말하면 사회적인 혼란과 모든 자연의 재해가 일어날 때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이제 구체적으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때에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선지자적 영성을 지닌 목회자나 미래 학자들의 충고를 통해서 '아, 지금은 마지막 때이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단체에, 어느 장소에 우리가 서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절제력과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지요. 온상 안에 있는 채소들은 잘 자라기는 하지만 밖에 내놓으면 곧 시들어 버리는 그러한 약함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상추를 퍽 좋아하는 편인데 온상에서 재배한 상추는 먹을 때마다 늘 아쉽지요. 이게 원래 이 맛이 아닌데... 어린 시절, 먹거리가 신통치 않을 당시엔 이보다 더좋은 찬거리는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큼직한 양푼에 찬밥 부어넣고 귀하기 짝이 없었던 참기름 한 두 방울만 넣어 비빈 후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상추와 쑥갓 한줌이면 부러울 것이 없었죠. 저는 지금도 상추를 먹을 때면 그 생각이 떠올라 속으로 비교해 보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때의 씁쓰름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맛이 아니야. 그 때가 좋았어.....'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조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분별력을 지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제 맛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제 맛에서 거리가 먼 온상 속에서 자란 채소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도전과 유혹을 받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확신을 가진 심지가 굳은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주님의 이 명령 속에는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도전을 받을지라도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강건한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기대가 담겨져 있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구름을 타고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때, 그 때에 깨어있는 자들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안의 성도들의 삶 속에 주님의 오심에 대한 확신의 충만함이 여러분들을 주장하게 하시고 그 믿음과 확신 속에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마지막 때에 분별력을 지닌 지혜로운 성도들, 다섯 처녀와 같이 인내하되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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